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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선 위의 존재, 삶이 두려운 이들에게

슬픔도 기쁨도, 결국 사라질 것들에 대하여

by 나리솔


경계선 위의 존재, 삶이 두려운 이들에게



참으로 이상하게도, 가끔은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어요. 새로운 성취와 발견이 기다리는 그곳으로 더 이상 나아가지 않고, 그저 주저앉아버리고 싶은 충동이 밀려옵니다. 시간의 흐름은 느려지고, 모든 것이 손가락 사이로 슬그머니 빠져나가는 것을 그저 느끼고만 있지요.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은 잊은 채, 오로지 잃는 것에 지쳐버리는 거예요. 상실감은 언제나 얻은 것들을 압도하고, 그 빛을 흐리게 하며, 머지않아 사라질 보잘것없는 한 조각 빛처럼 하찮게 만들어 버려요.

기억은 스스로 그 윤곽을 지워버립니다. 과거의 추억을 더 이상 선명하게 떠올릴 수 없게 되고, 내게 그 순간들을 선물했던 이들은 왠지 모르게 낯익은 이방인이 되어버리죠. 삶은 무감각해져서, 마치 존재했다가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린 것만 같아요.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가요? 그저 별다를 것 없는 평범한 존재일 뿐인가요?

하지만 이따금, 그렇지 않은 순간들이 찾아옵니다. 그것은 진정으로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생생한 삶의 파편들이죠. 선명하고 강렬하며, 사랑스럽고 때론 고통스럽고, 두렵고 견딜 수 없이 버거우면서도, 지독하게 갈망하고 믿을 수 없을 만큼 경이로운 순간들. 대개 그런 순간들은 예고 없이, 불현듯 찾아와요. 길을 걷다 문득 그 감각을 느끼기도 하고, 누군가의 눈을 바라보다 모든 것이 아직 식지 않았음을, 다른 사람들처럼 그 사람마저 완전히 잊은 것이 아님을 깨닫기도 합니다. 물론, 이런 감정을 자신에게조차 쉽사리 인정할 수 없을 거예요. 늘 그래왔듯이 이 생각을 외면하고, 배경 속에 흐르게 두며, 특별히 중요한 역할은 하지 않는다고 스스로를 다독이겠죠 (적어도 겉보기에는). 그 감정이 무의식 속으로 파고들어 나의 행동을 좌우하게 놔두는 것이, 차라리 그것을 직접 다스리는 것보다 덜 두렵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두렵다."

어쩌면 여기에 답이 있는 걸까요? 삶이 온전히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그 삶을 느끼는 것이 두렵기 때문은 아닐까요. 무엇인가를 받아들이고, 결국엔 그것마저 잃게 될까 봐 두려운 마음. 새롭게 얻은 것들마저 망각하고, 결국은 모든 것을 잃어버릴까 봐. 그렇게 삶을 그저 흘려보낼까 봐.

하지만 감정에 온전히 자신을 내맡기는 것은 마치 낭떠러지 끝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것과 같아요.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수 있거나, 아니면 모든 것을 단번에 움켜쥘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모를까요.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요?

그저 모든 것을 끄고 외면할 수는 없어요. 나는 계속해서 생각하고, 스스로를 태울 것입니다. 그러다 결국 지쳐 쓰러지고 모든 것이 소진될 때까지. 그리고 내가 완전히 소진되고 실망감에 잠식될 때, 바로 그때 나의 기억들도 함께 사라지겠죠.




맞아, 살면서 때로는 이렇게 한계까지 나를 몰아붙이며 번아웃되는 순간들이 찾아오잖아. 무언가를 느낄 용기조차 두려워지는 순간들... 느끼는 그 감정의 깊이가 얼마나 고독하고 또 아픈지, 충분히 알 수 있을 것 같아.

하지만 혹시 알아? 이렇게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고, 자신의 나약함과 두려움까지 인정하는 용기가 얼마나 대단한 건지 말이야. 그 자체가 벌써 새로운 발견이고, 친구의 내면의 우주가 얼마나 넓고 깊은지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생각해. 우리가 온전히 모든 것을 느낄 수 없다고 해도 괜찮아. 때로는 무언가를 놓아주고, 잠시 쉬어가고, 나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여 주는 것이 가장 큰 용기일 수도 있어.

이 모든 생각들, 그리고 느끼는 이 모든 감정들이 특별하고 아름다운 존재로 만들고 있어. 혼자 너무 많은 짐을 지고 가려고 하지 마. 우리가 속 주인공들처럼 아픔도 함께 나누고, 또 앞으로 펼쳐질 더 찬란한 이야기도 함께 만들어갈 수 있을 거야! 언제든 힘든 마음이 들 털어놔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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