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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는 것의 힘에 대하여: 치유로 가는 작은 걸음

기억 너머의 치유를 찾아서: 무거운 배낭을 내려놓는 용기

by 나리솔


잊는 것의 힘에 대하여: 치유로 가는 작은 걸음



가끔 우리의 삶은 끝없이 기억해야 할 것들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들어. 마치 밀려드는 파도처럼, 우리는 수많은 얼굴들을, 특별했던 날짜들을, 주고받았던 약속들을 기억해. 때로는 깊은 상처를 남긴 후회와 분노, 쓰라린 실망과 아픔도 함께 말이야. 성공의 빛나는 순간들도, 쓰러졌던 실패의 그림자도 전부 마음에 새기지.

이 모든 기억의 조각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무거워지는 배낭처럼 우리 어깨 위에 얹히는 것 같아. 처음엔 가볍던 그 배낭이 어느새 묵직한 돌덩이가 되어 숨통을 조여올 때도 있지. 그리고 우리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해. ‘이걸 잊어버리면 안 돼. 이걸 놓치면 나 자신을 배신하는 것 같고, 내 지난 시간을 부정하는 일 같아.’ 우리의 마음은 기억 속에 갇혀 과거의 그림자 안에서만 머물려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

하지만 우리, 혹시 이런 생각해본 적 있어? 진정한 치유라는 건 단지 잃어버린 조각을 다시 찾아 기억해 내는 것뿐만 아니라, 때로는 어떤 것을 기꺼이 놓아주는 데서 오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야. 여기서 말하는 ‘잊음’은 컴퓨터의 하드 디스크를 포맷하듯이 모든 것을 지워버리는 그런 냉정한 망각이 아니야. 그게 아니라, 기억 그 자체는 간직하되, 그 기억과 뒤엉켜 우리를 괴롭히던 아픔과 고통의 날카로움, 깊은 상실감의 쓰라림, 그리고 분노 속에서 내뱉었던 말들의 뜨거움을 서서히 놓아주는 과정인 거지.

삶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귀한 교훈들은 우리 안에 씨앗처럼 남아있지만, 그 씨앗을 둘러싸고 있던 가시덤불 같은 감정들을 정리하는 시간이야. 더 이상 아픈 기억들이 현재를 지배하게 내버려 두지 않고, 상처 입었던 감정들이 나의 하루를 망치게 하지 않는, 그런 용기 있는 선택인 것 같아. 그 모든 기억을 그저 존재하게 두고, 그에 얽힌 고통의 끈만 풀어내는 것. 마치 오래된 노끈으로 묶여있던 선물을 조심스럽게 풀어내듯 말이야.

나는 우리가 살았던 시간을 통째로 지우거나, 우리 곁을 지나간 소중한 사람들을 마음에서 완전히 지워버리자는 말을 하는 게 아니야. 오히려 우리 스스로에게 다음 페이지를 넘길 수 있는 권리를 주자는 거야. 이미 지나가 버린 오래된 책의 챕터들을 마치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독서인 양 계속해서 뒤적이는 걸 멈추는 거지. 만약 우리가 계속해서 뒤만 돌아본다면, 절대로 단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테니까. 드라마에서도 주인공이 과거에 갇혀 있으면 성장할 수 없잖아?

오늘, 버스 정류장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봤어. 우리처럼, 모든 사람들이 자기만의 무거운 기억의 배낭을 짊어지고 걷고 있겠지. 잠시 그 배낭을 어딘가에 내려놓고, 하루쯤은 아무런 짐 없이 가볍게, 자유롭게 걸어 다닐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어.

치유라는 건 어쩌면 과거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에서 우리 스스로를 자유롭게 해주는 과정인 것 같아. 과거가 우리를 지배하는 것은, 오직 우리가 과거에 그런 힘을 부여할 때만 가능하잖아? 그러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나는 현재에 존재한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간다'라고 스스로에게 허락해 주는 용기인 것 같아. 무슨 일이 있었는지, 혹은 어땠을지도 모르는 일들을 끊임없이 뒤돌아보지 않고 말이야.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직도 그 무거운 기억의 배낭이 나를 따라오고 있다는 걸 알아. 하지만 오늘부터는 작은 것부터 시작해 볼 거야. 배낭에서 한 가지 오래된 상처를 꺼내어 보겠지. 그 상처를 찬찬히 들여다보며 "소중한 교훈을 가르쳐줘서 고마워" 하고 마음속으로 말해줄 거야. 그리고 그 상처를 영영 버리는 대신, 조용히 선반 위에 올려놓을 거야. 더 이상 매일 짊어지고 다니지 않겠다는 거지.

이것이 나의 작지만 중요한 치유로 가는 발걸음이 될 거라고 믿어. 때로는 가장 큰 용서는, 여전히 잊지 못한 나 자신을 용서하는 일이니까. , 정말이지 네가 써 내려간 이 깊은 이야기에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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