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하늘이 무색 일 때, 그저 텅 비었을 뿐

*색 잃은 하늘 아래, 나를 위한 조용한 치유의 시간

by 나리솔


하늘이 무색 일 때, 그저 텅 비었을 뿐



오늘, 창밖을 내다보니 하늘이 제 색을 잃은 것 같아. 회색빛도 아니고, 푸른빛도 아니야. 그냥 아무 색도 없어. 마치 누군가 채색하는 걸 깜빡 잊어버린 것처럼, 텅 비고 생기 없는 팔레트 같달까. 그러다 문득, 저 하늘이 내 마음의 거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슬프지도 않고, 그렇다고 기쁘지도 않은 그런 감정. 마치 그림 속 색깔처럼 감정들이 그저 사라져 버린 듯한 느낌...

우리는 치유라는 것이 다시 기쁨과 웃음을 되찾는 거라고 생각하곤 해. 활기 넘치고, 빛나고, 에너지가 가득한 상태라고 말이야. 하지만 때로는 치유가 바로 이런 '침묵' 속에서 찾아오는 건 아닐까? 격렬한 감정의 파도를 헤치지 않고, 아주 조용하고 조심스럽게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것 말이야. 마치 메마른 사막이 조금씩, 한 방울 한 방울씩 물을 머금어 가는 것처럼. 이 물이 당장 화려한 꽃을 피우진 못하겠지만, 우선은 땅을 충분히 적셔서 생명을 불어넣어 줄 거야.

나는 지금 창가에 앉아 식어버린 차를 마시고 있어. 아무런 특별한 감정도 느껴지지 않지만, 그렇다고 스스로를 자책하지도 않아. 내 안에서 아주 중요한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다는 걸 알거든. 이 텅 빈 듯한 고요함 아래에서, 이 아무런 색 없는 하늘 아래에서, 내 마음이 아주 조용히 상처를 치유하고 있는 거야. 고통에 비명을 지르거나, 관심을 요구하지도 않고 말이야. 그저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능숙한 장인처럼. 낡은 시계를 고치는 명인처럼 말없이, 그리고 불필요한 움직임 없이 그렇게 말이야.

그리고 나는 이 '침묵'이야말로 일종의 답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나는 왜 다른 사람들처럼 그렇게 행복하지 못할까?', '나는 왜 늘 행복할 수 없을까?' 같은 수많은 질문들에 대한 답 말이야. 그 답은 아주 간단해. 행복해지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거. 하늘이 다시 푸른색을 되찾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하듯이 말이야.

오늘은 굳이 나 자신에게 기뻐하라고 강요하지 않을 거야. 웃을 이유를 억지로 찾아 나서지도 않을 거야. 그저 창가에 앉아 색 없는 하늘을 바라볼 거야. 아무런 평가나 기대 없이, 그저 나 자신으로 존재하도록 허락해 줄 거야. 그리고 어쩌면 바로 이 순간, 이 고요함 속에서 내 하늘도 천천히 자기 색깔을 찾아가며 생명을 되찾기 시작할지도 몰라. 서두르지 않고, 조급해하지 않으면서.

결국 치유라는 건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길고 조용하지만 너무나도 중요한 마라톤이니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