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평범한 진실과 구겨진 종이 한 장

구겨진 종이 한 장에 담긴 삶의 흔적들, 그리고 치유의 지도

by 나리솔


평범한 진실과 구겨진 종이 한 장



내 책상 위에는 구겨진 종이 한 장이 놓여 있어. 아무렇게나 쭈글쭈글하게 구겨져서 구석에 던져져 있지. 나는 그 종이를 보면서 그게 꼭 나 자신과 닮았다는 생각을 해. 내 하루와, 내 감정들과 말이야. 아침에는 반듯하고 깨끗하게 잠에서 깨지만, 저녁이 되면 내가 겪었던 수많은 작은 일들로 온통 구겨져 버린 나를 발견하게 돼.

이 구겨진 종이는 내가 마음에 새겼던 다른 사람들의 말들, 나 스스로에게 지키지 못한 약속들, 그리고 감추려 했던 피로의 흔적들이야. 이 종이 위에 생긴 모든 찢어진 자국과 접힌 선들은 내가 미처 치유하지 못한 작은 상처들인 것 같아.

치유는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것에서 시작돼. 이 구겨진 종이를 보면서 나는 이게 진실이라는 걸 깨달아. 나는 괜찮은 척할 수 있지만, 종이는 그렇지 않다는 걸 알고 있어. 그것은 나의 모든 흠결을 보고 있지. 그리고 나는 이게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해. 나의 약점을 인정하는 것이 더 강해지기 위한 첫걸음이니까.

오늘 나는 이 종이를 다시 완벽하게 펴려고 애쓰지 않을 거야. 내가 깨끗하고 흠결 없는 척하지도 않을 거야. 그저 손에 들고, 찢어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펼쳐볼 거야. 그리고 구겨졌지만 온전한,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남겨둘 거야. 마치 내가 하루 종일 여행했던 낡은 지도처럼 말이야.

나는 이 구겨짐 속에, 이 접힌 자국들과 주름들 속에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다고 믿어. 이건 패배의 흔적이 아니라, 삶의 흔적이니까. 내일은 새로운 종이를 시작할 수 있다는 걸 알아. 하지만 오늘은 그저 이 구겨진 종이와 함께, 나의 하루와, 나의 감정들과 함께 앉아 있을 거야.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그것들을 받아들일 거야.

어쩌면 바로 이 받아들임 속에 – 내가 완벽하지 않아도 스스로를 거부하지 않는 그 마음속에 – 가장 크고 가장 깊은 치유가 숨어 있는 것 아닐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