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춤과 침묵 속에서 찾은 치유
우리 모두는 서두르고 있어. 살아내기 위해, 제시간에 해내기 위해, 따라잡기 위해 말이야. 이 바쁜 경주 속에서 우리는 종종 세상이 지닌 자신만의 느긋한 언어를 잊곤 해. 낡은 책이 말하는 언어, 사각거리는 책장 넘김 소리, 아니면 지붕 위로 떨어지는 조용한 빗방울의 노래 같은 언어 말이야.
어느 날, 외국어로 된 책을 번역하다가 딱 맞는 한국어를 찾기 힘든 한 단어와 마주했어. 단순한 단어 같았지만, 그 깊은 의미는 자꾸만 나를 피해 가는 것 같았지. 모든 사전을 찾아봤지만, 그 의미를 제대로 붙잡을 수가 없었어. 그러다 나는 그냥 책을 내려놓았어. 창밖을 바라보았지. 그리고 아주 느릿느릿, 마치 내키지 않는 듯이 눈이 내리는 것을 보았어.
바로 그 순간 나는 어떤 것들은 번역할 수 없고, 오직 느껴야만 한다는 것을 깨달았어. 치유도 마찬가지야. 우리는 종종 우리의 아픔을 말로 표현하고, 설명하고, 정의 내리려고 애써. 우리가 무슨 일을 겪고 있는지 이해하기 위해서 말이야. 하지만 아픔은, 그 단어처럼, 늘 번역될 수 있는 건 아니야. 그저 존재할 뿐이지.
때로는 치유하기 위해 그저 '번역'을 멈춰야 해. 단어를 찾으려 애쓰는 걸 멈추고, 자신을 설명하려 하지 않고, 이유를 찾으려 하지 않는 것. 때로는 그저 자신에게 존재하도록 허락해야 해. 이 아픔과 함께 존재하도록, 마치 내리는 눈처럼. 저항하지 않고, 몰아내려 하지 않고, 그저 천천히 가라앉는 모습을 지켜보는 거야.
나는 다시 그 책을 들었어. 그리고 전에는 그저 공허한 소리에 불과했던 그 단어가 갑자기 의미로 가득 찼어. 나는 그 단어의 의미가 정의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고요함'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 서두르기를 멈출 때 찾아오는 고요함 말이야. 말이 아닌, 본질 그 자체를 들을 수 있게 해주는 고요함 속에서.
그리고 바로 여기에 위로의 가장 중요한 비밀이 있다고 생각해. 우리는 거창한 답을 찾을 필요 없어. 모든 것을 설명하려 애쓸 필요도 없고. 때로는 우리 안의 침묵에 귀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그 침묵이 자신만의 언어로 말하도록 내버려 두는 거야. 그리고 그 침묵이 들려주는 것을 그저 받아들이는 것. 이 침묵 속에서, 자신과의 느긋한 대화 속에서 진정한 치유가 일어나는 거야. 그저 네가 존재할 때. 그저 여기에 있을 때. 그것으로 충분하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