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지 않는 옷 한 벌

by 나리솔


옷장 한쪽에 접힌 채 걸려 있는 원피스 하나.

한 번도 입지 않았지만

버릴 수 없었던 옷이다.


처음 샀을 땐

그 옷을 입고 거리를 걷는

나 자신을 상상했었다.


조금 더 날씬해지면,

조금 더 예뻐지면,

조금 더 ‘괜찮은’ 사람이 되면.


그 옷은

언제나 ‘조금 더’라는 말 뒤에 있었다.


**


그 옷은 한 번도 나를 감싸주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그 옷에 맞추기 위해

스스로를 쥐어짜듯 바꾸려 했다.


음식을 줄이고,

거울 앞에서 몸을 재고,

늘 누군가의 시선을 상상했다.


그러다 어느 날,

나는 그 옷을 바라보는 것조차

버거워졌다.


**


시간이 흘러도

그 옷은 그대로 있다.


입지 않지만,

버리지도 못한다.


그건 단순한 옷이 아니라,

그 시절의 나,

그 시절의 기대,

그리고 실패가 함께 매달린 증표 같아서.


**


> 어떤 옷은 몸이 아니라

기억을 입고 있다.




**


나는 그 옷을 꺼내지 않는다.


하지만 가끔

그 옷을 지나치듯 바라볼 때,

나는 나에게 속삭인다.


그 옷을 입지 않아도

나는 괜찮다고.


그 옷이 나를 위한 것이 아니었듯,

지금의 나를 위한 옷은

다른 모양일 수 있다고.


**


그리고 언젠가는

그 옷을 정리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 시절의 내가 아닌,

지금의 나로 살아가기 위해.



시간의 손길 | 나리솔 -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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