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 잔

낡은 것 하나가 수많은 새로운 것보다 더 많은 사랑을 담고 있다.

by 나리솔


차 한 잔


부차 한 잔엌 선반 위에는 금이 간 오래된 머그잔이 하나 있다.

새롭고 반짝이는 잔을 사면 될 텐데, 이상하게 나는 그 잔을 버리지 못한다. 손에 잡을 때마다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 잔은 엄마가 아끼던 잔이었다. 저녁이면 엄마는 그 잔에 차를 따르고 내 앞에 놓아주곤 했다.

“차는 서두르면 안 돼. 천천히 마셔야 해.”

그 한마디는 단순한 조언이 아니었다. 삶도 서두르지 말고, 작은 순간에도 맛을 느끼라는 가르침이었다.


엄마는 이제 곁에 없지만, 그 잔은 남아 있다. 마음이 무거울 때마다 나는 그 잔에 뜨거운 물을 붓는다. 그러면 차 향기가 피어오르며 어린 시절의 기억이 함께 깨어난다.


얼마 전, 아들이 집에 와서 그 잔을 보더니 말했다.

“아빠, 이 낡은 거 뭐 하러 둬요? 새 걸로 바꾸자.”


나는 웃으며 그 금이 간 잔에 차를 따라 아들 앞에 내밀었다. 처음에는 마지못해 받더니, 이내 말이 없어졌다. 잔을 바라보다가, 차를 바라보다가, 그리고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오래된 잔 속에는 말 없는 대화가 담겨 있었다. 나와 아들, 그리고 이미 떠난 엄마까지.

우리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침묵이야말로 가장 깊은 이야기였다.


나는 알았다. 이 낡은 잔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세대를 이어주는 다리라는 것을.

언젠가 아들도 이 잔을 간직할지도 모른다. 쓰레기가 아니라, 사랑했던 사람들의 기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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