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깊은 고요 속에서 나를 만나다

두려움과 혼란을 지나 내면의 소리를 듣는 시간

by 나리솔


가장 깊은 고요 속에서 나를 만나다



밤은 좋은 친구가 된다. 마치 개처럼. 속마음이 숨겨지지 않고, 그저 나라는 사람을 아는 그런 존재처럼. 다가오는 겨울도 네 신발 밑에서 부스럭거림을 감내한다. 그것은 누군가에게 관심받는다는 기쁨에, 뭔가를 하소연하거나 알 수 없는 웃음을 흘리며, 혹은 네 느리고 지친 발걸음에 조용히 화답하는 듯하다.


그게 뭐든지 상관없다. 걷고 또 걷는다. 가로등은 소리 없이 춤추듯 흔들리고, 차가운 귀에 이어폰을 꽂으면, 네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만 들린다.


하지만 우리는, 사람들은, 진짜 사랑하는 게 무엇인지 알기조차 부끄럽거나 두렵다. 그래서 남들이 비웃거나 비난하지 않는 것들을 늘어놓는다. 처음에는 부끄럽다가, 어느새 ‘나는 누구지?’ 하는 의문에 길을 잃는다. 남들이 좋아한다는 것들에 이끌려 보지만, 그것들은 마음에 닿지 않는다. 다시 부끄럽다. 왜 나만 다른 걸까?


멈춤. 그리고 솔직한 답. ‘나는 누구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나도 괴롭다. 혼자서도, 둘이서도 기쁨을 느끼기 힘들다. 타인의 기쁨을 흉내 내기 때문이다. 뭔가 시작하지만 그게 진짜 내가 원하는 건지 헤맨다. 나를 잃어버렸으니까.


나는 누구보다 못하지 않다. 단지 모를 뿐이다. 그래서 관계도 삐걱거린다. ‘나를 구해 줄 거야, 행복하게 해줄 거야’라는 기대를 안고 다가가지만, 돌아오는 건 빈 공간과 또 다른 빈 공간의 무한대 크기다. 빈 곳은 가득 찬 곳에 흥미를 가지지 않는다. 그런데 내 안을 어떻게 채우지? 남들이 하는 대로 하는데도 나를 모르니.


밤, 개, 겨울이 좋은 친구인 이유가 뭘까? 그들은 사람이 아니니까. 너가 누구인지 대신 알려주려 하지도, 쓸데없는 충고를 하지도, ‘내가 더 잘 알아’라며 끼어들지 않는다. 혼란스러운 네 모습에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허세 섞인 응원으로 너를 몰아붙이지도 않는다. 그저 네가 네 자신을 들을 수 있도록 한다.


아마도 아주 긴 밤이 필요할 것이다. 첫 번째 진짜 소리가 돌아올 때까지.


오랜 세월 전, 나는 가느다란 눈이 쌓인 닙니니(Нижний)를 걸었고, 낡은 덜컹대는 트램 안에서 비 내리는 창가에 붙어 있었다. 그 시간이 참으로 귀했다.


내 개인적인 위기를, 심한 병과도 같게, 솔직히 겪어냈다. 선택지는 두 가지뿐이었다. 살아 오르거나, 침몰하거나. 나를 듣고, 알고, 이해하며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 아니면 무.


그 이후로는 치료이고 직관이며 앞으로 나아가는 움직임이다. 좋은 것이지만, 너 혼자만 있고 네 말 없는 친구들만 곁에 있는 그 순간까지는 무용지물이다. 너도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두렵고 아프고 답답하며 모호해 보이고, 세상이 머리 위로 차가운 파도를 덮어버린 것만 같아도, 그 느낌이 있다면 이미 너는 너에게로 가고 있다. 두려움과 고통, 답답한 절망과 혼란, 고독과 추위 사이로. 그래야만 한다. 우리가 성장하고 성숙하는 것은 행복에서가 아니다. 행복은 그저 짧고 고운 보너스일 뿐, 곧 사라진다. 새 보너스를 받기 전까지.


상처 입고 길 잃고 쓰라리며, 그래도 살고 싶다는 어렴풋한 느낌만 남긴 채 분위기 속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야말로 너에게 영원히 남는다.


그러니 두려워하고, 울고, 괴로운 진실을 받아들이면서도, 이미 네 안에서 자라고 있는 중심축을 붙잡아라. 변화는 외부가 아닌 너 안에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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