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미국 역사상 가장 스캔들로 유명한 재판 가운데 하나로 깊이 들어가 보려 합니다.
그 사건은 1692년, 매사추세츠 주의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인 세일럼에서 일어났습니다.
1692년 2월 8일, 의사가 알 수 없는 병에 걸린 두 소녀를 진찰한 끝에 내린 결론은 충격적이었습니다.
— “소녀들이 마법의 희생양이 되었다.”
바로 이 순간부터, 역사에 길이 남은 세일럼 마녀 사건이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그 이야기를 함께 살펴보시죠.
이전에 본 적 없는 정체불명의 병이 점점 퍼져 나가자, 곧 다른 몇몇 소녀들까지도 앞서 나타난 것과 똑같은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로 인해 살렘 주민들 사이에서는 마녀가 마을에 틀림없이 들어와 살고 있다는 믿음이 굳어졌습니다.
첫 번째 마녀는 의외로 빠르게 ‘발견’되었습니다. 그녀는 **티투바(Tituba)**라는 여인으로, 바베이도스 섬에서 끌려온 노예였으며, 패리스 목사의 집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주저 없이 “그녀가 자신들에게 장차 남편에게 쓸 마법을 가르쳤다”고 증언했습니다.
그러나 단 한 명의 마녀만으로는 재판을 끝내기에는 부족했습니다. 그리하여 같은 사건과 관련해 추가로 두 명의 여성이 더 체포되었습니다.
심문 압박 아래에 티투바는 자신이 정말로 목사의 집에서 소녀들에게 마법을 가르쳤다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바베이도스 섬에서 온 여주인에게서 배운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자신뿐 아니라 다른 여성들까지도 끌어들여 거짓으로 꾸며냈는데, 이는 단지 처벌을 피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녀는 실제로 형벌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재판이 끝난 후, 이름 모를 어떤 사람이 몸값을 내고 그녀를 사 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가장 끔찍한 일이 시작되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마녀들을 몰아내야 한다는 광기에 사로잡혀 사실상 미쳐버렸습니다. **‘악마에게 씌었다’**고 주장하는 소녀들이 손가락질만 하면 누구든지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중에는 한 여성의 네 살 난 딸까지 있었습니다. 어린아이는 어머니를 만나고 싶다는 마음에 결국 스스로를 마녀라 꾸며내었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는 쇠사슬에서 풀려날 때 이미 불구가 된 상태였습니다.
한 여성은 소녀들의 말의 진실성을 의심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녀 역시 똑같이 ‘마녀’라는 혐의로 감옥에 던져지고 말았습니다.
4월에 이르러 상황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전까지 마녀 혐의는 여성들에게만 적용되었지만, 이제는 남성들까지 감옥에 갇히게 된 것입니다. 엘리자베스와 함께 그녀의 남편, 평범한 농부 존 프로터도 체포되었고, 또 다른 피고인의 남편인 80세 노인 자일스 코리, 그리고 전직 살렘 목사였던 조지 버로스도 마찬가지로 투옥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고발 측의 논리는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모든 것은 소녀들이 꾼 꿈에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그 꿈속에서 소녀들에게 유령이 나타나 특정 인물들을 ‘마녀’라 지목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죄를 입증하기 위해 이런 기괴한 의식까지 행해졌습니다. 즉, 눈을 가린 피고인을 소녀들 앞에 데려가고, 소녀들이 또다시 발작을 일으킬 때 피고인이 그들에게 손을 대어 발작이 진정되면 — 그것이 곧 마녀라는 증거로 간주된 것입니다.
가장 흥미로운 순간은 소녀들 중 한 명의 어머니가 딸에게 직접적으로 “왜 이웃들에 대해 거짓말을 하고 있니?” 라고 물었을 때였습니다. 그러자 아이는 아주 태연하게, “그냥 재미로요.”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그녀는 다시 마녀 이야기를 고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6월, 처형이 시작되었습니다.
첫 번째 희생자는 브리짓 비숍(Bridget Bishop) 이라는 나이 든 여성이었습니다. 그녀는 이미 여러 차례 마녀 혐의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두 번이나 결혼을 했고, 특히 두 번째 남편을 마법으로 죽게 만들었다는 의심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결정적인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그녀가 청교도답지 않은 생활을 하고 ‘이상한 옷’을 입었다는 이유까지 혐의에 추가되었습니다.
다음 달에는 사라 굿(Sarah Good), 네 살배기 도로시의 어머니가 교수형에 처해졌습니다. 목에 올가미가 걸린 순간, 그녀는 목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거짓말쟁이야… 나는 결코 마녀가 아니며, 네가 주술사가 아닌 것처럼 나도 마녀가 아니다. 만약 네가 내 생명을 빼앗는다면, 하나님께서 네가 네 자신의 피를 마시게 하실 것이다.»
이제 살렘의 전직 목사였던 조지 베로우즈(George Burroughs) 의 인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는 이미 교수대 위에서도 끊김 없이 주기도문을 외워 암송해낼 수 있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악마에게 사로잡힌 자는 결코 기도를 외울 수 없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능력은 무죄를 입증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형리들은 끝내 그에게 삶의 기회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악마가 그의 뒤에서 서서 기도를 읊는 것을 도와주었다” 라고 주장하며 처형을 집행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성스러운 종교재판 시절 수많은 여성들의 운명과 너무나 흡사합니다. 악명 높은 마녀사냥 지침서 『마녀의 망치(Malleus Maleficarum)』 에 따르면, 일단 여성이 마녀로 지목되면 그녀가 무죄를 입증할 기회는 전혀 없었습니다.
점차 마녀사냥은 살렘의 경계를 넘어섰습니다. 소녀들은 다른 마을들까지 찾아다니며 새로운 ‘마녀’ 용의자들을 지목했고, 그중에는 이웃 마을인 탑스필드(Toppsfield) 주민들도 포함되었습니다.
이에 매사추세츠 주지사였던 윌리엄 핍스(William Phips) 는 특별 재판소, 즉 오이어 앤드 터미너 법정(Court of Oyer and Terminer) 의 설치를 명령했고, 재판은 부지사 스타프턴(Stoughton) 이 맡아 진행했습니다.
그러나 사건은 결국 소녀들이 주지사의 아내를 지목하면서 급격히 끝을 맺게 됩니다. 당연히 주지사는 즉시 재판을 중단하도록 명령했고, 곧이어 이 과정에서 희생된 모든 이들이 명예를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가장 끔찍한 부분, 즉 살렘 재판의 희생자 수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총 14명의 여성과 5명의 남성이 교수형을 당했으며, 1명은 ‘돌로 짓누르는 고문’ 끝에 사망했고, 5명은 감옥에서 비참하게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이 소녀들의 그런 행동을 불러왔을까요? 이에 대한 가설은 수없이 많습니다.
일부는 개인적 원한이나 사적인 동기가 있었을 가능성을 제기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소녀들이 지나치게 암시에 취약한 성격이었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한편, 소녀들의 환각 증상에 대해선 1976년에 “맥각(에르고트, 곰팡이균)이 든 빵을 먹어 중독되었다”는 설도 나왔지만, 곧 부정되었습니다.
또 다른 추측으로는 특수한 형태의 뇌염(뇌질환) 에 걸렸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은, 결국 이 모든 것이 엄격한 종교적 압박 속에서 지쳐 있던 소녀들의 ‘놀이’ 혹은 연기였다는 것입니다.
결국, 소녀들은 자신들의 행동에 대해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았습니다.
단 한 명, 안나 퍼트넘(Anna Putnam) 만이 사건이 벌어진 지 무려 14년 후에 참회의 편지를 남겼습니다. 그녀는 그 안에서 “악마에게 사로잡혀 무고한 사람들을 모함했다” 고 고백했습니다.
이후 벌어진 마녀사냥은 작은 마을 살렘의 상징적 사건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오늘날에도 살렘에서는 이 사건을 기리는 흔적을 도시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살렘 재판은 오늘날까지도 역사학자와 심리학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우리에게 비판적 사고의 중요성, 독립적인 사법 제도, 그리고 인권 보호의 보편적 가치를 일깨워 줍니다.
살렘의 역사는 두려움과 불관용이 지배하는 분위기 속에서 정의가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며, 동시에 집단적 광기에 맞서는 용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상기시킵니다.
살렘 재판을 연구하는 것은 사회적 신화와 고정관념이 어떻게 형성되고 퍼져나가는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며, 또한 조작과 허위 정보로부터 자신을 지켜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금 강조해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