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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의 순환

봄·여름·가을이 지나며 마음을 통과하는 이야기

by 나리솔



걸음의 순환



봄을 타는 여자가 강변을 뛴다.

몸매 청초하고 발걸음은 가볍다.

그녀가 달리니 내 가슴도 뛴다.

그녀는 어제도 뛰고 오늘도 뛰니 작심삼일은 지났다.

경쾌한 발걸음 따라 봄이 오는 소리도 경쾌하다.

봄을 타는 여자를 따라 봄을 타는 남자도 뛰기 시작한다.

그녀의 발걸음 따라 강물이 찰랑이며 파도를 친다.

강변은 겨울을 걷어내고 돋아나는 풀잎으로 봄을 연다.

그녀를 뒤따르는 이들이 하나둘 늘어나고 강변은 봄의 기운으로 가득하다.

그들은 그녀의 발걸음에 맞추어 뛴다.

버들가지의 푸른 기운이 봄빛 따라 선명해진다.

봄이 깊어지니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뛴다.

그들은 그녀를 따라 뛰지는 못해도 마음으로 따라 뛴다.

사람들이 봄기운에 휩싸여 뛰기 시작한다.

그들의 숨결은 따뜻한 공기 속으로 파문처럼 번져 간다.

젊은 연인은 나란히 뛰고 부부는 서로의 박자에 맞춰 뛴다.

강변은 봄을 타는 사람들로 가득하고 활기가 넘친다.

봄을 타는 여인은 봄내 뛸 것이다.

그녀의 발걸음은 봄을 활기차고 희망차게 만들었다.

봄을 타는 여인은 여름 더위의 녹음 따라 가을로 뛰어갔다.

나는 가을을 타는 여자가 다시 뛸 때까지 이 길을 달리고 있을 것이다.


여름이 다가왔다.

새벽이 밝기도 전에 날이 덥다.

여름에는 해가 머리 위로 떠 있어, 강변의 나무들도 자기 발밑에만 그늘을 만든다.

나무는 있지만 강변의 길 위에도 뙤약볕만 따끈하다.

깊은 앞산 계곡은 산과 나무가 드리워져 아침에는 그늘이다.

그늘의 길이가 짧아 운동장 한 바퀴 도는 거리다.

나는 그 길을 운동장처럼 빙빙 돌며 뛴다.

여기는 나 혼자 뛴다.

좋아라 싶어 댄스곡을 틀고 춤을 추며 뛴다.

들고양이가 풀숲에 앉았다가 나를 보고 “뭐야?” 하며 쳐다본다.

“너도 춤을 춰 봐.” 하니까 고양이가 따라 뛴다.

길가에 일을 보던 개가 영문도 모른 채 같이 뛴다.

하늘에는 비둘기가 날고 참새들이 짹짹거리며 난다.

짹짹은 고양이와 개가 뛰니 조심하라는 새들의 경보다.

개구리와 뱀은 그 경보에 삼십육계 줄행랑을 친다.

댄스의 리듬에 허리와 윗몸이 발을 따라 흔들린다.

비가 와서 시원해 평소보다 두 배쯤 더 뛴다.

고양이도 개도 지쳐서 나무 밑에 쉬고 나 혼자 뛴다.

남은 건 땀뿐이다.

땀이 등을 타고 내리고 다리에 땀길이 내린다.

봄날부터 글을 쓰느라 잃어버린 체력을 여름에 되찾는다.

땀이 찰수록 잃어버린 몸은 제자리로 돌아간다.

뛸 때마다 배가 출렁거린다.

배가 나에게 “웬일이오?” 하고 묻는다.

내가 “네 일이오.” 하고 대답했다.

비가 많이 와 말랐던 도랑에 물이 콜콜 내려간다.

물소리가 콜콜하며 뛰어간다.

나도 콜콜거리며 같이 뛴다.


가을이 오고 산그림자가 길어진다.

나는 그 그림자를 따라 강변으로 뛰어간다.

강은 시내를 가로지르며 여름내 흐르고 있었다.

느티나무 그늘이 다시 길 위에 길게 드리워졌다.

여름내 건강을 위하여 걷는 사람들은 끝까지 여름을 걸었다고 한다.

아들은 늙은 부모의 손을 잡고 걸음마를 가르치고 걸었고 절룩거리는 노부부는 서로를 의존하며 걸었단다.

지켜온 그 길을 가을을 타는 여인이 뛰기 시작한다.

여름내 찐 뱃살들도 뛰기 시작한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날씨 따라 조금씩 가벼워진다.

강변의 숨결은 가을로 완전히 살아났다.

너도나도 뛰기 시작한다.

나는 산그늘의 댄스곡이 그립지만, 사람이 많아 켤 수 없다.

녹음기가 주머니 속에서 안달을 부린다. ‘나 틀어! 나 틀어!’ 한다.

여긴 사람들이 많아 안 된다고 달랜다.

녹음기는 투덜거린다.

그럼, 산으로 가줘, 주머니 속은 너무 답답해.

나는 녹음기를 위하여 사람이 적은 강 건너편 둘레길로 뛰어간다.

간혹 지나는 사람들이 있다.

댄스곡에 맞추어 춤을 추듯 뛰기 시작한다.

젊은 여인이 앞쪽에서 걸어온다.

나는 춤을 더 흥겹게 추며 그녀에게 눈짓한다.

그녀는 내 몸꼴의 댄스를 보고 소리 내어 웃는다.

지나간 자리에 그녀의 웃음소리가 남아 있다.

다음 날 혹시나 하고 앞을 보고 뛰지만, 오지 않는다.

그녀는 아마 댄스 선생이었을 것이다.

가을비가 잦아 강물은 불어났다.

물빛은 푸르러 강바닥이 보일 만큼 맑다.

단풍잎은 노래하며 바람에 춤을 춘다.

단풍과 사람이 어우러져 춤을 추며 뛴다.

은행나무 단풍은 물빛에 자신을 비추어, 또 하나의 풍경을 그렸다.

그 풍경이 나를 불러 뛰게 했다.

바람이 차가워지고 단풍이 떨어진다.

갓 떨어진 단풍을 밟기가 미안하다.

발을 들고뛴다.

강한 바람에 단풍이 수북이 쌓였다.

단풍 위를 뛴다.

초겨울 문이 열린다.

가을을 타는 여인은 다시 봄을 향해 뛰어갔다.

나는 봄을 타는 여인이 뛸 때까지 뛰고 있을 것이다.




삶은 계절의 원을 따라 달리는 일입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영감을 주고,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으며,

몸과 마음을 제자리로 돌려놓고,

소소한 것에 기뻐하는 법을 배우며,

심장이 뛰는 한 계속 걸음을 내딛습니다.


사람은 세상의 리듬 속에 살아갑니다.

겉으로의 움직임이든, 마음속의 움직임이든,

각자의 계절을 지나며 자연과 사람들과의 연결을 잃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작은 움직임이 주변의 공기를 바꾸고,

한 사람의 길 또한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순환 속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의 이 산문적 에세이는

우리가 움직이는 동안 삶은 계속해서 맥동하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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