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주전자

느리게 끓어오르는 하루의 온기

작은 주전자

서울 어느 오래된 아파트
작은 부엌 창문 앞에 서 있었어요.
겨울이 오면 수도관이 얼어붙는 집이었죠.

아침마다 김이 오르는 주전자 소리,
엄마가 만든 계란찜 냄새,
그건 내 어린 시절의 음악이었어요.

어느 날 문득,
그 주전자는 사라졌고
새 집에서는 전기 주전자가
딱 한 번 울리고 잠잠했어요.

나는 편리함을 얻었지만
가만 보면
무언가가 사라진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요즘은
바쁜 하루를 끝내고 돌아오면
불편한 옛날 방식으로 물을 끓여요.

작은 주전자,
천천히 올라오는 김.

“왜 이렇게까지 하지?”
나 자신에게 묻다가
문득 알게 되었죠.

나는 물이 끓는 시간을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모든 것이 너무 빠른 세상에서
적어도 내 부엌만큼은
느리게, 조용하게,
나만의 속도로 살고 싶었어요.

그렇게 해서야
내 안의 이야기가 들리니까요.

물 끓는 소리,
내 마음이 뜨거워지는 시간.

그건 작은 기쁨이었고
누구에게도 설명할 필요가 없는
나만의 하루였어요.

그래서 나는 오늘도

작은 주전자를 올려놓고

물이 끓는 시간을 기다립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내 마음이 식지 않도록.

그 시간이 지나면

비로소 하루가 시작되는 것 같아요.

“행복은 커다란 사건이 아니라,

조용히 끓어오르는 물처럼 오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