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이라는 독과 블랙홀

상처가 농담으로 포장될 때

by 나리솔


차별이라는 독과 블랙홀



내가 다니던 학교에는 보이지 않게 모든 학생들을 통제하던 무리가 있었다.
그들은 분위기를 장악했고, 누가 인정받을 사람인지, 누가 그렇지 않은지를 정했다. 내 주변에도 그들 곁에 남기 위해 자신을 낮추고, 불편함을 감수하며, 시키는 대로 움직이던 친구들이 있었다. 소속되고 싶다는 이유 하나로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모습은 그때도, 지금도 낯설지 않다.

나는 그 시절, 이런 문화가 미성숙한 성장 과정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어른이 되면, 사회에 나가면 사람들은 더 나아질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학교를 졸업한 지 오래된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계급은 여전히 존재하고, 서열은 형태만 바뀌었을 뿐 그대로 남아 있다.

학생이었을 때부터 나는 사회 속 차별이라는 문제에 진지하게 마음을 썼다. 졸업하고 나면, 더 성숙한 세계가 기다리고 있을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타인 위에 서기 위한 권력 다툼 속에서 삶을 구성하고 있다. 그것이 책임이나 성장 때문이 아니라, 단지 우위에 서고 싶다는 욕망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 더 씁쓸하다.

어쩌면 권력을 향한 욕망은 인간의 본능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사회적 위치가 낮다고 여겨지는 사람에게 무례하게 행동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인식되지 않는 데 있다. 누군가 불편함을 표현하면 곧바로 이런 말이 돌아온다.
“그냥 농담이잖아.”
“왜 이렇게 예민해?”
“분위기 좀 망치지 마.”

선한 사람은 쉽게 약한 사람으로 오해받는다. 그리고 가까워질수록 더 쉽게 무시당한다.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사람이 언제부터 ‘피곤한 사람’이 되었을까. 왜 당당함과 지위는 존중받고, 조용한 진심은 가볍게 여겨질까.

사회적 영향력이 있거나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의 말은 귀 기울여 듣는다.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의 목소리는 쉽게 지워진다. 갈등은 “우린 친구잖아” 혹은 “그때 바로 말했어야지” 같은 말로 덮인다. 하지만 그런 구조 속에서는 누구도 솔직해질 수 없다.

이런 태도는 사소하지 않다. 그것은 독처럼 사람을 잠식한다. 자존감을 갉아먹고, 마음에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긴다. 결국 사람들은 말하기를 멈추고, 자신을 숨기며, 점점 사라진다. 차별은 블랙홀처럼 개인을 빨아들이며, 그 사람의 형태를 흐리게 만든다.

나는 점점 더 확신하게 된다.
물건은 사용할 수 있지만, 사람은 사용할 수 없다. 사람은 사랑해야 한다.
이 단순한 진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어떤 사회적 지위도 우리를 성숙하게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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