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의 로맨스 푸 시간 속에 새긴, 사랑과 기다림의

푸른 시간 속에 새긴, 사랑과 기다림의 파도

by 나리솔


바다와의 로맨스



푸른 시간 속에 새긴, 사랑과 기다림의 파도
(Waves of Love and Waiting, Etched in the Blue of Time)


좁은 해안 도로와 조용한 골목길 모퉁이에 자리한 작은 집은 하얀 벽에 소금과 바람에 갈라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지. 한때는 제주 해안가에서 가장 먼저 지어진 집 중 하나였어. 그 시절, 여인들은 남자들을 바다로 떠나보내며 그들이 다시 돌아올지 알 수 없었어. 어부들의 손으로 직접 만든 작은 발코니에 올라, 끝없이 펼쳐진 푸른 바다를 한참 동안 응시하곤 했지. 때로는 배들이 보였지만, 때로는 보이지 않았어. 그 발코니들은 여전히 인내와 기다림의 기억처럼 바다를 향하고 있어.


아침이면 우리는 그곳에서 커피를 마셨어. 좁은 계단을 올라 오래된 주철 벤치에 앉아, 햇살이 해변을 물들이는 모습을 바라보곤 했지. 조용하고 참 좋았어. 우리는 그 아침을 놓아주기 싫은 듯이 몇 번이고 되풀이했어.


멀리 투명하고 깊은 바다가 펼쳐져 있었어. 현대적인 호텔과 빌라의 실루엣이 바다 위를 가로지르며 보였지. 한쪽에는 작은 골동품 가게가 있었는데, 마당에는 돌 조각상, 거대한 흙 거북이, 화분, 그리고 낡은 세라믹 개들이 뒤섞여 서 있었어. 다른 한쪽에는 개인 주택들과 어우러진 작은 만이 있었고, 그 위로 바람이 자유롭게 스쳐 지나갔지. 섬이 펼쳐진 좁은 육지 띠는 남쪽에서 북쪽으로 길게 이어져 있었어. 주된 해안 도로는 카페, 작은 식당들, 상점, 그리고 호텔들로 가득했고, 이 모든 것이 바다를 따라 물 흐르듯 이어져 있었어.


해가 점점 높이 솟아오르자, 해변은 텅 빈 해변들로 유혹했어. 가끔은 맨발로 물가를 달리는 게 들과 드문 달리기 하는 사람들이 보였어. 아침 파도는 게을러서 발뒤꿈치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밤의 흔적을 지워냈어. 모래 위에는 게껍데기 조각들, 집게발, 그리고 새들의 발자국이 남아 있었지. 긴 부리를 가진 새들이 무리를 지어 위풍당당하게 거닐었고, 갈매기들은 하늘을 맴돌았어. 누군가는 물속으로 뛰어들었고, 멀리 서는 돌고래 떼의 등줄기가 반짝였어. 이제 아침 식사 시간이었어.


집안은 시원했어. 에어컨이 잘 작동하고 있었거든. 달걀과 잘 익은 토마토로 만든 오믈렛, 우유 한 잔, 카푸치노 한 잔. 멜론과 사과 조각들이 요구르트 속으로 천천히 가라앉았어.


“이제 일어날 시간이야.”


소연이가 가장 먼저 일어났어. 샤워하면서 영어로 된 노래를 가볍고 effortless 하게 흥얼거렸지. 뒤이어 민재, 어린 디자이너가 나타났어. 아이들... 아니, 내 아이들은 아니었어. 친구들의 아이들이었지만, 마치 내 아이들 같았어. 같은 보살핌, 같은 부드러움, 말과 권리 없이 그저 조용하고 성숙한 사랑. 아이들의 기쁨에 기뻐하고, 보호해주고 싶어 하는 내 모습을 발견했어. 마치 내 아이들에게 하듯 말이야.


그들은 십 대였어. 그래서 늦잠을 자고, 푸짐하게 아침을 먹은 뒤 바다로 달려가 파도를 타고, 친구들을 사귀고, 웃고, 삶을 만끽했어. 그들이 만난 남자아이들은 햇볕에 그을린 피부에 신선하고, 바닷바람에 약간 거칠어진 얼굴이었지. 몇몇은 이미 일을 하고 엘리베이터가 있는 아파트에 살았고, 또 다른 아이들은 마당에서 개들과 놀았어. 이 모든 것이 일시적이고도 당연해 보였어.


소연이는 선베드에 길게 누워 손가락으로 모래를 게으르게 헤집었어. 눈은 반쯤 감겨 있었고, 몸은 방금 수영을 마친 촉촉한 피로를 간직하고 있었지. 수건이 모래 위로 미끄러져 내려왔고, 밝은 모래 알갱이들이 까만 피부에 달라붙었어. 옆에는 태훈이가 앉아 있었어. 햇볕에 탈색된 머리카락, 무릎 아래까지 오는 반바지. 그들은 거의 말없이 파도만 바라봤어. 한 파도가 아주 가까이 다가와 거품 가득한 흔적을 남겼고, 작은 바다 생물들은 재빨리 모래 속으로 파고들며 아주 작은 구멍들을 남겼어.


좋았어.


“정말 좋다.” 릴리가 내게 다가와 전화기를 치우며 말했어.


며칠 동안 바다로 가자는 건 그녀의 아이디어였어. 유학을 떠날 내 아들을 위한 선물이었지. 그녀의 딸은 그냥 친구 삼아 우리와 함께 갔어.


우리는 물과 땅, 두 세계를 나누는 파도선을 따라 걸었어. 우리 위에는 오직 하늘뿐이었지. 우리는 한국어로 이야기했고, 가끔은 영어로도 대화했어. 악센트 없이 평온하게. 삶이 오랫동안 여러 나라 사이를 오가는 법을 배운 이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었지. 전화기는 잠잠했어. 그 침묵 속에 희귀한 평온함이 있었어.


저녁에는 우리는 가벼운 서늘함에 싸여 함께 앉아 있었어. 바다는 어두워지면서 더욱 깊고 고요해졌어. 가끔 전화가 울렸고, 릴리의 남편은 잘 자라는 인사를 건넸어. 낮에는 바빴지만, 저녁에는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고 있었어. 그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어.


우리는 릴리에게 모자를 사주었고, 그다음에는 게를 샀어. 모자를 쓰고 상점가를 거닐었고, 게는 집에서 맥주와 함께 먹었어. 식탁에 오래된 신문지를 깔고 칼을 들자, 부엌은 게 껍데기가 부서지는 소리로 가득 찼어. 하얗고 부드러운 살을 우리는 양념한 녹인 버터에 찍어 먹었어. 얼굴은 더러워졌고, 아이들은 웃었고, 우리는 바보 같은 이야기를 주고받았어. 어떤 사소한 일에도 웃음이 터져 나왔지. 손은 기름으로 번들거렸고, 접시들은 끈적거렸지만, 그 속에 행복이 있었어.


저녁에는 발코니로 나갔어. 해는 만 너머로 지고 있었고, 하늘은 서서히 색을 바꾸었지. 우리는 추억을 위해 사진을 찍었어. 아이들은 손을 흔들고 포즈를 취했어. 릴리는 난간에 기대어 있었지. 아래에서는 파도가 바위에 부딪쳐 철썩거렸어.


아침 식사 후에는 쇼핑을 했어. 아이디어를 찾으러 다녔지. 유리, 세라믹, 나무 등 많은 것들이 있었어. 우리는 부티크마다 해안 도로를 지나갔고, 모자 덕분에 늘 시선을 끌었지. 그건 정말 가장 멋진 발견이었어.


“어제 해변에 계셨던 분들 아니세요?” 사람들이 물었어.


대화는 쉽게 시작되었어. 우리는 바라보고 웃으며 계속 걸어갔지. 라탄 가구 가게에서는 소파에 앉아보았어. “정말 예쁘다. 거실에 두면 완벽하겠네. 촛대도 어떤 식탁에도 잘 어울릴 거야.” 판매원들은 친절하게 미소 지었어. 외국인들. 그래서 모자를 쓰고 다녔지.


그리고 수영복 코너로 향했어. 끝없이 많은 형태와 색상들. 소연이와 엄마는 거의 모든 것을 입어 보았지. 나와 민재는 구석에서 잡지를 넘겨보았어. 에어컨이 작동하고 있었어. 또다시, 좋았어. 결국 릴리는 장미 모양의 파리채를 샀어. 가장 예상치 못했고, 가장 정확한 아이디어였지.


바다는 투명한 푸른빛으로 우리를 맞이했어. 하얀 파도들이 해변을 향해 밀려왔고, 형형색색의 파라솔 아래에는 피서객들이 숨어 있었어. 파도 위에는 노란색 카누가 흔들렸어. 나는 물가를 따라 얼레를 들고 달렸어. 실이 풀려나갔고, 파란색과 노란색 연이 하늘로 솟아올랐어. 어렸을 때 나는 연이 없었어. 이제 그 연은 천천히 점이 되어갔지. 나는 실을 다시 잡아당기며 바람의 저항을 느꼈어. 카누가 지나갔어. 물 위로 독수리 한 마리가 날아올랐어. 멀리서 또다시 돌고래 떼의 등줄기가 번쩍였어.


우리는 그곳에 있었어.


2019년 7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