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만 자고 싶어? 많이 먹어?

아마도, 무언가가 너를 다치게 했겠지

by 나리솔



잠만 자고 싶어? 많이 먹어?




아마도, 무언가가 너를 다치게 했겠지



“죄송하지만, 현재 인원 제한으로 인해 채용이 어렵습니다.
다음에 더 좋은 기회로 다시 뵙기를 바랍니다.”

그 문장은 정중했지만, 이상할 만큼 마음을 깊이 찔렀다.
나는 커튼을 닫고 침대에 누워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렸다. 점심을 먹은 지 몇 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몸은 잠을 원했다.
눈을 떠 휴대폰을 보니 네 시간이 지나 있었다. 다시 잠들었다.
두 시간쯤 후에 깼다가, 또 두세 시간 깊은 잠에 빠졌다. 그 밤은 그렇게 끝없이 반복되었다.

일주일쯤 지나 하루에 열네 시간 이상 잠을 자고 나서야, 조금씩 에너지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긴 잠에서 깨어나 미뤄두었던 일들을 하나씩 해결했다.
왜 그렇게 잠만 자고 싶었을까. 그 어두운 시기는 오랫동안 나에게도 수수께끼였다.

그러다 어느 날, 친구와의 대화 속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요즘 너무 많이 자서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그러더라.
‘나쁜 일이 있었고,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은 거예요.’
그 말을 듣고 눈물이 날 뻔했어.”

그 순간, 문득 깨달았다.
그때의 나는, 어쩌면 눈을 뜨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닐까.

나는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 같은 말에는 크게 공감하지 못했지만,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잠을 잔다’라는 말에는 이상하리만큼 고개가 끄덕여졌다.

스무 살 무렵의 나는, 내 몸에 대해 거의 생각하지 않았다.
유일한 관심사는 유명인처럼 마르는 것이었고, ‘몸을 돌본다’는 말은 곧 ‘다이어트’와 같은 의미였다.
어쩌면 내 마음은 계속해서 몸을 통해 말을 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신호를 애써 무시했다.
몸을 돌보는 일은 곧 마음을 돌보는 일이기도 한데 말이다.

나는 몸이 나에게 말을 걸던 시절을 떠올린다.
열네 살에 어머니를 잃었고, 아버지는 우리 곁을 떠났다.
그 이후로 나는 혼자였다. 너무 이른 나이에.
열네 살부터 열여덟 살까지, 나에게는 제대로 된 음식도, 돈도 없었다.
배가 고프면 마른 비상식량이나 아무거나로 위를 채웠고, 결국 위염과 심한 위 자극으로 두 달간 병원에 입원했다.

스무 살이 되었을 때, 나는 음식을 가리지 않고 마구 먹었다.
집에 돌아오면 멍한 상태로 피자, 치킨, 라면, 탄산음료를 한꺼번에 먹었다.
편의점에서 간식을 잔뜩 사 와 배가 아플 때까지 먹고, 토할 것 같은 기분에 괴로워했다.
그때는 몰랐지만, 훗날 그것이 섭식장애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일자리를 찾던 시기, 나는 정글 속의 작은 초식동물처럼 세상을 느꼈다.
모든 것을 계획하고 통제하려 했고, 사람들은 나를 완벽주의자라고 불렀다.
심리학 책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이런 강박적인 성향은 종종 섭식장애로 이어진다는 것을.
그리고 그 원인은 단지 왜곡된 신체 이미지가 아니라,
외로움과 현실에 대한 깊은 불만, 그리고 의지할 곳 없는 마음이라는 것도.

마음을 채울 수 없을 때, 우리는 위를 채운다.

오랜 시간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은 각종 호르몬의 공격을 받는다.
불안과 두려움은 면역 체계를 약화시키고,
몸은 현실로부터 잠시라도 도망치기 위해 신호를 보낸다.
머리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장도 같은 신호를 받는다.
연구에 따르면, 강한 스트레스를 겪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복통을 겪을 확률이 세 배나 높다고 한다.

만약 이전에는 없던 복통, 장 트러블, 가려움, 폭식이나 거식, 두통, 불안, 수면 장애 같은 증상이 나타난다면,
그건 ‘관리 부족’이나 ‘의지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지금 내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 돌아볼 시간이라는 신호일 수 있다.

나는 ‘이성으로 몸을 극복하라’는 생각을 좋아하지 않는다.
몸은 극복해야 할 장애물이 아니다.
우리가 살아 있고, 세상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존재다.
마음과 몸은 싸워야 할 적이 아니라,
서로를 지탱하며 함께 걸어가야 할 친구다.

섭식장애를 극복한 사람들 대부분은, 그 이유로 심리적인 변화를 이야기한다.
일기 속에서 스스로를 칭찬하거나,
자신을 지지해 주는 파트너를 만나거나,
가족으로부터 이해와 돌봄을 받았다는 이야기들.
하루 종일 무력감 속에 있었던 사람에게
‘너는 소중한 존재야’라고 말해주는 관계가
다시 앞으로 나아갈 힘이 된다.

마음이 균형을 잃을 때,
몸은 때때로 우리에게 멈추라는 신호를 보낸다.
그때 마음을 돌보는 일은,
몸을 돌보는 일만큼이나 중요하다.
마음의 상처를 발견하고 보듬을 때,
몸 또한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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