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질문에 답하지 않아도 괜찮아, 너의 빛을 잃지 않는 법
모든 질문에 답하지 않아도 괜찮아, 너의 빛을 잃지 않는 법
한때는 '나는 누구일까?', '무엇을 하고 싶을까?', '왜 이렇게 보일까?' 같은 수많은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지곤 했었지. 선택은 언제나 그곳에 있었고, 삶을 바꾸고 싶다면,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해. 우리는 종종 무언가를 시작하려면 '확실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모든 행동은 하나의 질문에서 시작되는 거야. '내가 이걸 왜 하는 걸까?', '이 길이 정말 옳은 길일까?' 하고 자신에게 물어야만 해.
나이가 들어갈수록 다른 사람들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들은 점점 더 많아지는 것 같아. 어른들은 '어른이 되려면 천 가지 실수를 해야 한다'라고 말하지만, 막상 우리가 실수를 저지르면 그들은 분노하곤 하지. 그러면서도 자신들의 성공은 오직 노력 덕분이라며 과장하고, 자신들의 행운이 유리한 환경 덕분이었다는 사실은 놓치는 경우가 많아. 이런 사실을 잊은 사람들은 대개 남들에게 '왜 너는 이걸 하지 못하니?' 하고 쉽게 말하곤 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때는, 나의 모든 문제들을 밖으로 꺼내어 차근차근 해결해 나갈 수 있었어.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질문을 던질 때면, 답은 보통 한 문장으로 명확하고 일관성 있게 이해하기 쉬워야 하지. 이때는 구체적인 이야기들이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경우가 많아. 예를 들어, 나는 가톨릭 세례를 받았고 집에 성모 마리아상이 있지만, 동시에 불교 서적 읽는 것을 좋아하고 절에도 자주 찾아가거든. 그런데 누군가 내게 '종교가 뭐예요?' 하고 묻는다면, '저는 가톨릭 신자지만 불교도 좋아요'라고 길게 설명할 수가 없는 거야.
"사람은 모든 질문에 답할 의무가 없어. 모든 질문에 답하려 할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아니? 우리는 무언가를 잃게 돼. 바로 '자기 자신'을 말이야."
예를 들어볼까?
결혼 이야기가 나왔는데, 수잔이라는 서른다섯 살의 미혼 여성과 직장을 그만둔 기혼 여성 마이코의 이야기야. 수잔은 혼자 사는 삶에 꽤 만족하지만, 가끔 마주치는 마이코가 부럽기도 하고 자신의 노년이 걱정되기도 해. 반면 결혼해서 아이를 가졌던 마이코는 결혼 생활에 불만이 없었지만, 아이 때문에 미래가 완전히 달라질까 봐 두려워했어. 어쩌면 수잔이 훨씬 편안함을 느꼈을 수도 있겠지. 이렇게 상반된 입장들은 우리가 삶에서 마주하는 어떤 관계에서든 드문 일이 아니야.
또 다른 이야기도 있어.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라는 소설에서 주인공은 한 직원이 너무 싫어서 회사를 그만두기로 해. 그녀는 자기 계발서에서 흔히 조언하듯이 '직원을 바꾸어달라 요청하거나 상황을 참아내라'는 식의 선택을 하지 않았어. 내 생각엔 그건 실수가 아니라 그녀의 '선택'이었어. 훗날 수잔과 상사인 동료 사이에 이런 대화가 오고 갔어. 그 대화는 이 이야기의 세계관을 잘 보여주는 것 같아.
"저는 당신이 일하는 방식이 좋아요."
"하지만 저는 지난 직장에서 거의 도망쳐 나오다시피 했는걸요."
"이제는 상관없어요. 당신이 그 선택을 한 것을 기뻐한다면, 그걸로 된 거예요. 게다가 당신은 도망친 것이 아니라, 그만둔 거니까요."
깊이 고민한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해도, 자신을 책망하지 않는 태도. 이것이야말로 그녀가 자신에게서 가장 소중히 여기는 능력인 것 같아. 무엇이 잘 풀리지 않을 때도, 자신의 삶을 통째로 실패작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거지. 이렇게 차분하고 긍정적인 태도가 늘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 헤매는 우리 모두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지 않을까?
나중에 '나쁜 어른'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무엇을 이루었느냐?'는 질문 대신 '나는 정말 무엇을 원하는가?' 하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바꿔보는 건 어떨까? 그렇게 하다 보면, 언젠가 새로운 나를 다시 발견할 수도 있을 거야. 스스로에게 묻는 것을 멈추고 지나치게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는 건, 더 이상 자기 자신의 미래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일 수도 있거든. 그러니 "너는 괜찮니?" 대신 "나는 괜찮을까?" 이 질문을 다른 사람에게 던지기 전에 스스로에게 자주 물어봐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