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진 장면들 속에서 벗어나, 다정함을 다시 생각하다
최근 누군가와 로맨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 순간, 나는 자연스럽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됐다.
과연, 로맨틱함이란 무엇일까.
촛불이 켜진 방, 침대로 이어지는 꽃잎,
레스토랑 한가운데에서 건네지는 반지.
혹은 음식 속에 숨겨진 반지,
겹겹이 쌓인 상자들 속에서 발견되는 이벤트.
이런 장면들을 볼 때면
설렘보다는 어딘가 익숙한 장면을 다시 보는 듯한
조심스러운 미소가 먼저 떠오른다.
정해진 날, 정해진 선물.
꽃다발과 초콜릿, 둘이 나누는 술 한 병.
이 모든 것이 왜 ‘로맨스’라는 이름으로
늘 같은 모습으로 반복되는 걸까,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로맨틱함을 표현할 때
왜 늘 침대와 속옷이 등장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촛불 아래의 와인 한 잔,
분위기 좋은 저녁 식사.
어쩌면 그것들은 아름다울 수 있지만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것이 로맨스라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나에게 있어
로맨틱함은 사랑의 결과가 아니라
사랑이 머무는 방식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섹스는 로맨스가 아니라,
서로를 향한 긴 대화가
다른 차원으로 이어지는 순간이라고.
그렇다면,
내가 생각하는 로맨틱함은 무엇일까.
그것은 무엇보다도
관계 속의 다정함이다.
함께 걷는 시간.
굳이 달빛 아래가 아니어도 좋다.
밝은 낮, 햇살 속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며
새소리를 듣는 것.
어딘가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손을 잡는 일.
시간과 장소가 중요하지 않은
그 단순한 순간들.
함께 시를 읽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보는 밤.
맨발로 풀 위를 걷거나
바다와 강, 호숫가를 함께 걷는 일.
저녁이 되면
서로에게 기대어 앉아
말없이 시간을 보내거나
영화를 보며 차를 마시고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순간들.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며
각자의 우주 속으로
조심스럽게 스며드는 시간.
예상하지 못한 작은 선물들,
함께 전시회를 보고
같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일.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즐거움.
특히, 둘이서 추는 춤.
리드하는 사람을 온전히 믿고
몸을 맡길 수 있을 때,
그 신뢰 속에서 만들어지는 호흡은
말없이도 충분히 로맨틱하다.
어쩌면
아무 계획 없는 친밀한 순간들,
어설픈 행동들,
괜히 무릎을 꿇어보는 그런 ‘쓸데없는 진심’들 역시
로맨틱함일지도 모른다.
뒤에서 조용히 안아주는 순간,
눈이 마주쳐
서로의 경계가 흐려지는 시간.
그 순간,
‘너’와 ‘나’의 구분이 사라질 때.
로맨틱함은
꼭 둘일 때만 존재하지도 않는다.
자연 앞에 홀로 서서
세계와 하나가 되는 감각,
그 또한 로맨스일 수 있다.
하지만 만약 둘이라면,
그저 함께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가장 로맨틱한 순간은
함께 맞이하는 새벽,
같은 방향에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