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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본질은 구름이 아닌 맑은 하늘

무라카미 하루키의 언어로 '생각'을 이해하기

by 하몽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



영화평론가 이동진의 모토로 잘 알려진 저 말은

‘놓아버림’이나 ‘내맡김’ 같은

영성분야에서 가리키는 삶의 본질을 그대로 담고 있다.



그러니까 <인생 전체>는 내 영역이 아니라 (신성한) 삶의 영역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그것에 대해 걱정하지 않을 때에야

지금 내 앞에 주어진 일,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선명하게 보이고

그것들을 해나가며 자연스레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가게 된다 - 는 내용이

간단한 한 문장에 모두 들어가 있다.




요즘은 꼭 영성분야가 아니더라도, 자연스럽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오히려 그 분야에서 가리키는 본질을 더 잘 이해하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들은 영성분야에서 흔히 쓰이는 표현이나 용어 없이,

아주 일상적인 언어로 그러나 더 간단하고 정확하게 그 본질을 표현한다.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설명하는 ‘생각’도 그랬다.

엄청난 달리기(러닝) 열풍으로 요즘 다시 각광받는 책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그는 “달리면서 무슨 생각을 하느냐”는 사람들의 질문에 “(거의)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고 답하며

그 상태가 무엇인지를 설명한다.



달리고 있을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하늘에 떠 있는 구름과 비슷하다. 여러 가지 형태의 여러 가지 크기의 구름. 그것들은 왔다가 사라져 간다. 그렇지만 하늘은 어디까지나 하늘 그대로 있다. 구름은 그저 지나가는 나그네에 불과하다. 그것은 스쳐 지나서 사라져 갈 뿐이다.



사실 이 부분을 읽을 때는 생각을 표현하는 ‘클리셰’라고 느꼈다. 생각을 흘러가는 구름에 비유하는 건 영성분야가 아니더라도 흔히 쓰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다음 문장을 읽고 그가 말하려는 진짜 ‘생각’의 본질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하늘만이 남는다. 하늘이란 존재하는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실체인 동시에 실체가 아닌 것이다. 우리는 그와 같은 넓고 아득한 그릇이 존재하는 모습을 그저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구름 같은 생각이 지나가고 남는 하늘은 무엇일까?

아마 영성분야에서는 ‘순수한 의식, 끝없는 의식’ 또는 ‘참나True Self’ 등으로 해석될 것 같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순간순간 형태를 바꾸며 흘러가는 생각은 우리 자신의 본질이 아니라는 것이다. 생각은 우리 자신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의 본질(푸른 하늘)은 언제나 그대로인, 변하지 않는 무엇이다.


우리는 생각이 곧 '나'라고 오해하기에 생각을 해결하고 없애고 잠재우려 애를 쓴다.

하지만 간단하게 생각이 나의 본질 위로 끝없이 흘러가는 구름 같다는 걸 알면,

'나'는 생각에 영향받지 않는 그대로의 맑은 하늘이라는 것을 알면

생각을 없애려 하지 않아도, 생각이 끝없이 우리의 머릿속을 드나든다 하더라도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처럼 아무 생각도 없는 듯 비워진 경험을 할 수 있다.




'고요'를 완전한 생각의 부재가 아닌 계속해서 생각의

소음이 떠오르는 내면의 공간이라 생각해 보자.


내가 번역하고 만든 책 <내면의 공간>에 나오는 구절이다.


책의 저자 마이클 닐은, 사람들이 찾는 고요는 완전한 생각의 부재가 아닌,

계속해서 끝없이 생각이 드나드는 내면이라고 말한다. 그게 곧 우리의 본질인 것이다.

우리가 그 사실만 이해하면 생각에 초점이 가기보다

언제나 드넓게 비어있는 공간, 언제나 푸른 하늘을 바라보는 게 더 쉬워진다.






이 내용으로 오랜만에 유튜브 영상을 만들어 올렸다.

https://www.youtube.com/watch?v=IUX9Pg43hPI&t=29s






1인 출판사 하몽이 번역하고 만든 첫 책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41325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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