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쇼잉 업>을 보고
영성분야에 관심이 많아 직접 책까지 번역하고 만들었음에도, ‘영적인 삶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떠오르면 분명한 답을 내리기 어려웠다.
매일 모닝페이지를 쓰고 명상을 하는 삶이 영적인 삶인가? 모든 생각과 감정을 다 비우고 그저 마음을 투명하게 만드는 것에 집중하는 삶? 내가 관심을 두는 영성분야(세 가지 원리)는 오히려 그것의 정 반대방향을 가리키고 있는데, 그럼 그저 세속적 삶이 영적인 삶의 모습인가?
조금 생뚱맞게도 올해 초에 본 영화 ‘쇼잉 업’(감독 켈리 라이카트)에서 그 답을 찾은 것 같았다.
바로 영화 제목대로 ‘쇼잉 업’을 하는 삶. 그게 영적인 삶의 전부인 것 같았다.
영화는 포틀랜드에서 활동하는 도예가 리지가 하루하루 자신의 삶에 쇼업show up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show up은 나타나다, 참석하다의 뜻을 가진 말인데, 일상에서 끊임없이 성가신 일이 일어나도, 주어진 환경이 풍족하지 않아도 그저 작업실에 앉아 작품을 만드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다 보면 그 뜻이 저절로 선명해진다.
조용히 작품을 매만지는 리지를 보다 보면, 그에게 따로 마음을 다스릴 시간은 필요치 않아 보인다. 작업에 몰두하는 시간이야말로 진정한 명상의 순간, 자아를 초월하는 순간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사실 이때까지 ‘쇼 업’이 리지같이 창작을 하는 예술가에게만 국한되는 말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루하루 충실히 ‘쇼 업’하면 무엇이든 결과물이 나온다는 의미를 가리키기 위한 말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영화의 후반부, 리지가 전시회에 온 친구에게 자신이 특히나 애정을 가진 작품이 타인의 실수로 타버린 일에 대해 설명하는 말을 듣고 '쇼잉 업'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I didn’t have any control over that.”
“내가 그 일을 통제할 순 없었어” (영화에선 ‘어쩔 도리가 없었어’로 번역되었다)
삶에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 있음을 아는 것. 그 이해가 진정한 쇼잉업을 가능하게 해주는 핵심이라고 느껴졌다. 내 삶에 내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영역이 있음을 알고 받아들이면, 반대로 내 힘을 온전히 쏟을 수 있는 영역은 분명해질 것이다. 꼭 예술가가 아니어도 창작을 하지 않아도 그저 흐르는 내 삶에 온전히 ‘쇼 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분명 리지도 그 일이 일어났을 땐 매우 속상해했다. 또 그 일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자기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나는 일들에도 리지는 분명 성가셔하고 벅차하는 듯 보였다. 엄청난 달관을 한듯한 태도는 없었고 그렇게 즐거워하고 웃는 모습도 많이 없었다.
하지만, 저 대사를 듣고 나자 오히려 그런 리지의 모습이야말로 영성분야에서 말하는 ‘받아들이기, 인정하기, 놓아버리기’ 같은 영적 이해를 지극히 자연스럽게 실현하고 있는 것 같다고 느껴졌다.
억지로 마음을 비울 필요도 없고 억지로 생각과 감정을 놓아버리지 않아도 된다. 평화로운 감정밖에 없는 삶, 모든 걸 다 놓아버리고 행복한 삶이 곧 영적인 삶을 뜻하지 않는다는 걸 점점 깨닫는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나는 삶의 일들을 받아들이고 해야 하는 것들을 하고 할 수 있는 것을 하다 보면 계속해서 내 마음은 저절로 비워지고 생각을 통한 감정도 계속 흘러갈 거다. 그것 말고 더 영적인 무엇을 찾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그렇게 쇼업하는 삶을 살면 영화 속에서 다친 비둘기가 회복해 날아가는 순간처럼, 그 비둘기를 바라보는 리지의 표정처럼 평화롭고 깊이 만족하는 순간도 계속 찾아올 거다.
1인 출판사 하몽이 만드는 영성 컨텐츠 <내면의 공간> 유튜브 채널
글 내용을 바탕으로 만든 쇼츠
https://www.youtube.com/shorts/X1tOddHAU_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