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살이 열매쌤의 교실이야기 #4

아무개는 오늘을 살아낸다

by 참된열매

누구도 자신이 그저 그런 ‘아무개’가 되기를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나 또한 처음 교대에 입학했을 때엔 원대한 포부가 있었다. 수업실습이나 교대의 다양한 행사를 통해 아이들을 만나며 그 아이들의 '위로자'가 되는 교사가 되고 싶었고, 교사 출신 교수님들을 보면서는 나도 언젠가 계속 공부를 해서 저렇게 교사를 가르치는 교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세상에서 가장 높을 것 같던 임용이란 벽을 넘고 발령을 받아보니 '위로자'는커녕 내 앞가림하기도 벅찬 게 현실이다. 교직경력 9년 차인 지금도 여전하다.


방학전증후군이 시작되었다.


올해 아이들은 내겐 참 휴식 같은 존재다. 2년을 연달아 감당하기 어려운 학급을 맡아서 교실붕괴 직전을 경험하고 매 순간 교직은 어쩌면 내 길이 아닐 수 있음을 직면했다. 신랑을 붙들고 제발 사직하게 해 달라 사우디로 파견을 앞두고 있던 신랑에게 제발 나도 데려가 달라고 교실로 돌아가느니 사막 한가운데가 차라리 낫겠다고 울며불며 애원하기도 했다. 다시는 돌아오고 싶지 않던 이 자리였는데. 신기하게도 올해는 크게 나에게 반항하는 아이도 없고 물건을 던지거나 아이들에게 심하게 위해를 가하는 아이도 없다. 고학년이지만 조금 어린 티가 나고 매일 시끌시끌 떠들썩하게는 하지만 지옥 같던 시간을 생각하면 올해 아이들은 마냥 예쁘기만 하다. 주위 사람들에게마다 올해는 쉬는 것 같다고 얘기하게 된다.


그럼에도 어김없이 방학전증후군은 시작되었다. 방학을 2주 남짓 남기고 있는 지금 이런저런 이유가 갈등이 생겨나고 수업에 집중을 못하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 아무래도 내 목청이 커지기 마련이고 좀처럼 화낼 일이 없는 올해 임에도 며칠 전에 나도 모르게 큰 소리도 한번 내었다. 오늘은 내가 없는 사이에 두 아이가 큰 소리로 싸우다 옆 반 선생님께 불려 가 혼이 난 모양이다. 이제 좀 쉴 때가 되었다고 여기저기서 아우성이다.


나는 나대로 아무리 자도 가시지 않는 피로감에 시달리는 중이다. 매일 조금씩이라도 실내바이크라도 타야지 했던 다짐은 살포시 접어 던지고 조금이라도 짬이 나면 누워버리고 있다. 사실 글을 끄적이고 있는 지금도. 교사가 활기차야 학급에 활기참을 알기에 수업할 때는 있는 힘껏 역량을 끌어올려보지만 나도 모르게 짬이 나면 자꾸만 의자를 찾아 앉게 된다.


변화가 필요한 시점


환기를 목적으로 오늘 예정에 없던 자리 바꾸기를 해보았다. 먼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자리일 수도 있지만 그간 앉았던 자리와 주변 친구들을 고려하고 선생님이 정한 자리니 모두 이해와 배려를 발휘해주기를 당부했다. (학기초에 자리는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선생님이 정하겠다 선포해두었다.) 조금 급하게 배정한 자리임에도 새로 정해진 자리에 실망과 기쁨의 감정 표현은 했지만 고맙게도 큰 불만 없이 잘 받아들여 주었다. 반에서 제일 소란스러운 두 탑(?) 사이에 어떤 환경에서도 의연한 친구를 배정했는데 “선생님 양쪽이 다 시끄러운 애들이에요.”하며 그 친구가 말했다. 속으로 ‘그래서 가운데 너를 앉혔다’하며 내심 미안해지던 차였다. 그 말을 들을 탑 중 최고봉인 광0가 “내가 진짜 조용히 할게, 약속할게.”하고 말하는 게 아닌가. 그 말 지킬지 여부보다 그 순간만은 진심임에 틀림없을 아이가 참 기특하고 교사로서 감격스럽기도 했다. 가운데 앉게 된 아이도 더 말하지 않고 웃으면 앉았다.




남은 2주 동안 어떤 하루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다. 각 반에서 흉흉한 소식이 밀려드는 요즘 평온한 우리 반에도 언제든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음에 한 번씩 불안하기도 하다.


연수에 등장하는 강사 선생님들처럼 내로라하는 특기도 없고 아이들에게 큰 영향력을 끼치는 교사도 아니지만, 매수업을 열정적으로 하는 교사도 못되지만 큰 일없이 아이들을 하교시키는 매일이 그 무엇보다 감사한 일임을 이제는 안다. 동기 중에 누구는 일찌감치 연구부장이라고 하고 교육청으로 어디로 뛰어다니는 누구도 있다지만, 그래서 또 한쪽에 치워둔 열등감이 빼곰히 고개를 들게도 되지만 무사히 지나간 오늘이 한없이 감사하다.


오늘도 ‘살아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