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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낙타 Nov 22. 2024

가난이 서러운 당신을 위해 추천할 영화 세 편

누구나 한번쯤은 그 앞에 섰던 적이 있었다

가난. 누구나 한때 경험했고, 많은 이들이 공유하고 있으며, 대다수의 사람들이 체감하는 아픔이자 현상.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금전적/물적 가치로 환원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난은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가장 지독한 재난과도 같다. 가난은 정서적, 심리적 측면에서 상대적 박탈감과 무력감을 유발하고,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며 타인이 우리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오늘 소개할 영화들은 자본주의 사회의 뒷골목, 보편적 삶의 그림자 속에 서서 가난의 필연적 고통을 이야기의 동력으로 삼고 있는 영화들이다. 현재 혹은 과거의 자신에게, "정말 힘들었지?" 라고 물음을 건네게 하는, 그런 영화들이다. 


1. 웬디와 루시

2008, 켈리 라이카트 / 드라마 / 1시간 20분

이야기는 간단하다. 가난한 여자 웬디(미셸 윌리엄스 분)는 일자리를 얻기 위해 반려견 루시와 함께 알래스카로 온다. 하지만 웬디의 자동차가 고장나버리고, 갖고 온 돈도 다 떨어지게 된다. 웬디는 음식을 마련하기 위해 슈퍼마켓에서 도둑질을 하다 발각되어 버리고, 루시는 동물보호소로 보내진다. 웬디는 자신의 전부인 루시를 되찾을 수 있을까? 상황이 점점 더 나빠지기만 하는 어떤 여성의 이야기. 


요약된 이야기를 언뜻 보면 사람과 반려견 사이의 우정을 신파로 다루거나 가난의 비극을 목청껏 소리높여 이야기할 것 같지만, 영화는 전혀 다른 방식을 택한다. 이 영화는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얼마나 막막한 벽에 부딪히는지, 세상은 그들에게 얼마나 무관심한지를 그저 담백하고 차분하게 바라본다. 그 어떤 장황한 미사여구도 없이 말이다. 


어떻게 보면 가난의 핵심은 무관심이라 할 수 있다. 영화는 특별한 대사나 대단한 사건, 격렬한 비판 없이도 가난의 지독한 외로움과 아픔을 전달한다. 인물과 멀리 떨어져 있는 카메라와 정적인 촬영은 시적 아름다움과 빈곤의 황량함이 공존하는 세상의 양면성을 드러내 보인다. <웬디와 루시>는 아마도 슬픔을 가장 거부하는 슬픈 영화다. 가난에 대한 무책임한 연민이나 작위적인 구원 대신 집요한 응시를 선택한 영화다.  


2. 인사이드 르윈

2013, 코엔 형제 / 코미디, 드라마, 음악 / 1시간 45분

역시 간단한 이야기. 함께 노래하던 듀엣이 자살한 후, 혼자가 된 뮤지션 르윈 데이비스(오스카 아이삭 분)는 무일푼에 기타 하나만을 들고 오디션으로 향하는 기나긴 여행길에 오른다. 우연히 떠안게 된 고양이 한 마리가 그를 위로해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다. 점점 더 낮은 곳으로 향하는, 암울한 로드무비. 마침내 오디션을 본 후, 그의 삶은 변화했을까? 그는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게 될까?


가난의 사전적 의미는 물질적으로 풍요롭지 못한 상태 혹은 가진 것이 거의 없는 상태를 뜻하지만, 이 고약한 질병은 삶의 다른 부분에도 전염된다. 우리의 가난은 우리로 하여금 낮은 자존감과 높은 열등감, 더 나은 미래를 좀처럼 꿈꾸기 힘든 비관적 사고방식을 갖게 한다.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한, 고독하고 가난한 뮤지션의 행적을 그저 담담하게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우리도 언젠가 가난이라는 벽 앞에 섰던 적이 있음을 기억하게 되고, 르윈 데이비스를 자연스레 이해하게 된다. 인간 세상의 부조리함을 냉소적인 유머로 표현해오던 코엔 형제는, 이 영화에서는 절제된 화술과 건조한 화면, 고요한 감정적 파동으로 그것을 표현한다. 이처럼 쓸쓸한 영화가 또 있을까. 


3. 아노라

2024, 션 베이커 / 코미디, 드라마, 로맨스 / 2시간 19분

<아노라>는 스트립 클럽에서 스트리퍼로 일하던 여자 아노라(미키 매드슨 분)가 우연히 만난 러시아 재벌 2세 이반(마크 아이델슈인)과 덜컥 결혼했다가, 이반의 부모의 강요에 의해 이혼하게 되면서 생기는 커다란 소동을 다룬다. 이 영화는 '백마 탄 왕자'로 대변되는 신데렐라 스토리의 클리셰를 거꾸로 뒤집어 놓은 뒤, 주인공 아노라의 우여곡절을 재기 넘치는 터치로 그려낸다.  


감독의 또 다른 작품인 <플로리다 프로젝트>나 성매매 종사자들의 한바탕 소동을 다룬 <탠저린>에서도 알 수 있듯, 션 베이커는 늘 자본주의 사회의 어두운 뒷골목을 다루어 왔다. <아노라>가 그 영화들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멜로드라마 및 코미디 장르의 정서를 영화에 접목시켰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션 베이커의 다른 영화들보다 훨씬 달콤하고, 슬프고, 웃기다. 


하지만 장르가 끝나면 극장을 나가야 하고, 꿈에서 깨면 차가운 현실이 우릴 맞이하듯이, 영화는 주인공 아노라의 신분 상승이 좌절되는 과정을 통해 현대 사회의 차가운 속성을 반추하게 한다. 그 차가운 속성이란 바로 인간을 오로지 고용주와 피고용인, 계약과 보험, 계급과 신분으로 규정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작동 방식이다. 우리가 아노라에게 감정적으로 이입하게 되는 건 우리 역시 그러한 규정의 대상이고, 우리는 늘 더 높은 곳을 바라보며 우리 스스로가 가난하다고 느낄 때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그 꿈이 무망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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