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싶었습니다.
누가 옳고 그른지를 가리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저 왜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람마다 살아온 시간이 다르고,
겪어온 상처와 배움이 다르다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되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저는 판단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알아주고 싶었는지 모르겠어요
분명한 건 누군가의 마음을 진실과 거짓으로 나누는 일이
얼마나 쉽게 사람을 다치게 하는지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저는 그저 듣고 싶었습니다.
나의 삶이 앞으로의 나의 삶이 과거에 묶여왔는지
사람이 어떤 삶을 지나 여기까지 왔는지,
어떤 두려움과 어떤 기억 속에서
지금의 생각을 가지게 되었는지를요.
제가 이야기를 건넨 이유는
누군가를 평가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천천히 빛을 기다리듯,
그 사람의 마음이 스스로 열리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종종 마음을 이해하려 하기보다
빠르게 판단하려 합니다.
“진심이다.”
“거짓이다.”
“착하다.”
“나쁘다.”
이런 말들은 마치 사람을 정리해 버리는 것처럼 들립니다.
그리고 그 순간, 마음은 하나의 이름으로 고정됩니다.
저 역시 그런 이름 속에 갇혀본 적이 있었습니다.
편견 속에서 규정되고,
설명할 기회조차 없이 이해받지 못했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압니다.
사람의 마음은
단 한 순간의 행동이나 소문으로 설명될 수 없다는 것을요.
누군가는 상처 속에서 말하고,
누군가는 두려움 속에서 판단하며,
누군가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타인을 오해하기도 합니다.
그것을 알게 된 이후로
저는 싸우고 싶지 않게 되었습니다.
증명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한 발자국 물러나
조용히 바라보는 것이 더 편안해졌습니다.
이해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억지로 바꾸지 않는 일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기다리려고 합니다.
그 사람이 자신의 마음을 꺼낼 때까지,
그리고 저 역시 제 마음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될 때까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요.
과거의 저는
살아남기 위해 순응했고,
거절하지 못했고,
때로는 스스로를 탓하며 견뎌야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저는
그때의 저를 가혹하게 했다는 것을요
그저 말해주고 싶습니다.
“당신은 그 순간을 버티고 있었을 뿐입니다.”
이제 저는 압니다.
이해는 강요될 수 없고,
사과 또한 강요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요.
진짜 이해는
마음이 안전해졌을 때
자연스럽게 피어나는 것이라는 것을요.
그래서 지금 저는
누군가를 판단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누군가의 판단 속에 저를 가두지도 않으려 합니다.
물 위에 떠 있는 연꽃처럼,
세상의 물결은 지나가더라도
제 마음은 조용히 제 자리에 머무르기를 바랍니다.
흔들릴 수는 있지만
가라앉지 않는 마음으로요.
이제 저는
이해받기 위해 애쓰기보다
이해하려는 마음 자체를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저 자신과 타인을
천천히, 따뜻하게 바라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