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워죽을거 같은데 이 뜨거운 커피를 감사하다고 주는거라고?”
팔레스타인-이스라엘을 찾은 것도 벌써 한참 예전 일이 되어버렸다.
바쁘게 달려오던 나는 지금 병가 중이다(다른 글 참조)
Voice for the voiceless.
내 비전을 잊지 않기 위해 이전의 일들을 다시 떠올리고 정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
기자가 되기 전, 국제구호기구에서 일을 했다. 그 때 경험하고 적어뒀던 글을 꺼내본다.
팔레스타인과 커피
“더워죽을거 같은데 이 뜨거운 커피를 감사하다고 주는거라고?”
철조망식 분리장벽 앞. 중동에 위치한 그 곳의 여름은 40도를 훌쩍 웃돌았다. 허름한 집. 그들은 환영과 감사의 표시로 손잡이도 없는 작은 잔을 내밀었다. 처음 만나보는 맵싸한 커피콩 냄새가 솔솔 풍기는 아랍식 커피였다. 그 뜨거움에 잔을 제대로 잡기도 어려웠다.
커피는 소중한 손님을 맞이하는 인사라고 했다. 지난 2012년 8월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북쪽 제닌(Jenin). 국제구호기구 직원으로 나는 현장 취재차 이곳을 찾았었다.
‘으..“ 혀에 한 방울 뜨거운 커피가 닿자 정신이 버쩍 들었다. 에어컨은커녕 선풍기 아니 부채 하나 없는 이곳에서 뜨겁고 진한 커피를 받고 있자니 한국인 일행은 곤혹스러운 표정이었다.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모금이 간절해졌다. 그러나 나는 낯선 객이다. 또 이들의 사정을 알기위해 온 사람이 아닌가. 그들의 정성을 위해서 커피를 사약 받는 심정으로 들고 있었다.
결국 조용히 현지 직원 아쉬라프에게 물었다.
“커피에 넣을만한 얼음 없어요?" 그는 말했다.
”오우, 킴! 여기는 얼음도 없거니와 이 커피는 이렇게 먹는 거예요“
잠시 아랍식 커피를 식히기 위해 내려놓았다. 그 작은 잔에서 뿜어 나오는 향은 매우 강해서 온 방 가득히 느껴졌다.
결국 그 향에 취해 다시 잔을 들고 커피를 마셨다. 쌉싸래한 첫 맛 뒤에 끝에 달콤함이 맴돌았다. 또 다시 한 모금을 혀에 적셨다. 구수한 향이 잔잔히 맴돌았다.
그 모습을 보고는 아쉬라프는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 기운이 나고 더위가 쑥 가실 거라고 말이다.
어느 덧 내 이마에는 땀이 송글송글 맺히고 시간이 지나자 조금씩 시원해지기 시작했다.
마치 마법처럼.
“이 곳에서 물은 굉장히 귀중해요. 물이 있어야 만드는 커피 역시 귀중한 거죠”
분리장벽 바로 앞에 10명의 가족이 방 두 칸 자리에서 살고 있는 압둘라네 아버지는 말했다.
압둘라네가 사는 마을의 이름은 파꾸야. 뜻은 ‘솟아 나오는 물방울’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마을은 심한 물 부족을 겪고 있었다.
이유는 바로 분리 정책. 2002년 이스라엘이 설치한 분리 철조망에 의해 이 팔레스타인 마을은 반으로 쪼개졌던 것이었다.
수원지를 모두 빼앗긴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척박한 바위땅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빗물을 받아 식수로 쓴다고 했다. 내가 받은 커피 한 잔 역시 한 방울이 한 방울이 모여져 만든 셈이다.
그 귀한 커피를 대접해 준 팔레스타인 압둘라네의 마음이 전해져 왔다.
이스라엘과 커피
팔레스타인 서안지구를 둘러보고 일주일 후, 한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이스라엘의 수도 예루살렘으로 향했다.
중간 중간 총을 찬 이스라엘 군인이 서 있고 검문을 하는 부분이 있지만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이 많다.
성지의 메카라고 할 수 있는 이곳은 기독교, 유태교, 이슬람교 3 종교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곳.
지인의 물품구매부탁을 받아 2천 년 전 구약성서와 예수의 흔적이 있는 올드시티를 들어가게 됐다.
구름이 단 한점 없었고 우리나라와 달리 상록수가 없는 곳. 지친 여정에 두통이 밀려왔고 너무나 뜨거운 햇살에 일사병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잠시 올드시티 앞 유태인 촌 계단에 앉아 쉬고 있을 때였다. 한 이스라엘 사람이 말을 걸었다.
“저기요. 괜찮아요?”
찬물을 내어주더니 잠시 기다리라며 컵과 커피를 만드는 길쭉한 주전자 하나를 가져온다.
흥미가 생겨 보니 불 위에 원두와 물을 같이 넣고 부글부글 끓인다. 내게 전달된 아랍식 커피.
몸이 회복될 거라면서 적극적으로 내민다.
그 맛은 내가 팔레스타인에서 마신 것과 같았다. 향긋한 향만 느껴도 반가웠다.
유태인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던 내 마음이 누그러졌다.
갈등을 겪고 있는 두 나라지만 커피는 하나였다. 긴 분리장벽인 두 나라를 가르고 있고 서로를 죽이는 일은 계속되고 있다.
인종과 역사는 다르다. 그러나 같은 커피를 마시고 이방인에게 먼저 손 내밀고 커피를 접대하는 부분은 동일했다.
이 유태인에게 ‘제닌에서도 같은 커피를 받았다.’고 하니 ‘아 그러하냐. 같은 지역에 살고 있으니 우리는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을 것이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이 땅이 원래 본인들의 땅이라는 생각은 확고했지만 그는 ‘평화로운 공존’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커피 한 잔은 어느 덧 열띤 대화의 장으로 변해 있었다.
지난 유태인들의 아픔과 상처를 비롯해 팔레스타인 억압과 관련해서 말이다.
자연스레 우리의
북한과 남한의 이야기로도 흘러간다.
이스라엘 그리고 팔레스타인. 장벽을 두고 너무나 다른 생활 방식과 생각을 지진 그들을 만나고 오는 길. 끊임없이 생각이 꼬리를 물고 또 문다.
커피 향과 그들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그 지역에 자유와 평화가 오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들이 같은 커피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시작으로 공통점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생각이 멈추질 않는다.
아. 이 모든 게 커피 탓이다.
성경에 나오는 나사렛 지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