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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가진 축복을 세어보라’가 독이 될 때

우울증 환자가 BTS 세트를 먹어야 했던 이유


우울, 슬픔, 좌절 모든 감정들도 나를 완성시키는 별자리이다



소수에게 조심스레 말하긴 했지만 우울증과 공황장애로 휴직을 했다고 털어놨더니 여러가지 반응이 있었다.


나를 힘들게 한 회사 상사를 같이 욕해주거나(고맙다 녀석), 자기도 너무 힘들다며 푸념하거나, 그래도 병가를 내서 너는 다행이다라거나, 다 잊고 너에게만 집중하라는 등이 그것이다.


나를 걱정해 준 지인들에겐 고마운 맘이 크지만, 미안하지만 그 위로가 오히려 답답하고 어떤 경우 상처로 다가오는 경우도 있었다. 가장 많이 들은 말을 유명한 문구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거였다.


네가 가진 축복을 세어보라(count your blessings)’


즉, 네가 가지고 누리고 있는 것들에 집중하고 감사해보라는 것이었다. 힘들고 우울한 사안들만 바라보면 더 기분이 다운될 수 있으니 그쪽의 스위치를 Off 하라는 뜻일 게다. 그리고 다른 긍정적인 부분을 바라보면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지리라는 위로의 말이었을 터이다.


좋은 말이다. 내가 잊고 있던 일상의 감사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니까. 하지만 이 말이 고민과 실의에 빠진 사람에겐 다르게 다가올 수도 있다는 점을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


미안하지만 위로가 하나도 안돼


특히 우울증 환자들은 지금 감정의 스위치가 제대로 on-off 가 되지 않는 사람이다. 이런 말은 오히려 ‘어, 내가 너무 예민한 건가’, ‘내가 너무 부정적이거나 두부 멘탈이어서 그랬나’ 이러며 스스로를 자책하거나 부정하고 아픈 감정을 오롯이 맞딱들일 수 없게 된다. 결과적으로 내가 아프고 슬프고 분노하고 우울하다는 감정도 억누르게 되고, 시간이 지나며 점차 결국은 신체와 마음의 병을 더 키우게 된다.


이번에도 누군가는 나를 열심히 위로했다.


“그래도 우리 감사해보자. 지금 당장 몇 개월 쉰다고 넌 재정적으로 힘든 것도 아니잖아. 각박한 한국 사회에서 열의 일곱은 우울증이라드라. 쉬고 싶어도 못 쉬는 사람이 더 많아. 너보다 더 힘든 사람을 떠올려봐 너는 그래도 얼마나 감사하니. 결혼도 해서 남편에게 기댈 수도 있고 예쁜 아이도 있는데... 가족들 봐서라도 힘내”



미안하지만 힘이 하나도 안 났다. 수년 전 취준생으로 낙방에 낙방을 거듭하던 때 내게 비수처럼 꽂혔던 기억이 올라왔다.


수년 전, 난 한 선배에게 내 고민을 털어놨었다. 88만원 세대인 나는 긴 시간 언론사 입사(언론고시) 최종에서 물을 연거푸 먹고 있었다. 이력서만 100개를 넘게 쓰니 이력이 났다. 가장 가고 싶었던 언론사에선 연거푸 최종에서 3번을 미끄러졌다. 최종을 갔던 또 다른 언론사는 내가 점수는 합격선이었지만 성별을 맞추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었다는 소리를 해댔다. 계속되는 거절감에 자신감은 모두 떨어지고 자존감까지 깊이 떨어져 있었다.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로웠고 위로를 받고 싶었다.


하지만 이런 고민을 털어놓은 내게 돌아온 말은 “네가 감히 어떻게 힘들다는 말을 내게 할 수가 있어?”였다. 그 선배는 3~4개월 전 암으로 아버지를 떠나보낸 후였다. 선배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당시 다른 급한 일을 제쳐두고 빈소를 찾고 다른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했다. 부의금과 위로의 메시지를 모아 전하기도 했다. 난 그 선배가 다시 일상의 모습을 찾았다고 순진하게(?) 생각하고 죽을 것 같은 심정을 털어놨다. 하지만 그 선배에게 내 고통은 ‘별 일’이 아니었다. 나는 그때 깊은 상처를 받았다.


고민은 재단할 수 없다


누군가의 고민과 고통은 타인이 경중을 따질 수 없다. 재단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우리는 저마다 고통과 아픔을 품고 살아가고 있다. 다들 다른 기질과 성장 배경을 지니고 있기에 ‘같은 일’을 당해도 마음은 달리 반응한다.


내 눈에는 고민이 아닌 거 같은데 저 사람에게는 죽음까지도 생각하는 힘든 일이 되기도 한다. 반대로 나라면 진짜 견디지 못했을 거 같은데 담담하게 고난을 넘기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그래서 고민의 무게를 거론하며 긍정적으로 바라보라는 말은 누구에게는 독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같은 이유로 나는 고민상담소 유형의 예능도 좋아하지 않는다. 지금은 안 하는 것 같지만 <안녕하세요>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사연자의 사연을 듣고 이게 고민인지 아닌지 투표로 순위를 정하는 내용의 방송이었다. 난 아무리 예능이라고 하지만 용기를 내서 나온 사연자에게 그에 대해 잘 모르는 누군가가 ‘이건 고민이겠다’, ‘저건 고민이라고 하기엔 약하다’라고 판단하는 건 오만하다고 느껴졌다.


<무엇이든 물어보살>이라는 프로그램도 좀 불편하다. 두 mc가 조언의 강약 조절을 지혜롭게 잘한다는 평이 있지만 가끔씩 “너보다 힘든 사람이 많다는 걸 기억해봐”, “적어도 ~~ 한 상황이니까 감사하라”라는 조언이 예민 우울증 환자인 내겐 마음 시리다.


‘내 실수로 생긴 흉터까지 다 내 별자리’


그렇다면 내게 ‘값비싼 위로’를 해 준 존재는 무엇이었을까.


그중 하나는 바로 똥개 한 마리였다. 지난달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다가 숨이라도 제대로 쉬고 싶어서 집 앞 산책을 나갔었다. 솔솔 부는 봄바람마저 따갑게 느껴져 벤치에서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어디선가 개 한 마리가 옆에 슬금슬금 다가오더니 쪼그려 앉는 게 아닌가?


첨엔 ‘안녕’하며 인사를 했다가 그 녀석에게 무시당하긴 했다. 내게 꼬리도 안 흔들어줬지만 그 개는 한참을 내 옆을 지켰다. 그러다가 내가 일어나니 같이 그 개도 일어났고, 내가 다시 돌아가려고 하니 한참을 나를 보고 서 있는 게 아닌가. 말도 안 되는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그 똥개가 내게 ‘따뜻한 침묵’으로 내게 공감해준다는 생각이 들어 왠지 모를 위로가 됐다.


누군가 고통 속에서 방황하는 사람이 있다면, 누군가 방황하는 사람을 지켜보는 사람이 있다면 억지로 아픔과 우울의 감정을 부정하고 내려놓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자꾸 ‘긍정적인 면을 보고 네가 가진 감사할 거리를 찾아내라’는 등의 말을 하지말라고 전하고 싶다.


그저 그 감정을 오롯이 인정하길. 그리고 기억해주길.


방탄소년단(BTS)의 <Answer: Love myself>에 나오는 가사처럼 ‘내 실수로 생긴 흉터까지 다 내 별자리’이고 ‘어제의 나, 오늘의 나 내일의 나도 빠짐없이 남김없이 모두 다 사랑할 나’라는 걸 말이다.



마지막 한마디:

‘개’가 많이 등장한 글이었다

우울증에 큰 힘이 된 BTS. 고마워서 맥도날드 BTS meal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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