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이야기를 쓰는 법> 낸시 슬로님 애러니, 돌베개, 2023
<내 삶의 이야기를 쓰는 법>
(낸시 슬로님 애러니, 돌베개, 2023)
요즘 브런치 글쓰기가 유행이다. 브런치에 올라온 글을 읽다 보면 아픈 이야기들이 많다. 이혼, 유년 시절의 상처, 죽음으로 인한 상실감, 삶의 고난과 시련을 소재로 하는 글이 흔하다. 브런치 작가들이 이런 글을 쓰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시 떠올리기조차 힘든 일들이 대부분일 텐데, 그들은 왜 그것을 글로 남기려는 것일까?
다수의 브런치 작가들은 그들이 글쓰기를 통해 치유되고 성장했다고 고백한다. ‘자전적 에세이’를 쓴다는 것은 내 안에 가라앉아 있는 과거의 역린들을 건드리는 일이다. 애써 외면했던 뾰족하고 비릿한 조각들을 소환하여 펼쳐놓고 더 자세히 살피는 일이다. 이것이 치유로 이어지는 것은 문제에 대한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판단 때문일 것이다. ‘자전적 에세이 쓰기’는 성찰을 바탕으로 한 감정의 명료화를 통해, 자아를 손상시킨 사건의 진상을 객관화시키는 일이다. 글을 쓰면서 자기가 왜 어떤 단계을 거쳐 자기 “삶의 주도권을 내어주고 인질이 되었는지”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다.
<내 삶의 이야기를 쓰는 법>의 저자는 글쓰기의 힘을 믿는다. 그녀는 “고통스러운 부분을 그냥 건너” 뛰지 않고 느끼는 대로 기록하면, 트라우마나 상처를 “아름다운 것”으로 바꿀 수 있다고 확신한다. 글쓰기 전문가인 지은이는 ‘자기 삶의 이야기’를 쓰는 과정을 “연금술”에 비유한다. 그녀는 조앤 디디온의 말을 빌어 글을 쓰는 이유는 오로지 자기가 “무엇을 원하고 또 두려워하는지를 알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이에 덧붙여 저자는 “부서진 마음”을 달래주는 것은 정신과 의사의 처방이 아니라 “자전적 에세이 쓰기”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슬프고 고단한 시간을 웃으며 건너올 수 있었던 자기만의 방식들을 소개하고, 글쓰기가 큰 용기를 주었으며, 자기 영혼을 성장시킨 자양분이었다고 고백한다.
이 책은 글을 쓸 수 있는 용기를 북돋워 주고, 곧바로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는 방법도 구체적으로 안내해 주는 가이드북이다. ‘자전적 에세이 쓰기’ 안내서이면서 저자의 경험을 써 내려간 에세이다. 고난은 성장 기회이며, 아픔 속에도 기쁨이 있다는 것을 배우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책에 있는 길잡이의 안내대로 글을 쓰다 보면, 절망이 가득한 당신의 삶에서도 아름다움을 건져 올릴 수 있을 것이다.
내 부서진 마음을 달래준 것은 정신과 의사도, 처방약도, 위로를 건네는 친구도, 심지어 (내 남편처럼)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배우자도 아닌 자전적 에세이 쓰기였다. 나는 자전적 에세이를 쓰면서 내 분노, 공포, 깨달음을 종이에 옮기고, 내 결혼생활을 정서적 현미경을 통해 들여다보고, 내 강점을 보되 약점도 인정하고, 내 자아에서 여전히 성장시켜야 할 부분을 찾았다. 내가 왜, 어떤 과정을 거쳐 내 삶의 주도권을 내어주고 인질이 되었는지도 이해하게 되었다. 그것이야말로 내게 필요한 최고의 치료제였고 그런 치료제를 처방한 사람은 나 자신이었다.(p.11~12)
우리의 어린 시절, 젊은 시절에 복구 불가능한 손상을 입힌 작은 '살인 행위들'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 우리 안에 머물면서 오히려 우리의 심장에, 간에, 콩팥에 차곡차곡 쌓여 절여지고 있다. 그것들을 우리 몸에서 끄집어내 종이 위로 옮기는 작업이야말로 모든 의사가 내려야 할 처방이다.(p.13~14)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오로지 내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무엇을 보고 있는지, 내가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리고 내가 무엇을 원하고 또 두려워하는지를 알기 위해서다.
-조앤 디디온
이하동문
-낸시 애러니(p.18)
모든 것이 내 영혼의 성장과 관련이 있었다. 영혼의 성장 같은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 누가 알았겠는가? 삶에 운명 따위는 없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에 대해 어떻게 반응할지 내가 선택했고, 그 선택들이 내 삶이 되었다.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집착을 내려놓고 내게 주어진 것들과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 바로 삶이었다. 주어진 것들과 살아가기를 실천하자 모든 것이 달라졌다.(p.20)
“우리는 모두 학생입니다.” 내가 그녀들에게 말한다. “그리고 왜 끔찍한 일들이 일어나는지 물어도 그에 대한 답은 없을지도 몰라요. 아마도 그런 일들을 끔찍하다고 말하지 않는 것, 받아들이는 것, 거부하지 않는 것, 그리고 고통스러운 감정들을 밀어내지 않고 감싸 안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지도 몰라요. 왜냐하면 그런 감정들도 우리 각자의 고유한 오디세이의 일부, 우리 학습과 교육과정의 한 과목일 테니까요.”(p.34)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느끼고, 어디에서 막혀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지를 알기 위해서다. 게다가 운이 좋으면 새로운 통찰을 얻어서 치유의 길로 나아갈 수도 있다.(p.95)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내가 신경 쓸 일이 아니다”라는 문장을 들었을 때 내 인생이 바뀌었다. 자전적 에세이를 쓸 때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하면 그로 인해 침묵하게 된다. 멈추게 된다. 구속당하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쓴 책은 평범하고 안전하고 더할 나위 없이 지루할 것이다.
(p.131)
기독교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천국은 네 안에 있다. 히브리의 현자는 이렇게 말했다. 주머니 하나에는 내가 세상이다라고 쓴 쪽지를 넣어두라. 그리고 다른 주머니에는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쓴 쪽지를 넣어두라. 두 쪽지를 모두 보면서 균형을 잡으라.(p.142)
“우리는 연금술사입니다. 빌어먹을 것들을 황금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일어난 일들, 트라우마, 상처, 작은 ‘살인’ 같은 것들을 뭔가 아름다운 것으로 바꿀 수 있어요. 하지만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그런 것들을 느끼는 것입니다. 고통스러운 부분을 그냥 건너뛸 수는 없습니다.”(p.2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