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정유정이다. 작가에 꼽히면 계속 읽는 성질이 있다. 특유의 문체에 익숙해져버렸기 때문일까? 새로운 문체에 익숙해지기 위한 피로감이랄까, 그런것들을 최소화 하기 위해 나는 소설을 즐겨 읽고, 또 한 작가에 꼽히면 그 작가의 책을 연달아 본다. 최신작 ‘완전한 행복’부터 ‘나의 스프링 캠프’,‘7년의 밤’ 그리고 ‘종의 기원’과 지금 읽고 있는 ‘28’까지...
나의 스프링 캠프가 청소년 권장독서라는 것을 뺀 나머지 소설들은 모두 인간의 어두운 내면에 대해 다루고 있다. 착한 척, 참는 것. 우리에게 지긋지긋한 숙제 같은 것들이 정유정작가의 책을 읽으면서 속에 욱여 넣었던 창자까지 온통 다 끄집어내고 온통 다 뒤집어까발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 한 편으론 내 속에 감춰둔 악의 본성과 선의 본성이 서로 싸우며 더 이상 악에 동조하지도 말고 더 이상 악해지지 않기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읽어나가지만 정유정 작가는 거침없이 멈춤없이, 악의 꽃을 피우고 나는 결국 그 악을 합리적으로 이해해버린다.
분하고,,억울하면 화를 내야 하는데, 그동안 참 많이 참으며 살아왔다.
내가 참아버렸기 때문인지 나는 착한 사람인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악을 이해할 수 있었고, 악을 공감할 수 있었다.
내 안에도 악이 있다.
다만 표출하지 않을 뿐.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어느 책에서 누군가 그랬다.
사람은 모두 악을 담고 있다.
악을 표현하는 사람이 사이코패스로 분류된다고.
그 악이 생기는 건 나 스스로는 할 수 없다. 오로지 환경의 영향이 100%다.
책은 그런 악의 진수를 보여준다. 사람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
p.314 어머니의 증언대로 체구도, 용모도, 머리도 형이 훨씬 뛰어났다. 추종과 숭배의 무리가 후광처럼 형 뒤를 따라다녔다.
반대로 나는 외톨이였다. 내겐 놀이 상대가 필요치 않았다. 혼자 노는데 도가 터 있었다. 함께 어울리는 놀이엔 명시적 규칙과 암묵적 약속이 따르기 마련이었다. 그걸 지키거나 파악하려 애쓰느니 혼자인 게 마음 편하고 좋았다.
p.300 포식자는 보통사람과 세상을 읽는 법이 다르다고, 혜원이 말했다. 두려움도 없고, 불안해하지도 않고, 양심의 가책도 없고, 남과 공감하지도 못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남의 감정은 귀신처럼 읽고 이용하는 종족이라고 했다. 타고나길 그렇게 타고났다고 했다.
p.311 어머니가 틀렸다.
p.84 ‘너는..유진이 너는.. 이 세상에 살아서는 안될 놈이야.’
유진이는 정말 이 세상에 태어나선 안될 놈이었을까? 정말 그렇게 타고나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tv에 나오는 연쇄살인범들의 얼굴들이 떠올랐다. 그들은 정말 태어나면 안되는 사람들이었을까?
내가 바라보는 유진이처럼 간질이라는 질병 때문에 우월한 형에 비해 많이 참고 참아서 생긴 속병 때문에, 어른들이 멋대로 판단하고 멋대로 평가했기 때문에 그래서 그렇게 살아가야 하는 줄 알았기 때문에는 아니었을까.
그러나 그렇게 태어난 아이는 애초부터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던 아이는 그렇게 자라서 결국 자신을 그렇게 만든 어른들, 즉 자신의 모든 환경을 죽이고 자신만 살아 남았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살아남은 생태계의 가장 상위 포식자처럼.
인간은 농사를 짓기시작하면서 군집생활을 하게 됐다.
그러면서 주인없는 땅에 주인이 생기기 시작하고,
집약적으로 말하자면 한정된 땅을 더 많이 가지기위해 치열하게 다투고 착취하며 인간은 서로를 죽이기 시작했다.
이 책에서 작가는 살인에 대한 정당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가족끼리 죽고 죽이려는 행위에 대한 악이 어떻게 생겨나는가에 대해 초점을 두고 읽어야 할 것이다.
법과 질서,도덕이 자리잡은 현대사회에서 살인이란, 벌을 받아야 마땅한 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벌을 받을것을 앎에도 불구하고 왜 살인을 계속 저지르는지에 대해 쓰고싶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