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의 20화를 읽고 와주세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어느 덧 2년이 흘렀다.
식탁위에 반찬이 놓여져 있다.
그리고 숟가락도. 빈 밥 그릇과 빈 국 그릇에 밥과 국만 퍼면 된다.
오늘은 새학기 학교를 가는 날이다.
추운 겨울 방학동안, 대낮까지 늦잠을 자고
패딩잠바에 삼디다스 슬리퍼를 맨발로 신고 비디오를 빌려보고
가끔 오후에는 친구들 집에 전화를 해서 함께 오락실을 다니다
심심하면 또 만화방을 갔다가 오는 길에는 또 비디오를 빌려보는 그런 순환적인 일상은 이제 끝이 나버렸다.
모든 걸 다시 시작하는 등교 첫날이 된 것이다.
승훈은 국부터 퍼고, 그다음 밥을 펐다.
새집을 지은 머리엔 까치가 10마리도 앉을 것 같다.
그릇을 탁탁 내려놓고 국에 밥을 말아 먹기 시작한다.
맛을 느낄 새도 없다.
아침에 이렇게 일찍 일어나는 것은 40일만에 처음이었다.
초점 없이 멍한 시선은 허공에 꽃혀있다.
그럼에도 손과 입은 협응을 잘하여 밥알을 한톨도 흘리지 아니하고 입으로 후루룩후루룩 잘도 집어넣는다.
양 볼이 밥으로 가득 찰 때까지 숟갈질을 몇 번씩 반복적으로 입으로 가져간다.
그렇게 허겁지겁 국에 만 밥을 단 몇 분만에 싹 다 먹고
빈 그릇은 씽크대에 퉁~ 하고 던지듯 집어넣는다.
“승후이 숟가락하고 그릇놓을 때 할미가 고이 집어넣으라 캤나 안 캤나?”
“아. 할매 좀 잔소리좀 그마해라.”
“이누므 시끼가 인제 대가리 컸다꼬 할미한테 대드는 기가!!”
“아, 알따 알따. 할매”
“이 자슥이 할매가 뭐꼬? 할매가? 할매라 카면 되나, 안되나?”
“할매를 할매라 카지 그러면 할매를 뭐라고 부르꼬? 할매님 카까?”
“이눔으 시끼가 안되겠다.”
기미는 잔뜩 난 화로 어디든지 잡히기만 잡혀봐라며 기다란 회초리가 될 만한 도구를 찾는다.
“메롱~ 임자 나 학교 간다.. 크하하하핫”
“이눔으 시끼 이따가 보자. 고마 마 진짜 마마마.”
“안녕~ 할마시. 우히히히”
이제 서서히 사춘기에 접어드려는 승훈을 기미는 잡지 못한다.
키도 기미보다 훨씬 더 커졌고, 덩치도 기미보다 두 배는 더 커졌기 때문이다.
집에서 잘 볼 수 없는 엄마보다 외할미와 정이 더 들어버린 승훈은 외할머니 기미와 매우 정이 깊이 들었다. 소연의 빈자리를 승훈이 메워주고 있었기에
기미 또한 승훈에게 폭 정이 들어 버린 것이다.
학교엘 늦지 않으려고 아무렇게나 입은 옷이다.
어제도 입고 그저께도 입었던 까만색 트레이닝 바지는 얼마나 더러워졌는지 가늠할 수 없이 늘 똑같은 색깔이다. 허연 흙먼지나 보푸라기 같은 것만 조금 떼어주면 어제 세탁해서 입은 바지라고 이야기해도 믿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자질구레한 행위는 하지 않는다.
승훈은 1년 반동안 매일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친구들과 노는재미에 푹 빠져살았다.
공부를 그다지 열심히 하지 않아도 선미는 승훈을 닦달하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크게 기대를 받지 않았던 터라 승훈은 소연이 집이라는 울타리를 완전히 떠나게 되면서부터 시간이 나는 대로 동네 친구들을 찾아다니며 놀았다.
외할미와 누나의 손을 탔던 지난 과거와는 달리 ,
혼자 아무렇게나 입고 아무나 만나고 아무하고나 노는 동안 승훈은 훌쩍 자라있었다.
그리고 승훈은 깨달았다.
자신은 남자다.
그리고 친구들과 노는 맛에 재미를 들인 것이다.
이제야 승훈은 평범한 남학생으로 돌아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 자신은 누나의 그늘아래 모범생 인냥, 우등생 인냥 깔끔하게 차려입고,
손이 많이 탄 아이처럼 말도 아무하고나 못했던 시절을 까맣게 잊고 싶었다.
자신의 인생에 가장 오점이 남는 시절이라고 기억하고 싶었다.
자신에게 아무런 영양가도 남지 않던 그 시절은 다른 누굴 위해 살아온 것처럼 느껴졌다.
누나의 이미지에 흠집이 나지 않기 위해, 엄마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기 위해.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거나 말거나 승훈은 이제 자신에게 모든 관심을 올인했다.
스스로가 즐거워야 했다.
그래야 자신을 찾은 기분이 들었다.
자신은 누구와도 잘 어울리는 유전자를 가진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공부에는 영 소질이 없다.
대신 사람을 좋아하고 많은 친구들과 함께 그들을 돕고, 함께 놀면서 사회성이 부쩍 자라게 되었다.
놀면서도 승훈은 옳고 그름을 배웠고, 알 것은 알게 되었다.
책상에 앉아 공부만으로 세상을 다 배우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승훈은 엄마라는 울타리 마저 엷은 막에서 망사로 또 구멍으로 뚫리게 되면서
어른들로부터 더 이상 배울 것은 없었다.
학교를 가려고 가방을 메고 신주머니를 챙기면서,
엄마가 싸둔 도시락을 챙겨 가지고 나가는 승훈.
아무 생각 없이 터덜터덜 걸어 나가니 학교를 하려고 나온 학생들로 등굣길은 인산인해를 이룬다.
오늘은 3월2일인데도 날씨가 춥다.
꽃샘추위가 찾아왔나보다. 노란색 패딩을 입었는데도 춥다. 추우니까 갑자기 오줌이 마렵다.
‘아, 다시 집에 가까. 그냥 빨리 걸으까, 아 오줌 싸겠다. 저기 버스 오면 저거 타고 빨리 학교 가서 오줌 눠야겠다.’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승훈.
아침에 일어나서 볼일을 보지 않고 나왔다는 것을 이제야 알아차린다.
밥 먹고 옷 입는 것은 했는데 양치질도, 세수도 안했다.
오늘 아침엔 화장실을 아예 들리지를 않았던 것이다. 방학 때 들인 습관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다.
‘씻어라~’
라는 말을 어른들이 해주지 않으면 승훈은 아예 땟국물이 시커멓게 낀 손도 씻지 않은 채로
과자를 뜯어먹고 엉덩이를 긁으며 비디오를 봤으니까.
머리도 까치집 그대로 지어놓고 왔다.
지나가는 까치가 친구들 데리고 같이 와서 둥지라고 앉을 것만 같다.
자기 모습이 그런 줄도 모르고 다리를 꼬고 패딩주머니에 넣은 손으로 아랫배를 꾹 움켜쥐고
오줌을 참고 있는 승훈의 모습은 영락없이 자다일어나 바로 나온 1학년처럼 보인다.
“야 노승훈! 니 그 모습 뭔데!”
누구지?
돌아보는 순간.
...
2년 전 전학을 갔던 지혜다!
지혜가 다시 돌아왔구나!..
그런데 하필 이런 모습으로 다시 마주칠 줄이야..
“아이씨”
하며 외면해보지만 더 가까이 오는 거 같은 지혜는 정확히 승훈 쪽으로 걸어온다.
“야, 니 오줌마렵나?”
승훈보다 키는 작지만 이제 숙녀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지혜는 6학년이 되면서 더 어른스러워 지고
승훈보다 더 누나 같은 모습이었다.
승훈은 지혜를 오랜만에 보게 되었음에도 마음이 다시 설레면서 심장이 빨라지고
오줌이 더 많이 마려워지는거 같다.
“지..지혜야. 내 오줌 쌀 거 같다. 어디 화장실 없나?”
“저기 공장건물에 화장실 있다. 거기 누고 온나.”
“어?, 저기? 어어 그래. 내 신발주머니랑 도시락 여다 좀 두고 갔다오께. 이거쫌 봐도이”
“어. 갔다 온나. 보고 있으께.. 크큭”
손으로 코와 입을 가리며 웃는 지혜
승훈은 재빨리 화장실 쪽으로 뛰어가서는 볼일을 본다.
밤새 참았던 누런 오줌이 쏴아하고 폭포수처럼 쏟아지듯 나온다.
변기에서 튀어 자기 옷에 버릴까 조심스럽게 강약과 방향을 조절한다.
한 1분은 서 있었던 것 같다.
옷을 추켜 입고, 물을 내리고 버스정류장으로 달려 나왔는데 사람들은 없고
승훈의 신발주머니와, 도시락가방만 덩그러니 바닥에 놓여져 있다.
승훈은 신주머니와 도시락가방을 집어들고 주변을 두리번 두리번 거린다.
아무리 찾아 봐도 함께 기다려주기로 했던 지혜는 없다.
승훈이 오줌을 누러 간 사이에 버스가 와서.
의리 없는 윤지혜는 기다려 주지도 않고 혼자 그 버스를 먼저 타고 가버렸다.
“아!! 윤지혜 진짜! 아 미치겠네.”
승훈은 열심히 뛰었다.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학년주임께 머리한대를 똬! 맞고는 재빨리 계단을 두 칸씩 타고 올랐다.
‘드르륵 탁!’하고 뒷문을 열고 다시 ‘다르르 특!’하고 조심스레 닫고는 자리에 앉았다.
대각선 앞에 앉은 윤지혜가 키킥 하고 웃는다.
승훈은 열을 받아 지혜에게 따지고 싶었지만 참는다.
승훈 옆에 앉은 짝꿍도 방금 전에 왔는지 한 손을 귀 옆으로 올리며
"안녕!"
하고 반갑게 인사를 하는데, 두 볼이 새빨갛다.
“나는 민우다. 김민우. 니는 이름 뭔데?”
“나는 승훈이다 . 노승훈. 작년에 몇반 이었는데 얼굴이 낯서노?”
“내 5학년 2학기 때 전학 왔었다.”
“아 어쩐지.”
“어디에서 전학왔는데?”
“저기 기계”
“거기도 국민 학교 있나?”
“그래. 당연하지. 그카마 나는 어디다니다 왔겠노?”
“그래 그렇겠네.”
하고 둘은 마주보며 웃는다.
“자, 조용!!”
탁탁 교탁을 치시며 칠판에 최, 상, 식 이라고 쓴다.
“자. 오늘부터 6학년 4반 담임을 맡게된 나는 최상식이다. 반갑다”
“안녕하세요”
“방학동안에 뭐하면서 보냈노. ? 아까 떠들던 느그 둘이 함 일나봐라.”
“예?”
“우리요?”
민우가 묻는다.
“그래. 떠들던 아들 느그 둘밖에 없대. 둘이 아는 사이가?”
“아니요 오늘 첨 봤는데요.”
“근데 와 첫날부터 친한 척 하노?”
“친한 척 한 게 아니고 인사했는데요?”
“그래? 잘했다.”
“끼약!!”
“아하하하하”
“웁푸하하”
“꺄하하하하하”
“으하하하할할할”
아이들은 왁자지껄 시끄럽게도 웃어재낀다.
처음이라 긴장된 삼엄한 분위기가 해제되는 순간이다.
“느긋들 웃는게 와글노?”
“아, 선생님 너무 웃겨요.”
“내가 웃기다고? 내가 무슨 코미디어이가?”
“꺄하하하하”
“으하하하”
“느긋들 진짜 웃는거 방정맞네. 아따 우리반 시끄럽게 생겼다.”
“아하하하하하”
“낄낄낄”
“풉”
지혜는 머리를 기를 수 있는 대로 한껏 기르고는 단정하게 반 머리로 머리를 묶었다.
뒤에서 봐도 지혜는 단정함이 묻어있다.
그리고 더욱 성숙해져 있다.
이제 올해가 가면
남중, 여중으로 갈려 보기 어려울 것이다.
승훈은 지혜를 다시 만나 너무 기쁘다.
다시 한반이 된 지혜. 승훈은 지혜와의 질긴 인연에 대해 뭔가가 있을 것이라고 엮어 생각한다..
과거에 지혜에게 의지했던 시절,
그리고 다시 만나 반가운 마음.
하지만 예전처럼 의지하지 않게 될 것을 예감했다.
자신은 이제 날개를 달아 훨훨 날아다니고 있었으니까...
to be continue...
브런치작가 정글
2021.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