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제) 어쩌면 긴 소설이 될 이야기.22(연재소설)
선미의 불행
앞의 21화를 보고오세요.^^
봄 햇볕이 따스하다 못해 한낮에는 훈훈한 공기와 뜨거운 햇볕으로 얇아진 긴 팔 점퍼를 입어도 덥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축구와 고무줄놀이를 하던 아이들은 모두 땀을 흘리며 각자 교실로 돌아왔다.
5교시는 음악시간이었다.
“자. 전부 오늘 리코더 준비해왔재?”
“네~!!”
“선생님! 노승훈 아직 안 왔는데요? 김민우하고요.”
지혜의 짝은 자기 뒷자리에 앉은 승훈과 민우가 돌아오지 않음을 선생님께 고한다.
“자, 지난 시간에 배웠던 도레미 솔솔솔 솔미,파라라 라파, 미파솔솔 라솔파미 솔파미레미 알제?
그거 연습하고 있어라. 반장! 연습시켜라 .”
6학년 7반 반장이 된 전혜진은 교탁 앞으로 나가 리코더로 먼저 시범연주를 한다.
선생님은 교실 밖을 나간다.
“큭큭 하이튼 선생님은 곡 제목을 몰라가 저카시는거 맞제?”
“그래, 울쌤 진짜 인물이다.”
“근데, 아까 봤나?”
“뭐?”
“아까, 승훈이랑 민우 옆학교 5학년 깡패랑 말싸움 하던데?”
“맞나?”
“어! 못봤나? 승훈이 아 좀 이상해졌다. 옛날에는 순디였는데, 지금 좀 삐딱해졌다.”
“그래 맞재? 나도 그래 생각했는데, 니도 그래 생각했네. ”
“승훈이 집에 무슨 일 있나?”
“몰라, 몇 년전에도 누나가 학교에서 문제 일으키고 그카디 요새는 같이 안 산다는 말도 있고 그렇드라.”
“근데 어디서 싸웠노? 난 왜 못봤지?”
조용히 듣고 있던 지혜는 인상을 찌푸린다.
재작년 헤어질 때 나랑 했던 약속을 지키지 않는 승훈에게 화가 나는 지혜.
승훈의 이야기를 호박씨처럼 까는 아이들의 속닥거림이 귀에 거슬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다시 전학 온 지혜에게 친구들은 예전 같지 않았다.
은근한 따돌림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사이 선생님은 운동장으로 나가서 승훈과 민우를 찾는다.
요즘 승훈의 수업태도며 시험점수 등 학업성적 부분에서 모든 것이 뒤떨어지는 것이
담임선생님은 못마땅했다.
이제 6학년이면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공부가 많이 어려워질 시기인데,
이런 판국에 아이가 실종이라도 되면 어쩌나 내심 걱정되는 마음으로 부리나케 쫓아나가본다.
운동장 여기저기를 수습하는 형사처럼 돌아다니다 마침내 담임선생님 성식은
수돗가에서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남학생 4명이 보인다.
점점 다가가니, 아니나 다를까 ,
승훈과 민우가 땀 범벅이 되어 아래학년 아이들을 수돗가에 기대게 한 채 각목으로 엉덩이를 때리고 있다.
“세상에! 야! 노승훈! 김민우! 임마! 느긋들 거서 뭐하노? 지금! 어?!!!! ”
“아이씨, 선생님이다. ”
고개를 떨구며 한숨을 쉬는 승훈.
그 사이에 다른 학교에서 온 불량학생들은 이때다 싶어 뒷문을 향해 후다닥 뛰어가버린다.
“자들이 눈데?”
“아, 아들이 버릇이 없어가꼬.”
“어느 학교 아들인데?”
“덕임 국민 학교 아들요.”
“너거가 뭔데 다른학교 아들을 조질라 카노? 어?!”
“아니, 자들이 먼저 우리학교에 쳐들어 와서 우리학교 아들 때리잖아요. 그래서 제가”
“됐고! 이거 학교장 쌤한테 보고되면 느그 우애되는지 아나? 저쪽 학교에서도 난리 나고 우리학교에서도 난리 나고, 어?! 학교끼리 어?! 쌈난다.어?! 그라고 노승후이. 니 요새 와이카노? 어?! 니 임마 내일 느그어머니 모시고 학교 온나.”
“네????”
갑자기 승훈은 엄마를 모시고 오라는 담임선생님 말에 화들짝 놀라 눈이 휘둥그래 진다.
뒷짐지고 짝다리를 짚던 자세에서 무릎이 부러진 사람처럼 다리를 접어 바닥에 털썩 주저앉고 만다.
“아, 쌩님 쌩님.. 죄송합니다. 제발 한번만 봐주세요. 진짭니더. 이번 한번만 봐주세요.”
두 손에 불이나도록 빌며 울상이 된 승훈.
“안된다.승훈이 니 요새 학교 댕기면서 정신 똑바로 안차릴래? 내가 니 어머니랑 면담 좀 해야겠다.”
“아, 안되는데...”
“내일 두시까지 오시라 해라!”
“아, 쌩님. 저희 엄마 일하시는데요.”
“그러마 임마, 니는 느 어무이가 일까지 해 가시면서 니 키우시는데 니는 므하노? 자꾸 말썽만 부릴래? 어이?!!! 콱!마~”
선생님의 때리는 시늉에 쫄아서 두 손으로 머리를 막는 승훈.
“그라마, 일단 내일 전화로 말씀드릴게 있으니까. 느그 어무이 집에는 언제 오시노?”
“전화로요?,, 집에 오시면... 어...”
승훈은 잔머리와 함께 눈알을 굴리며 시간을 지체시킨다.
“빨리 말 안하나!!!!!!!”
“저녁 일곱시요!”
“그래 알았다. 교실로 올라가라.”
“네...아,,,안되는데...”
승훈은 자기도 모르게 쌓인 울화를 못된 동생들을 혼내는 것으로 풀고 있었다.
혼날 생각으로 갑갑해진 기분이 승훈의 마음을 짓누른다.
승훈이 교실로 들어가자, 반 아이들은 하나가 되어 함께 승훈의 모습을 눈으로 쫓는다.
반장 혜진은 입은 리코더를 불면서 눈은 호두알처럼 굴리며 승훈과 반 아이들을 훑는다.
한 편, 약국으로 출근한 선미는 며칠 계속되는 악몽으로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오늘도 컨디션은 영 엉망이다.
“어이, 내가 언제 쿨럭~! 빨간약 달라캤능교! 감기약 달라고 감기약. 쿨럭쿨럭~!
저 있네 쌍방탕! 내 이거 확인 안하고 쿨럭~!
집에 갔다가 쌍방탕인줄 알고 목에 쿨럭~! 들이부어쓰마 우얄뻔 했능교? 쿨럭쿨럭쿨럭~!!!!”
“네, 아이고, 죄송합미더. 근데 이거 빨간약 뚜껑에 솔이 붙어있어가 안 마셨을 꺼라예.”
“그걸 말이라고 하능교 이 켈록켈록~!!! 양반아!!!!!!!!!!켈록켈록켈록~!!!”
선미의 농담에 된통 화가 난 할아버지손님이 선미에게 고함을 친다.
“이 아줌마가 진짜 켈록켈록~!! 정신이 있나 없나. 켈록~!!”
“죄,,죄송함미더.”
할아버지손님은 곧 죽을 것 같은 기침을 세 번 하시며 나가신다.
“아 참내 , 싹싹하이 잘하디만 요새 와이카노?”
“약사님 죄송함미더.요새 머리가 넘 무겁내예. 밤에 잠을 못자가 그런가봅니다.”
“선미쌤 요새 무슨 고민 있나?”
“아, 아니라예.”
선미는 사실 꿈에 어릴 적 생활했던 윤 교수댁에서의 악몽이 되살아났다.
무심코 깨어보면 깜깜한 새벽.
창 너머 달빛아래 흔들리는 나무 그림자가 선미의 책장에 비친다.
호영이 쓰던 책상과 책장을 물려받은 선미.
책장에 붙은 네잎클로버 대신 어둠속 달빛에 비친 가녀린 나뭇가지들이 바람에 날려 흔들거린다.
‘똑똑’
문을 노크하던 소리.
달그락거리며 문고리가 돌아가면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열리는 방문.
그 사이로 들어오는 커다랗고 까만 그림자.
선미가 누운 곳으로 다가오는 낯선 존재.
부르르 떨리는 선미는 이불을 턱까지 올리고 곧이어 눈까지 올린다.
하지만, 소름끼치는 기운이 발 밑에서부터 기어 올라온다..
맨 몸을 쓰다듬으며 아랫도리를 탐한 짐승은
한 손으로 선미의 입을 막은 채 거친 숨을 몇 번 몰아쉰다.
소리를 지르고 싶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몸을 움직일 수 없다.
억지로 눈꺼풀만 뜨면 기미네 집이다.
“하아~”
식은땀이 송글송글 맻히고, 입 안을 가득메운 침을 꼴깍 삼키지만 목젖이 굳은 것처럼 침이 넘어가질 않는다.
얼마나 굳어버렸는지, 손가락, 발가락 하나 조차 움직여지지 않는다.
“음음”
목소리를 내어본다.
소리가 들림을 느끼며 침을 다시한번 크게 꼴딱 삼킨다.
다시 몸 전체를 움직여보자 바쁜 호흡이 느껴진다.
선미는 속으로 울음을 삼킨다.
선미의 악몽이 또 다시 시작됐다.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 질 줄 알았는데, 사람의 기억까진 지울 수 없나 보다.
죽을 때 까지 평생 안고 갈 비밀이기에,
선미의 악몽조차, 숨길 수밖에 없는 죄가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선미의 죄가 아니었다.
죄 라면, 어여쁜 숙녀가 남의 집에 함부로 들어가 살았다는 것.
엄마끼리 서로 아는 사이였고, 한 동네에서 함께 가족처럼 지낸 그 곳에서 일어난 일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
선미는 호영에게 말할까 말까 하루에도 수십번을 넘게 고민했다.
믿어줄까?
뭘?
어떻게 이야기 하지?
왜?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것이다.
내가 당한 이야기.
호영에게 도움을 청하자.
내가 힘드니까..
아니아니,
호영이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볼 수 없다.
내게 실망할 모습을 차마 볼 수 없다.
결국 말 할 수 없었다.
말하지 않는 게 선미가 할 수 있는 최선이자,
모두를 위한 일이었다.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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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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