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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글 Jeonggeul Jun 20. 2022

세상에! 나의 아들이 국제학교를 졸업하다니. (3)

.

하노이에만 있다는 그 학교.

나는 베트남맘들의 모임이란 카페에 가입을 했고,

그 학교에 대한 정보를 얻기위해 학교와 교육관련 글을 읽었다.

다른 많은 학교들의 정보가 있었지만 내가 알아보는 학교는 나와있지 않았다.


교육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카카오톡 대화방은 없는지 게시판에 글을 올려서 물었보았다.

한 엄마가 댓글로 카카오톡대화방 정보를 올려주었다.

바로 카톡대화방에 들어갔고,

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

내가 알아보고 있던 학교에 대해 질문을 했다.


어떤 엄마가 이야기를 했다.


그 학교 올해 호치민에도 새로 생겼어요.신생학교이긴 한데 한국교육부사이트에는 인가받은 학교목록중에는 없어요.무턱대고 들어갔다가 그 학교에서 학적은 인정못받고 허송세월보낼수도 있으니 잘 알아보고 들어가세요.


학적을 인정못받는다고?

그럼 아이가 그 학교를 다녀도,

나중에 검정고시를 쳐야만 한다는 거야?


불안했다.

교육부홈페이지에 해외국제학교중 인가받은 학교목록이 있었다. 둘러보니 하노이에 있는 학교는 인가목록중에 있었지만, 호치민시에는 그 학교이름이 없었다.

또 머리가 아팠다.

그런데 자세히 읽어보니 서류간소화로 인가받은 학교목록이었지 학적인정되는 학교목록이 아니었다.

이건 아무의미가 없어보이긴 했지만 불안했다.


그냥 베트남 가는일 자체를 다시 생각해봐야 했다.

다들 쉽게 떠나는데 나는 왜 이렇게 힘든가 했다.


그냥 한국학교를 가야겠다 결심했다.

일단 베트남을 들어가고보자.생각했다.

집부터 알아보자 생각하고 비행기표를 끊으려고 했더니,

코로나라 개별입국은 허용되지 않았고, 특별입국만 허용되었다.

주재원가족으로서 나간다는 서류가 입증이 되어야했고,

호치민시의 허가를 받아야했다.

출국하기위해 번역 공증서류만 몇가지가 필요했다.

막상 나가려고 준비를 하니, 이렇게 내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많았다.


고개넘으니

또 다른 고개가.

또 넘으면

또 다른 고개가.


마음만 먹으면 일사천리로 이루어질거라 예상했던 일들이 꼬일대로 꼬여있었다.

발길닿는곳마다 거미줄이 쳐져있어서

얼기설기 내 발목을 잡는 거미줄을 거둬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순간 화가 치밀었다.

쉽게 내뱉은 남편의 '니가 온나 호치민' 이 말에 짜증이 솟구쳤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처음엔 미온적으로 그냥 도와주겠다는 말만 했다. 그러다 내가 그동안 알아본 절차와 과정들을 열불을 내며 이야기하니 그제서야 준비하는게 많이 어렵다는것을 알게 됐단다.

간단한 절차에 남편회사에서 서류 한가지만 도와주면 될 줄 알았던 남편이었다.


그런데 번역공증해주는 업체를 고르는것부터 우리는 의견이 맞지 않았다.

 

그것때문에 시아버님,시어머님까지 나서서 화해를 시켜주셨다.

그 감정소모로 이틀이란 시간이 그냥 흘렀다.

더 화를 냈다간 둘다 베트남이민건이 없던 일로 하자고 말할 분위기였다.


서로가 참고 한발 물러서서 이성적으로 처리하기로 했다.

번역공증관련부터 주재원초청서류까지 모든건 남편이 하기로 하고

나는 학교관련서류를 책임지고 알아보기로 했다.


학교를 정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학교를 생각하자니, 비행기표가 제날짜에 나와야하고.

집을 생각하자니, 학교와 가까운곳을 선택해야 했다.

비행기표에만 목을 매달수는 없었다.

어떤학교라도 합격을 해놓고 비행기표를 최대로 빨리나오게 하는 방법이 최선이었다.



다시한번 학교를 알아봤다.

한국학교는 당장은 불가능해보였다.다른학교를 우선 다니면서 알아봐야 하는 방법 뿐이었다.

기독교재단학교와 호치민에 인가가 나지 않은 두 곳의 학교를 목표로 준비했다.

기독교재단학교에 문의를 했다.

그런데 대뜸 

비행기표는 끊었나요?

하고 물어보셨다.

그 학교는 코로나시국에 특별입국으로 기약없이 밀리고 있는 비행기편의 사정을 알고있었다.

그래서 아직 끊지 못했다고 하니,

비행기표가 나오면 그때 원격테스트를 보겠다고 했다.

테스트를 본다고 해도 다 제학년에 합격할 수 있는것도 아니었다.


또 한차례 낙심했다.



남은 학교는 호치민에 있는 인가받지 않은 학교였다.

하노이학교홈페이지를 찾아 입학상담 연락처로 연락을 했다.

저는 호치민에 살 예정이고 호치민학교에 아들을 보내고 싶은 엄마입니다.호치민 학교 입학을 하려면 누구와 이야기를 해야하죠?


어눌한 한국말로 호치민입학상담처를 카카오톡연락처로 보내주셨다.

참 고마웠다.


호치민학교입학상담사와 카톡을 나눴다.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테스트는 지금 당장가능하구요. 정원미달이라 떨어질 일은 없어요.
 그러나 인가를 받지않은게 걸렸다.

그 부분을 이야기했더니


 여기는 하노이분교개념이라 문제가 생기면 하노이학적으로 처리를 해서 무조건 졸업을 시켜줍니다. 그리고 신생학교라 인가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 있어요.


안심이 되었다.


곧바로 아이테스트날짜를 잡았고 테스트를 했다.

영어면접이었다.

선생님도 외국인이었다.

아들은 긴장했다.

몇 가지 질문을 영어로 하시는데 아들은 초집중한 모습으로 간단한 대답을 했다.

뜻밖에 면접선생님으로부터 great 라는 평가를 받았다.

시험은 합격이었다.


일주일 뒤 면접을 본 학교에 전학서류를 제출하고 정식으로 입학하기위해 절차를 밟았다.

일주일 뒤 재학증명서를 받을수 있었다.

등록금을 납부했다.

학교 한곳을 정하고 나니. 집을 구하는것도 쉬웠다.

문제는 비행기표였다.

적어도 개학하기전에는 베트남엘 들어가야 했다.

그런데 호치민시에서 허가가 나야하고, 또 우리가 격리하게 될 동나이시에서도 허가가 나야했는데, 그 서류들의 허가가 안나는 것이었다.

갑자기 우리가 서류를 제출한후 기다리는 사이에 결제바로 직전에 제출해야하는 서류종류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6주를 기다리고,

2달이 다 되어갔다.

베트남은 모든게 느렸다.

하루하루 내 속은 타들어갔다.



기다리다지쳐 포기했을때쯤 허가가 났다고 한다.


그렇게 이삿짐을 싸고 컨테이너로 먼저 실어보내고,

우리는 비행기를 탈수있었다.

격리를 끝내자마자 입학한 국제학교의 개학이 원격수업으로 이루어졌다.

아이는 곧  잘들었다. 수업이 재밌다고 했다.

아이들도 재밌고, 선생님들도 친절하다고 만족해했다.


한국학교의 징검다리로 잠시 건널곳으로 생각을 했는데,

아이는 이 학교에 차츰 정이 들어가고 있었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9월학기제라서 6학년1학기를 건너뛰고 바로 2학기가 되었다.

아이는 영어로 수업하는 방식에 익숙해져서 영어가 많이 늘었다.

졸업식에 참석했던 날 다국적선생님들과도 다 친하게 지내고 있었다.

아이아빠 회사에서 국제학교  학비를 지원해주는데,

다음학기는 한국학교학비만큼만 지원해줄거라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우여곡절끝에 입학한 국제학교에서 어쩌다가 졸업은 하게 되었다.

다음학기엔 한국학교를 갈수있을지 모르겠지만, 아이는 국제 학교가 더 좋다고 한다.

이를 어째

어쩌면 좋을까.



[ㅡ끝ㅡ]


2022.06.20

브런치작가 정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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