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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글 Jeonggeul Jul 08. 2022

마흔 하나에 임신(2)

여긴 베트남이거든요.

아직 성별을 알 수는 없으나, 아마 태몽 꾼 것을 미루어 보아, 딸일 것이라 믿었다.

아들이 있으니, 딸이 하나 있으면 딱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해왔는데,

친정엄마가 꾸신 꿈도 딸 태몽이고, 내가 꾼 꿈도 딸 태몽이고, 남편이 꾼 꿈도 딸 태몽이었다.

그런데 아들만이, 자기 동생은 남자일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아마 아들은 자기와 성별이 같은 남자동생을 원하는 것 같았다.


입덧이 너무 심했다.

첫 애때도 엄청 심했었지만, 둘째는 타국에 와서 그런지 더 심하게 느껴졌다.

먼저 먹고 싶은 게 없었다.

그리고 더운 날씨가 입덧을 더 부추기는 것 같았다.

아이를 위해 열렬히 아무것도 하지 않을거라 다짐했지만, 입덧이 나를 아무것도 못하게 만들줄은 몰랐다.

밥 냄새가 그리도 맡기 싫었다.

밥솥에 앉힌 쌀이 밥이 되는 동안 나는 냄새.

그 냄새만 맡으면 헛구역질이 나왔다.

그런데 빵냄새는 나쁘지 않았다. 뭐라도 먹어야 겠기에 빵냄새가 나는 크래커를 사다가 아침공복에 한 개 씩 먹었더니 입덧이 조금 가라앉았다.

입덧은 빈속일 수록 더 심해지는 거 같았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위가 비지 않도록 수시로 무언가를 먹었다.

심지어 물을 달고 살았다.

물이라도 위에 차 있으면 입덧이 멎는 듯 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과연 이 나라에서 아이를 낳기에 괜찮을까 불안한 생각이 들어, 커뮤니티에 글을 올렸다.

'호치민에서 아이낳고 키우기 좋은가요?'

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렸다.

그랬더니 생각보다 많은 엄마들이 댓글을 달아주었다.


"여기는 출생율이 높아서 산부인과는 괜찮아요."

"저도 여기서 낳아 기르고 있어요."

"산후도우미 잘 구하셔야 해요. 미리 알아보세요."


그래.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구나..


그런데 참, 한국은 조리원이 있지? 여긴 조리원이 없나?

궁금해서 댓글을 달았다.


'여기 조리원은 없나요?'


"여긴 병원에서 분만하고 4박5일 후 바로 집으로 퇴원해요. 조리원은 없어요. 대신 산후도우미를 고용하죠. "


그랬구나..





남편은 내가 한국에 가서 애를 낳아 오기를 바랬다.

베트남의 의료시설을 믿지 못하겠단다. 그리고 어른들에게 애기를 보여드려야 하니 한국에서 낳는게 맞다고 생각한단다. 그것도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여기서 애를 분만만 하고 조리원 없이 바로 집에서 신생아를 데리고 키우려니 겁이 났다. 첫째때는 조리원에서 2주 있다가, 친정에서 50일까지 있다가. 시댁에서 50일에서 70일까지 있다가 또 100일이후에야 우리 집으로 데려 왔으니, 첫째는 그야말로 조리원과 어른들의 도움으로 갓난쟁이때를 거저 보냈기 때문이다.

그랬던 내가 둘째를 여기서 낳겠다고 마음 먹은건 공황발작 때문이었다.

비행기를 한번 타면 독한 수면제를 먹어야 하기 때문에, 그 약이 둘째에게 안 좋은 영향이 갈까봐 이 곳에서 낳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남편에게 그 이야기를 전달했더니, 그럼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호치민에서 분만하기로 결정을 하고 산후도우미를 알아보기로 했다.

아직 산달이 많이 남았으니, 도우미 구하는 건 그 때가 다 되어서 구하려고 했다.


아는 언니와 점심약속이 있어 함께 점심을 먹는데, 언니가 갑자기 도우미는 구했냐는 것이다.

그래서 산달 다되어서 구할거라고 했더니, 언니가 놀란듯이 말했다.

"지금 코로나 끝나서 한국에서 사람들 엄청 들어오는데, 도우미도 없어요. 미리 구해놔야  해요.!"

라고 말이다.

"그리고, 산달 다 되어서 구하면 몸이 힘들어서 그 때 집안살림하는 법이나 가르쳐 줄 수 있겠어요? 미리미리 알려주고 시켜야 애 낳아도 서로가 편하죠."


그러네..

아,

나는 왜 이렇게 모르는게 많은 것일까.


'근데 산후 도우미 한명만 있으면 될까? 전적으로 아이만 봐주실텐데, 나머지 집 살림이며 밥 하는건 내가 해야한단 말인가?'


또 걱정이 앞섰다.

산후도우미 한분과 음식해줄 이모가 필요할 것 같았다.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을 읽어보니, 대체적으로 산후도우미 분이 집 청소까지 하신다고 한다.

그럼 우리 식구가 먹을 밥이 문제인데, 음식하는건 내가 회복될 한달만이라도 이모가 도와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여기는 베트남이란 말이다.

이모를 구하면, 음식은 죄다 베트남음식을 해주실텐데, 그게 우리 입맛에 맞을까 또 걱정이 앞섰다.

'아.........

그럼 지금부터 산후도우미를 구해야 하는데, 어떻게 구해야 하지?

한명? 두명?

산후도우미? 청소도우미? 요리도우미?

세명?

아.......'



정말 머리가 아팠다.

산후도우미 문제는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아는 것도 너무 없고 생각하기에 머리가 너무 복잡했다.

10월이 산달이니 9월부터 전투적으로 이모를 구하리라 미뤄버리고 지금은 내 몸관리에 신경을 썼다.





한국에서 계속 먹어온 공황발작, 우울장애 약이 다 떨어져서 남편에게 약을 사다달라고 부탁을 했다.

약 성분을 한국에 있을 때 진작에 의사선생님께 물어서 적어왔기 때문에, 그 종이를 남편에게 보여주면서 약을 부탁했는데, 약국에 도착한 남편이 전화가 와서,


"여기 약사님이 카시는데, 산모한테는 이 약 못판다는데?"


라는 것이다.

뭐지?

..

내가 임신하기 전에 먹었던 약이었으니, 임신하고 나서 이 약을 먹어도 되는지 의사와 한번도 상의한 적이 없었다.

순간적으로 충격이 컸는지, 약사의 말을 듣고 난 후 나는 갑자기 호흡곤란증세가 몰려왔다.

갑자기 공황발작이 일어난 것이다.

그래서 일단 약을 사지 말라고 이야기를 한 후, 나는 몇분동안 호흡곤란으로 죽을 고비를 넘겨야 했다.

그렇게 며칠동안 약을 먹지 않았다. 그리고 죄책감에 시달렸다.

당연히 괜찮을 것이라 생각하고 먹었던 약이 산모에게 판매 금지약물이라니..

내가 몰라도 너무 몰랐던 것이다. 매일 울면서 호흡곤란에 시달렸다.


이러다 곧 미칠 것 같았다. 죽을것 처럼 힘들었다.

할 수 있는건 한국에 있는 내 주치의였던 선생님께 메일을 보내는 것이 다였다.

다행히도 선생님은 메일을 읽어주셨고, 답장도 해주셨다.

'임신 중에도 정 심하면 복용해도 되는 약물이긴 하지만, 태아상태를 주시하면서 서서히 약을 줄여나가길 권장합니다.'

선생님의 기적같은 답변이 정말 고마웠다. 특히나 임신중에도 복용해도 되긴 하지만. 이라는 문구가 나를 살렸다.

그렇게 며칠동안 우울과 공황발작으로 지옥같은 나날들을 보냈던 나는 다시 약을 복용하면서 안정을 되찾아가게 되었다.


4주가 지나 다시 산부인과를 찾았고, 선생님께 신경정신과쪽 약물을 복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씀드렸다.

선생님은 그 약을 서서히 줄여나갈 것을 권장했다. 그러나 이제까지 아이의 상태는 무척 건강하기 때문에, 이전에 먹었던 약으로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그 말씀 또한 나를 살렸다. 나는 너무 미안하고 또 감격해서 그 자리에서 울어버렸다.

아이에게 너무 미안했다. 그리고 나는 너무 무서웠다.

안그래도 나이가 많은 노산이었던지라 늘 걱정을 안고살았는데..

내가 모르고 먹었던 나만을 위한 약이 아이에게 행여나 뇌나 심장 또는 아이의 모든 부분에 나쁜 영향을 끼친건 아닐까 라는 생각에 너무나 괴로워했다.


이제 그 약을 계속 복용할 수는 없는 문제였다. 서서히 끊어가야 한다는게 숙제였다.


그렇게 또 우여곡절을 보냈다.



그나저나, 아들일까 딸일까.

지난 번에 왔을 때에는 이번에는 볼 수 있다고 말씀하셨던 것 같아 궁금해서 여쭸더니,

이번에는 너무 작아서 안보인다는 것이다.

아.. 또 실패다.


'도대체 너 남자야 여자야?'


속으로 생각만 하다가

의사선생님이 들으시라고 크게 말했다.




"Are you a boy? or a girl?"




[-다음편에서-]



2022.07.08

브런치작가 정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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