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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글 Jeonggeul Jul 11. 2022

마흔 하나에 임신(3)

여긴 베트남이거든요.

이제는 남편 없이 혼자서도 타국의 산부인과를 씩씩하게 갈 수 있게 되었다.

4주가 지났는데도 이 배가 임신배인지 내 배인지 구분이 안갈정도로 배가 만삭때처럼 엄청나오고 있다.

그 배는 둘째배가 아닌 내 배였다. 나는 살이 엄청나게 찌고 있었다.

쌀국수가 너무 맛있다. 그리고 마카롱이 너무 맛있다.


그리하여 산부인과를 찾았더니, 3키로나 붙은 것이었다.

생각보다 너무 많이 늘어난 몸무게..

첫째를 가졌을 때에도 앞자리는 6을 겨우 넘겼는데 이제는 7을 거뜬히 넘기다니,,,

그냥 임신한게 벼슬인냥 잘 먹는게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병원에만 와야 볼 수 있는 체중계의 숫자에서 인생 최고기록을 보고는 원망과 후회가 폭풍처럼 밀려왔다.

그래도 후회하지 말자.


'노산인데 아이만 건강하기만 하면 되는거쟎아.'


속으로 나를 달랬다.


의사선생님의 진료를 보기전에 입체초음파를 먼저 봤다.

동그랗게 보이는 두위와 얼굴윤곽, 오똑한 코, 볼록나온 배와 짧은 팔다리가 내 배 안에서 바다위의 배처럼 균형을 잡고 얌전히 누워있는 둘째.

아이의 신체부위를 지나치시며 베트남 선생님께서 부위별로 뭐라뭐라 하시는데, 나는 말을 하면 아이가 놀랠까봐 그냥 'yes...' ,'yes...' 라고 웅얼거리듯이 대답했다.


그렇게 20분가량이 지나고 나는 제일 중요한 그 부위에 무엇이 달려있는지 궁금하여,


" Last time, I didn't know my baby's sex. Can I know that? hihihi..."


"Oh, yes. GIRL."


"What? Are you real? oh, my god. Thank you.  나 아들있어요. 딸만 있으면 됐거든요. 진짜요? 세상에."


나는 흥분해서 베트남선생님께 영어와 급한 한국말을 섞어가며 이야기했다. 근데 이 시점에 왠지 선생님께서 내 말을 알아들은 것 같았다.  


"Yes. First is son. Second is girl. You have everything!!!!!!!!"


내가 한국말로 했던 말을 알아듣고 대답을 해주신 초음파선생님.

설마 이 선생님 한국말 하실 줄 아시는거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살짝 들었지만, 어쨌든 뜻이 통해서 너무나 기뻤고, 또 그토록 바라던 딸이어서 더 기뻤다.


"Hello, My princess. Nice to meet you. I love you. 알러뷰~~~"

뱃 속에서 방방 뛰고 있는 나의 둘째 공주님에게 안부인사를 소곤소곤 전했다.




이 기쁜 소식을 제일 먼저 남편에게 전하고 싶었다.

초음파실에서 나오자 마자 남편에게 페이스톡을 걸었다. 병원에서 다른 환자분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보고 있었는데도 아랑곳 하지 않고, 나는 남편이 전화를 받자 마자,

"딸.. 딸..딸이란다! 따아알~~~~~~~~~~"

"뭐?!!!!!!! 진짜가? 캬캬캬캬."

남편이랑 나랑 <오예!!!!! 브라보!!!!!!!> 등등 할 수 있는 촌스러운 콩글리쉬 감탄사는 다 동원한 채 목청높여 기뻐했다.

환자들은 모두 나를 보고 웃었다.

나도 그들을 향해 웃었다.






그리고 몇 분 뒤, 나의 담당 선생님께서 부르셨다.

진료를 보러 들어가니,

"산모, 지난달에 비해 몇키로그램이나 늘었죠?"

"저,, 사아암...킬로요..."

"음~ 이러면 곤란해요. 우리는 한달에 1~2킬로정도 느는 것을 지향합니다. 자 그리고 아이 상태를 보시면요. 아이가 두위나 다른 신체부위는 정상인데, 배 둘레가 상위 12프로에요. "

"그럼 아이가 뚱뚱한건가요?"

"몸무게가 뚱뚱한 편은 아니지만, 아이의 배둘레가 큰 편에 속하기 때문에, 산모가 운동을 해야 해요. 아셨죠?"

"네.,..."


딸이라는 기쁨도 잠시, 아이의 배둘레가 상위 12프로라니,

아이가 날 닮아 먹성이 좋을 것 같은 걱정이 앞섰다.


"산모, 요즘 뭐가 그렇게 맛있나요?"

"저.. 쌀국수가 너무 맛있어요."

"오, 쌀국수도 나트륨함량이 높아요. 그리고 지방이 없는 쌀국수도 있어요. 그 쌀국수를 드시기를 권합니다. 그리고 운동 하셔야 합니다. 산모. 특히 녹말종류는 줄이시고, 칼슘섭취를 위해 우유를 좀 많이 드세요. 다음달에는 임신당뇨수치 검사를 할테니 4주후에 오실 때에는 오전 일찍 오시고, 오전내내 공복으로 계셔야 합니다. 다음 달에 뵙겠습니다."


그 주 주말이 되어 남편이 집으로 오게 되자, 우리는 기쁨의 세레머니도 잠시, 둘째의 배둘레 이야기에 분위기가 침울해졌다. 남편은 내가 평생 살찌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했다는 것을 너무 잘 알았던지라, 나와 똑같이 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딸 걱정을 하고 있었다.


"니 처럼 그렇게 통통하게 태어나가지고 살 찐거 스트레스 받아하면 어떡해. 운동해 빨리."

"아~ 알았어. 근데 일단 애가 튼튼하게 자라야지. 나 스트레스 받고 싶지 않아. 그래도 노력은 할게."

"그리고 다음달에는 임신당뇨 테스트도 한다면서? 이제부터 식이조절 해야되네."


슬슬 살 걱정에 내 식이와 운동을 간섭하는 남편의 잔소리가 짜증나기 시작했다.


"노산이니까, 못먹어서 애가 뭐 하나 덜 갖고 태어나는 것 보다 통통해도 건강한게 낫다!"

라고 큰소리 쳤다.


갑자기 내가 울엄마 뱃속에 있을 때의 이야기가 생각이 났다.

엄마는 내가 예정일 한달이 지나도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 때는 초음파도 없어서 아들인지 딸인지도 모른 채 임신을 하고 있었는데, 나는 예정일이 지나, 추석도 지내고 할아버지 생신까지 지내고 나와서 먹을 복이 엄청 많은 아이라는 것을 예감하고 계셨다고 한다.

내가 태어나려고 엄마는 진통을 겪었는데, 너무 커서 무척 힘이 들었다고 한다.

엄마는 나를 낳다가 기절을 했고, 의사는 겸자로 내 머리를 잡아당겨 나를 엄마뱃속에서 부터 끄집어 냈다고... 태어나니,

머리카락은 이미 숱이 검게 다 자라있고, 손톱, 발톱도 길게 자라 온 몸이 쭈글쭈글 한데 제일 놀랐던 것은 그렇게 튼튼했던 아이가 딸이었고 , 몸무게가 3.8킬로나 나갔다는 것이다.


한달이나 늦게 나와서 애를 먹인 나.

태어나서도 엄마 모유로도 부족해 밤새 우유를 3통이나 더 먹어야만 잠을 잤다는 나.

둘째도 나 닮아 엄마 애를 먹이고, 또 많이 먹어서 살이 찌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그 날 이후로 아침에 일어나 공복에 산책을 나갔다.

그리고 하루에 1000보이상은 무조건 걸어야 겠다 생각하고, 덥지만 땀을 흘리면서 걸어다녔다.


음식도, 라면이나 빵, 과자는 일체 끊고, 오로지 밥만 먹었고,

과자나 아이스크림 같은 간식이 땡길 때면 과일을 먹었다.

과일도 단 맛이 강한 과일 말고 신맛이 강한 자두나 복숭아를 골라 먹었다.


그렇게 4주가 지나 드디어 결전의 날이 왔다.

몸무게는 얼마나 늘었을까,

임신당뇨수치는 정상일까.

이것저것 검사가 많은 날이라 긴장이 되었다.


몸무게는 쟀는데...

다행히 1킬로만 늘었다.  


공복으로 가서 살짝 어지러운 상태에서 갑자기 피를 뽑았다.

"미스 윤 지 영 님."

(내이름은 윤이정인데, 지난달에는 연이정이라 부르더니 이번에는 윤지영이라고 한다.)

"미스 윤 지 졍님."

"미스 연 이 졍님."

왠지 내 이름인 것 같아 고개를 드니 내가 연이정인걸 알고 부른 것 처럼 나를 이미 쳐다보고 있던 간호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리로 오라는 고개짓을 하고 계셨다.


불려나가니, 갑자기

"뉴린 테스트."

라고 하면서 채혈의자에 앉으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뉴린테스트면 오줌테스트인데, 피는 왜뽑지 하는순간,

고무밴드로 내 팔뚝을 꽁꽁 묶고, 투명하게 비치는 피부속의 퍼런 혈관을 찾고 있었다.


아니 오줌테스트면 종이컵들고 화장실로 가면 되는데 뭐하는거냐고 묻고 싶었는데, 너무 당황스러워서 영어로 해야하는 말이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혈관을 뚫은 주사바늘은 내 피를 뽑고 내 소중한 피들은 어떤 시험관 같은 통으로 모아지고 있었다.

주사바늘이 들어간 자리에 밴드를 붙여주며

"뉴린 테스트" 라고 하며 비닐로 된 링겔병과 종이컵을 쥐어주셨다.

내가 놀란표정을 지으니 링겔병에 있는 액체를 종이컵에 부어서 마시라며 손짓과 발짓으로 안내해주셨다.


다행히, 내 앞에서 테스트를 진행했던 프랑스 여인이 내게 영어로 그 상황을 친절히 설명을 해주셨다.


근데 도대체 뉴린테스트는 언제하나..


혹시 이 링겔병에 있는 액체를 먹고 나오는 오줌을 종이컵에 받아와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지만, 프랑스 여인은 하는대로

그녀를 따라 나도 링거액을 종이컵에 부어 야금야금 다 마시게 되었다.


그리고 나니 또 내 이름같은 누군가의 이름을 어렵게 부르는 것이다.

이제는


"미스 젼 지 영"


한국인은 나밖에 없나 둘러보고는 고개를 드니 이쪽으로 쳐다보고 있는 베트남인 간호사가 웃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로 다가갔고,

그녀는 또 나를 채혈 의자에 앉혔다.


"유어 벅스"

"왓?"

"벅스."

"박스? 왓박스?"


라고 했더니, 옆에 앉은 베트남 여인이 정확한 영어발음으로


"your birth."


라고 이야기 해주는 것이었다.

나는 '아.' 하고선

내 생일을 확인했다.

체혈통에 적힌 나의 생일이 맞다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이며

"ok" 라고 수락했다.


그렇게 피를 뽑고,


또 한 시간이 지난 뒤


또 피를 뽑았다.

뉴린테스트라고 하고선

피를 세번이나 뽑았다.

-_-




나도,간호사분들도 서로 다른 국적을 가지고 만국의 공통어인 '영어'로 소통을 하는데 그것조차 힘이 들었다.

각 국의 방식대로 '영어'를 발음하지만,

모국어에 익숙해진 우리는 각자 나름의 '영어'발음에 서로가 당연히 '영어'를 하고 있는데도 알아듣기 어려웠다.


이런 기본적인 소통을 함에 있어서도 한국인 통역사가 도와줄 수 있을 텐데도, 굳이 도와주지 않는 것은 당연히 이 정도는 서로가 영어로 간단히 소통이 될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 아닐까.


그나저나, 이렇게 소통이 힘든데,

나 아이 낳으러 왔다가 다른병동으로 입원되는건 아니겠지?

제왕절개 하고 싶은데, 자연분만한다고 촉진제 놔주는건 아니겠지?

별의 별 걱정이 고개를 든다.





아무튼 쉽지만은 않은 타국에서의 임신생활이다.

그래도 중요한 상황에서 한국어를 했을 때에는 어떻게 알아들었는지 모르게 초음파선생님이 내 뜻을 헤아려 주셨던 적이 있으니, 무탈하게 순산할 수 있겠지. 라고 생각해본다.


우리아이를 한국아닌,

이역만리 먼 타국 베트남에서  

아프지 않고 힘들지 않고 무탈하게 잘 낳아,


예쁘고 건강하게 잘 키워보고 싶다...





[-끝-]






2022.07.11

브런치작가 정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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