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없는 사람은 없다
1. 공황발작을 아시나요.
나는 2017년부터 공황발작과 우울장애 진단을 받고 약을 먹고 있는 중이다.
증상이 나타난 처음의 그 순간을 기억한다.
어느 날, 차를 몰고 포항-대구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데, 포항에서 벗어나 영천지역에 진입했을 때쯤
임고4터널을 지나기 전에 숨이 막혀왔다.
어두컴컴하고 폐쇄된 터널안으로 들어간다는 생각을 미리 한 순간,
온몸이 마비가 된 것 같으면서 속도를 내려 악셀을 밟는데 갑자기 죽을 것만 같은 고통이 찾아왔다.
나는 급한대로 비상깜빡이를 켜고 갓길로 차를 세웠다.
터널을 앞둔 고속도로의 갓길로 이동하는 것도 목숨을 걸고 해야했다.
차를 세웠지만, 여전히 공황발작의 증상은 진정되지 못하고 있었다.
사업실패로 인한 대인기피증과 우울증. 그리고 점차 고개를 들게 된 공황발작.
하루에도 뜻하지 않고 불현듯 나타나는 호흡곤란은 내게 죽을 것 같은 고통을 안겨주었다.
심장은 100미터 달리기를 전력질주 한 것 처럼 급박하게 뛰었고, 숨을 쉬어도 쉬어도 쉰 것 같지가 않았다.
머리속에서는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은데 벗어날 방법이 없다는 생각에 더 불안해지기만 했다.
솔직히 죽을 수 있다면 죽는게 차라리 낫다 싶을정도로 너무도 고통스러운 증상이었다.
베트남으로 떠나오기 직전 한국에서 나의 주치의 선생님을 만나 마지막으로 약을 지었다.
그 이후 나는 임신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국에서 가지고 온 약을 계속 복용하고 있었다.
어느 날, 한국에서 가지고 온 약이 다 되어 베트남 일반 약국에서는 약을 사려고 했다.
베트남 약국은 약을 처방전 없이 살 수 있다고 남편이 그랬다.
남편말대로 한국에서 먹던 약의 성분을 적고 갔다.
그 종이를 보여주자 약사는
'산모는 이 약을 먹어서는 안됩니다. 혹시 의사선생님과 상담을 해보셨는지요?'
한국말을 어눌하지만 잘하는 베트남 약사가 단호하게 말한다.
나는 임신을 한 후에는 이 약을 먹어도 되는지 전문의와 상의하지 않아서 거기에 대한 자신이 없었다.
임신하고 나서도 계속 이 약을 먹어왔는데 그럼 어쩌지? 하는 생각에 갑자기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베트남 약국의 약사가 그렇게 말씀하시는 바람에 혹시라도 태아에게 위험할까봐 약을 안먹었다.
그 뒤로 심각한 일이 벌어졌다 공황발작과 우울장애 약을 먹지 못하니 심리적으로 매우 불안정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하루는 새벽 네 시까지 잠에 들지 못해서 나 때문에 아들도 뜬눈으로 밤을 세웠다. 절정은 그 다음이었다. 갑자기 대책없는 호흡곤란이 찾아온 것이다. 여기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버스를 타던, 비행기를 타던 폐쇄된 장소에서 공황발작이 일어나면 버스에서 뛰어내리고 싶고, 비행기에서도 뛰어내리고 싶어진다.
새벽 4시 아파트에서도 뛰어내릴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뱃 속에 있는 둘째 다솜이생각에 절대로 그러면 안되는데, 하면서도 몸은 한순간도 진정이 되지 않았다. 나는 어쩔줄을 몰랐다. 정말 돌아버릴 것 같았다. 나는 아들에게 간곡히 부탁했다.
'석아, 엄마 손 좀 잡아줘.'
'엄마, 왜 그래? 무서워?'
'응, 엄마 죽기 싫어. 살고 싶어.'
'엄마, 죽으면 안되. 엄마 무서워. 내가 손 꼭 잡아줄게.'
그렇게 아들의 작고 따스한 손을 잡고 있었더니 공황발작 증상이 서서히 가라앉는 듯 했다.
그리고 태아에 해롭지만 필요시 약을 하나 먹었다.
맥박은 점차 느려졌고, 몸은 안정이 되어갔다. 그뒤로 나는 어떻게 됐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정도로 약기운이 온몸에 퍼져있었고, 거실 불을 환하게 켜놓은 채 거실쇼파에 기절하듯 고꾸라져 잠에 들고 말았다.
그 이후, 한국에 있는 원래 나의 병을 치료해주시던 주치의님께 메일로 상담을 했다.
'선생님, 저 정글입니다.저 베트남으로 무사히 잘 들어왔습니다.비행기도 무사히 잘 탔습니다.다 선생님 덕분입니다.그런데 선생님,한가지 염려되는 부분이 있습니다.제가 현재 임신을 하게 되었습니다.그런데, 제가 임신을 하고 나서도 누구와 상의없이 제가 먹어왔던 약을 계속 먹었습니다.그런데 현지약국에서 임산부는 먹으면 안된다는 소견을 줘서 너무 놀랐습니다.제가 어떻게 해야 좋을까요.약을 안먹으면 공황발작 증상때문에 너무 괴롭습니다.도와주세요.'
그랬더니 하루만에 주치의선생님께서 답장이 든 메일을 보내주셨다.
'정글님, 축하드립니다.안그래도 베트남에는 잘 도착하셨는지 궁금했던 참이었습니다.덩달아 임신도 축하드립니다.지금 정글님이 먹고 있는 약은 미국의학협회에서도 승인이 난 약물이므로 크게 불안해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불안하시다면 비상시약과 수면제는 가급적 드시지 마시고, 아침, 점심, 저녁에 먹는 약도 서서히 줄여나가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그리고 현지 산부인과에 가셔서 현재 정글님이 복용하고 있는 약물을 공유하시고, 수시로 태아의 상태를 점검해보시며 의논을 하시면 좋겠습니다.건강하게 순산하시고, 아무쪼록 크게 불안하게 생각은 하지 않으시는게, 정글님과 태아에게 좋을 것입니다.감사합니다.'
현지 산부인과에 들러 아이 초음파를 보고 성장발달을 확인하다 약을 먹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드렸더니, 약을 서서히 줄여나갈것을 권고받았다.
그래서 나는 언제까지 얼마나의 약을 줄여야 하나에 대한 수치화된 계획없이 내 몸 상태에 따라 자연스럽게 줄여나가려고 노력하는 중에 있었다.
지금은 아침,점심약은 먹지 않고, 저녁약 한가지만 먹고 있다.
그리고 수면제는 일체 먹지 않으며, 비상시약도 거의 먹지 않고 있다.
그런데 오늘 비상시 약을 먹게 된 상황이 생겨버렸다.
공황장애에 대한 네이*지식인 을 검색하다 우연히 의사의 공황장애 대한 정의를 적은 글을 읽게 되었다.
알면서도 나는 그 글을 왜 읽었는지 모르겠다.
숨이 막히거나 답답한 느낌, 호흡곤란, 어지럽거나 쓰러질것 같은 느낌, 현실감 상실, 통제력을 잃어버리거나 미쳐버릴 것 같다는 두려움, 곧 죽을 것 같은 느낌 등이 10분 이내에 최고조에 달할때 .
를 읽는 순간,
내재되어 숨어버렸던 나의 공황에 대한 흔적이 현실에서 실제 증상으로 나타나버린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모든 공간은 다 막혀있다는 폐쇄공포로 여기서 뛰쳐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심장은 터질듯이 뛰어서 들숨과 날숨이 너무 빨랐다. 숨을 쉬어도 쉬어도 쉰 것 같지 않았다.
아이가 공부하고 있는 공부방으로 뛰어내려갈까. 문을 열고 그냥 걸어나가볼까.
이런 것들이 순식간에 머리속에서 아주 재빠르게 지나가면서 내 행동에 통제가 안되고 미쳐버릴 거 같았다.
소파에 편히 누워도 심장은 계속 빨리 뛰었다.
여기서 응급실을 부르는 것도 안된다. 말이 안통하니까 응급이라서 도와달라는 말도 베트남어로 못한다.
아무것도 못한다는 생각에 마냥 여기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순간 내가 바라본 밖은 낭떠러지였다.
뛰어내릴 용기는 절대로 없었다.
의식은 멀쩡했기 때문이다.
집안을 걸어다녔다.
손과 발에서는 계속 마른땀이 나왔다.
숨을 천천히 쉬고 싶어도 그렇게 되지 않았다.
날숨을 길게 내뱉으려고 소리를 내어보았지만, 소리조차 떨렸다.
진정시키기 위해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도 남편과 나는 동시에 서로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통화를 하면서도 쉽게 가라앉지가 않아 비상시 약을 먹고 말았다.
태아에게 안좋은 것 보다 일단 나부터 먼저 살아야 했다.
그 다음, 나와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언니에게서 들은이야기로 맨소금을 손바닥에 뿌려 찍어먹어보라고 했다.
그랬더니 조금 나아지는 듯 했다.
남편은 체했는게 아니냐고 하길래, 수지침으로 손을 땄다.
할 수 있는 걸 다 했더니 나아졌다.
무엇이 진짜 내 공황증상을 가라앉게 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지금은 많이 좋아져서 이렇게 글을 쓴다.
7월 초부터 중순까지 남편이 혼자 한국에 들어가게 되면 그 때가 너무 걱정이 된다.
미리 걱정하는 나의 이런 습관이 공황을 불러오게 만드는 걸까?
공황은 예기치 않게 찾아온다.
그런데 공황은 감기처럼 약을 먹고 바로 뚝 끊기는 병은 아니다.
그리고 이렇게 가끔, 아주 가끔 올라오는 공황증상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내야 한다.
내 불안한 생각을 바꿔야 한다. 의연하게 그저 지나가리라 생각해야 한다. 이 때까지 줄곧 그랬다.
그리고 호흡이 곤란하면 손으로 입을 막아 산소보다는 이산화탄소를 도로 들이마셔야 한다.
심장이 쿵쾅 날 뛰어도 가라앉을 언제를 기다려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순간을 모면해 내가 편안하게 집중할 수 있는 도구를 찾아야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다.
내게도 오늘 중요한 도구가 되어주는 것이 바로 브런치 글쓰기였다.
글쓰기를 하면서 흘러나오는 자연스러운 생각에 몰입을 하니 어느새 내 몸에 방망이질을 하던 공황증상들이 사라졌다. 마술같으면서도 한편으론 내가 한 어떤 행동도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생겨도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다가 공황이 더이상 재미없어서 내게 다가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공황은 순간적인 스트레스가 극도로 달할 때 오는 거 같다.
사람에게는 어떤 돌발적인 상황이 생길 지 모른다. 그런 상황이 내게 공황을 야기할지, 아니면 그냥 깜짝 놀라는 것으로 끝날지도 그 사람의 신체정신 건강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제발 진정했으면 좋겠다. 모든일이 아무것도 아니라 괜찮았으면 좋겠다.
세상에 나처럼 이렇게 공황으로 힘들어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 자기만의 노하우로 공황을 극복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공황은 불치병이 아니다. 반드시 고칠 수 있는 병이다.
그것을 찾아내는 것은 의사도 아니고, 약도 아니고
바로 본인의 의지와 실행일 것이다.
[-다음편에서-]
2022.07.19
브런치작가 정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