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떨어져야만 살 수 있는 것 일까.

4.전염성이 강한 감기, 눈병 그리고...

by 햇살나무

2017년 나와 남편은 이혼을 했었다.


모든 원인은 불량스러운 나에게 있었다.

일을 시작하며 빚이 생기자 세상을 무성의하게 살았다. 되는대로 막살았다.

남편을 혼자 놔두고, 아이는 친정에 맡기며, 나는 친정에 가서 살다시피 했다.

남편은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았고, 극심한 우울증을 겪어 자살시도까지 했다고 한다.

회사에서는 늘 실수를 해서 경고를 몇 번이나 받았다.


나 또한 맞지 않는 옷을 입고서 빚을 지면서도 꾸역꾸역 일을 하러 나갔다.

계속 빚을 지는 일뿐이었고, 모두들 손을 털라고 했는데, 그땐 제정신이 아니었다.

도박하는 사람처럼 눈에 뵈는 게 없었다.

오로지 내가 투자한 원금이라도 찾겠다는 심정으로 회사에 나갔다.


그러나 사태는 점점 악화되었다.


결국 우울증이 찾아왔고, 술에 의지 하지 않으면 매일 밤 , 잠을 자지 못했다.

술에 취해 약국에 가서 수면제를 찾았다가 약사님께서 나를 타이르시며 그냥 돌려보내셨다.

그렇게 위험천만한 고비도 넘겼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나 때문에 남편도 정신을 잃었었다.


우리 부부는 서로 우울했고, 우울한 사람들끼리 서로 나아질 수 없었다.

그래도 나보다 남편은 살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고,

어떻게든 살려고 발버둥을 쳤다.

그러기 위해 나를 끊어내야만 했다.

그래서 나는 남편에게 이혼을 당했다.

나 또한 바라던 바였다.

그땐 살고자 하는 의지가 없었기 때문에 이혼소장이 날아갈 거라는 남편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동의를 했고. 내 빚이 남편에게 전가되지 않기를 바랐다.


죽어도 혼자 죽고 싶었다.

그러다 건강을 잃고

암이 발견되어 수술실에 들어가는 순간, 남편은 내게 손을 내밀었다.

그렇게 남편은 나를 살려놓고 베트남으로 떠났다.








그러던 어느 날 내게 공황발작이 찾아왔다.

아들이 시댁에서 자랄 때, 한 달에 두 번 교섭권이 있어서 아들을 만나고 난 뒤 시댁으로 바래다주고 오는 길에 고속도로에서 공황발작을 겪었다.

심장이 아팠고, 숨을 쉴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아들 따라 시댁으로 들어가 살면서 약을 먹었고,

결국 나는 남편이 있는 베트남으로 아이를 데리고 들어왔다.


베트남으로 들어오니 남편도 공황을 앓고 있었다.

우리 서로 이야기를 나눠보니 둘 다 비슷한 시기에 공황발작을 겪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 둘 다 공황발작 때문에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나는 임신을 해서 아이에게 약 성분이 갈까 봐 억지로라도 약을 끊으려고 하고 있다.

약을 줄이니 공황발작 증세보다는 많이 예민해지고 있다.










오늘 남편은 예민한 나 때문에 또 발작을 겪었다.


정말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다.

갑자기 집에 전기가 나가면서 누가 집으로 찾아왔다.

주황색 작업복을 입은 아파트 관리인 같은 사람이 내게 분홍색 고지서를 내밀며,

손짓 발짓으로 뭔가를 내렸다고 하더니,

"no money!"

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알았다. 돈을 안내서 전기를 차단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매달 22일에 집세를 내면, 부동산 아줌마가 아파트 관리비며 전기세까지 다 처리를 해줬다.

그런데 이번 달만큼은 미리 당겨서 집세를 냈는데도,

부동산에서 전기세를 내지 않았던 것이다.

부동산 아줌마는 연락이 두절되었다.

나는 그 흔한 '사기'를 당한 거 아닌가 의심이 되었다.

그러나 나는 공황이 오기 직전의 놀란 가슴을 부여잡고

남편과 통화를 하면서 이성을 잃고 소리를 질러댔다.

남편은 그 즉시 회사 업무를 중단하고 집으로 차를 타고 달려왔다.

달려오면서 발작이 일어날 것 같다고 했다.

그 말에 내 심장도 같이 조여 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첫 아이가 어릴 때에도 나는 우울증을 겪었고, 많이 예민해진 상태에서

남편에게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걸었고, 남편은 회사 업무를 보다

나를 위해 차를 타고 집으로 오던 일이 종종 있었다.






내 이런 모습 때문에 남편의 수명이 짧아지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된다.

꼭 고슴도치 두 마리가 서로 붙어있는 것처럼

나는 떨어져 살 때에는 그리워해 놓고 막상 붙어 사니 또 상처를 내고 있다.


매일 감사일기를 쓰며

남편의 존재 자체에 감사하다는 말을 빠짐없이 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오늘 또 고마운 남편에게 화를 내고 말았다.

은혜도 모르는 나의 이 성질머리를 못 고쳐서 남편을 힘들게 했다는 것에 죄책감이 생긴다.


남편은 타국에서 이런 난감한 일을 겪는 일이 허다하다고 한다.

만약 자신이 없다면 나보고 한국으로 들어가 살기를 권유했다. 나 또한 생각이 깊어졌다.

이렇게 예민한데 내가 과연 베트남에서 둘째 아이까지 낳고 혼자 키우며 잘 살 수 있을까.


더 이상 남편을 힘들게 하고 싶지 않다.

나로부터 우울증과 공황발작까지 옮은 남편이 너무 불쌍하다.

상처를 주는 가시를 이제 그만 떼어내고 싶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공황발작이 사라지려면

예민한 내 성격부터 먼저 고쳐야 하는 게 숙제가 되어버렸다.




안 그러면 우린 떨어져야만 살 수 있을 것 같다.






[-다음편에서-]



2022.07.23

브런치작가 정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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