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것.
5.나는 괜찮지 않습니다.
정신과를 찾는 게 내게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 때는 모든 걸 잃고 나서 였으니까.
그러나 조금만 더 일찍 알아내었더라면,
그래서 조금 더 일찍 갔더라면 내가 이렇게 까지 깊은 수렁에 빠져 헤어나오기 힘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업을 하며 빚을 짐에도 불구하고 나는 회사를 꾸준히 나갔다.
물론 돈 때문이었지만, 자존심과 체면 때문이었다.
실적을 많이 올리면 회사에서 인정해주는 그 직급 때문에,
그리고 내 밑의 직급을 단 사람들때문에 나는 나약한 척을 하기 싫었다.
괜찮지 않은 상황에서도 괜찮은 척 억지로 버티는 바람에..
아프면 아프다고, 힘들면 힘들다고,희망이 안보이면 도망치라고도 말해줬는데도..
나는 그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괜찮다'고 말했다.
무슨 비결이라도 있는 냥,
끝까지 버티면 해결이라도 날거마냥 기세등등하게 굴었다.
다른 사람들의 눈과 입을 의식하느라, 나는 내 속이 곪아가는 줄도 몰랐다.
내 의지가 아닌 결국 환경조차 내가 발 디딜곳이 없어질 때 까지 나는 버텼다.
돈 내놓으라고 하루에도 수십통 울리는 전화를 받았고,
회사까지 찾아오는 사람들 때문에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싫어하는 바람에
더이상 버틸 힘이 없어서 결국 그만 두었다.
불이 나는 집에서 소중한 내 물건 하나 건져 나가겠다고 찾다가 도망갈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에 까지 불이 붙은 줄도 모르게 된 것과 같은 상황이 되었다.
출근을 하지 않게 되니 시간이 생겨 병원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땐 이미 늦었다.
나는 실패했다.
그러나 내가 실패한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 자존심 때문에
내 마음에 검은그림자마저 외면했다.
정신과를 찾아가서도 나는 하마터면 거짓말을 할 뻔 했다.
자존심이 쌓아올린 내 내면이 부르짓는 습관적인 거짓말을 의사에게도 할 뻔했다.
하지만 고통때문에 견딜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있는 그대로 이야기를 해야만 했다.
결국 긴 상담 끝에 나는 우울장애와 공황발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릴 때 부터 우울장애가 있었고, 공황발작은 나이가 들어서 드러난 것이라고 말씀해주셨다.
어릴 때 받았던 상처가 덮여지긴 했지만 완전히 나은 건 아니라고 했다.
다 커서도 어릴 때 받았던 충격과 비슷한 충격을 받아서 숨어있던 상처가 표면적으로 드러났다고 말씀하셨다.
약을 꼬박꼬박 챙겨먹으면 나는 나아질 줄 알았지만,
계속 이렇게 되풀이가 되고 있는 요즘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결국 뭔가 착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우울장애와 공황발작으로부터 나으려고 노력하고 있는 지금, 나는 다 나은 환자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버스만 안타면 된다. 비행기만 안타면 된다.
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어디에 난 상처인지, 어떤 병인지,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 아직 다 찾아내지도 못했다.
피부에 난 상처라면 그 부위에 연고를 바르면 되지만,
내 속에 난 상처는 어느 부위에 어떻게 상처가 났는지, 상처의 크기는 얼마나 큰지, 얼마나 깊은지
그래서 어떤 약을 써야 하고 얼마의 시간이 필요한지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막연하게 약만 먹었다고 다 나았다고 생각한 것은 나만의 큰 착각이었다.
나는 나을거라는 희망만을 가진 채 살아가는 다 낫지 않은 사람이었다.
나는 괜찮은 사람이 아니라 괜찮아지고 싶은 사람이었다.
나는 아프지만, 그래도 나으려고 노력하는 사람,, 더이상 나빠지지 만은 않도록 노력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있는 그대로, 내가 아픈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그 다음 ,
내가 좋아질 수 있는 방법도 차근히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요즘이다.
[-다음편에서-]
2022.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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