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적인 비법. ○○○○○
16. 나를 내려놓게 하는 힘
지난 4월에는 아들과 내가 동시에 코로나에 걸렸더랬다.
나는 한국에서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을 3차까지 맞고 온 상태였다. 면역력이 정상인보다 많이 떨어진 고위험군으로 분류된 때문이었다. 갑상선 암수술을 한 게 나의 병력 전부였는데 우리나라 의료체계가 얼마나 촘촘하게 관리가 잘 되는지 알고 나니 고마울 정도다.
그러다 지난 4월.
결국 아들이 먼저 걸리고 난 이틀 뒤에 증상이 나타났다.
아들은 고열과 구토 증세가 심했다. 코로나로 의심이 되어 자가진단키트로 검사를 해봤지만, 음성이 나왔고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다 보니 아들의 증세는 코로나 중에서도 당시에 유행했던 스텔스 오미크론 같았다.
이 변이는 자가진단키트로는 음성이 나오기 때문에 유전자 정보를 읽을 수 있는 방법으로 검사해야 확인할 수 있다는 글을 읽었다.
정식으로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지는 못했지만 밤새 해열제로 열을 떨어뜨리고 다음날 아침 한국인이 의사로 계시는 병원으로 아들을 데리고 달려가서 코로나로 의심이 된다는 소견서와 약을 처방해왔다.
약은 그 개수가 상상을 초월했다.
어린 아들에게 그 많은 개수의 약을 먹이려니 미안하기까지 했다. 그만큼의 약을 먹여야 나을 수 있다는 건 , 인간의 욕심으로 오염된 지구환경 속에서 바이러스가 숙주인 인간과 함께 지독하게 진화되어 살아남았음을 인정해야 했다.
하지만 아직 의학적으로 입증이 되지 않아 약을 먹을 수 없는 임산부처지의 나는 그 병을 생으로 견뎌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타이레놀과 같은 성분은 복용이 가능했기에 해열과 진통의 효과만으로도 살만했다.
그럼에도 나의 그 예민한 성격은 코로나에 걸렸다는 사실만으로도 화가 나고 짜증이 치밀었다.
그렇게 온갖 궂은 성미를 드러내면서 서서히 끊기 시작한 우울증 약을 다시 먹어야 했고, 코로나바이러스에 열심히 대항하며 노력한 내 몸보다는 오히려 내 마음이 더 뻔뻔하게 그 상황을 야단스럽게 대처하고 있었다.
해열진통제보다는 정신과 약으로 내 고통이 서서히 물러났다.
그 야단스럽던 짜증은 남편에게 코로나뿐 아니라 공황발작까지 전염시켰다. 남편의 발작증세에 나는 너무 놀라 오히려 정신이 번쩍 들었다. 평소 밝고 건강하던 남편을 아프게 한 죄책감에 힘들어했다. 그리고 그 사태의 심각성을 전해서 공유하게 된 친한 언니에게서 따끔한 충고를 받았다.
나는 이제 그만 우울해지기로 하고, 긍정이라는 사고방식을 머리에 탑재했다. 살기로 한 거 이왕이면 잘 살고 싶었으니까...
그렇게 하루하루 매달린 기도와 긍정 속에서도, 여러 번의 고비를 맞아 공황발작이 일어날 뻔한 적이 몇 번 있었는데 그때 초능력처럼 내 마음속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
"감사합니다. "를 듣게 되었다.
발작이 일어나게 되면 머릿속에서 갖가지 소리가 들려온다. 내 뇌가 만든 착각이긴 하지만 재빨리 흘러지나 가는 소리들 중에서 나는 우연히 "감사합니다"를 생각하게 되었고,
내 의지로 나는 재빨리 그 말을 붙잡았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살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의식적으로 되뇌니, 내 속에 불같이 끓어오르던 어떤 기운들이 아랫배 단전을 거쳐 땅 밑으로 꺼지는듯한 느낌을 받았다.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감사합니다."를 반복할수록 마음이 자리 잡았을법한 심장과 명치 사이의 어느 한 빈 공간에 찬물을 부은 것 같은 시원한 감이 내려오는 것처럼 느껴졌고, 짐작이지만 감동적일 때 나오는 세로토닌 호르몬 같은 어떤 호르몬의 작용으로 내 마음을 감동시켜 편안하게 해주는 것 같았다.
그 뒤로 "감사합니다"라는 혼잣말을 매일 습관처럼 하게 되었다. 꼭 악귀를 물리치려는 술사의 주문처럼.
이제는 이 "감사합니다"가 어렸을 때 옆집 아주머니께 용돈을 받을 때나 삼촌들로부터 세뱃돈을 받을 때에만 쓰던 그 "감사합니다" 와는 차원이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지난주 금요일.
아들은 고열에 시달렸다. 그리고 나 또한 침을 삼킬 때마다 목이 따끔했고, 들숨에 코 끝도 까칠하며 뜨거웠다. 밤새 아들의 열은 40도에서 해열제를 먹여도 38.3도까지밖에 떨어지지 않아 다음 날 아침 자가진단키트로 코로나바이러스에 걸린 여부를 검사했는데 결국 선명한 두 줄이 나왔다.
이번엔 스텔스 오미크론이 아닌 정식 코로나였다.
나는 다급해졌다. 이러다 공황이 또 올까 봐 주문을 외웠다.
"이만하길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
그리고 차분히 병원에 전화를 걸어 상담을 하고 약을 받았다.
아들은 자신의 코로나 검사 키트를 사진으로 찍어 가족 단톡방에 "저 양성 나왔어요!"를 자신 있게 올렸고, 시어머니께서는 "이거 좋은 거냐?"라는 대답으로 가족들은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남편도, 아버님도 모두 놀라 어쩌면 좋으냐고 물으셨고,
병원은 가봤는지, 격리해야 되는 건 아닌지, 임산부는 약을 못 먹는데 어떡하는지 등등의 이야기로 톡방에 연신 글이 올라왔다. 나는 차분하게 글을 남겼다.
아들 약은 이미 처방을 받았고, 나는 산부인과에 이야기해놓았어요.
그렇게 3일을 자가격리를 하면서 열이 오르고 아플 때가 있었지만, 아들은 병원에서 받은 독한 약으로 이미 정상체온을 회복했고, 나 또한 해열제로 버티면서 증상이 호전되고 있는 중이다.
남편은 많이 차분해지고 달라진 내게 "고맙다"라고 말해줬다.
유일하게 무탈한 남편에게 지난번처럼 똑같이 짜증을 냈다면 아마 남편은 마지못해 병균이 드글거리는 우리 집으로 와서 간호하려다 우리와 똑같은 신세가 됐을 것이다. 게다가 우리가 베트남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로 또다시 고민을 했을 것이다.
남편은 하루가 멀다 하고 몇 시간마다 전화가 와서는 "괜찮냐"라고 묻고 또 쉬어터진 내 목소리를 확인하며 걱정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지난번보다는 낫다. ", "괜찮다.", "당신이라도 안 걸려서 천만다행이다.", "건강해줘서 고맙다"는 말로 대답했다.
"감사합니다"라는 주문은 이런 환난도 솔로몬의 명언처럼
'이 또한 지나가리라'로 만들어주었다.
이번주 수요일, 남편이 집으로 오기로 했다.
나는 맛있는 반찬을 많이 해놓고 기다릴 것이다.
매일 최선을 다해 푹 쉬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면서 다 나아야겠다.
나를 내려놓는 긍정의 비법은
돈도, 치료도, 약도 아닌
"감사합니다"라는 주문뿐이다.
2022.08.15
브런치 작가 정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