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고쳐먹고, 잘 살려고 마음 먹기 시작하면서 내 행동에 두드러진 변화가 있다면 바로 엉덩이 떼기다.
자나깨나 늘 방에 틀어박혀서 누워있기만 했던 나.
책을 읽고 나서도 한참을 앉아 있기만 했던 나.
누워있거나 앉아 있으면 움직이는 건 뇌 뿐이 없는 것 같았다.
몸은 가만히 있는데, 뇌는 얼마나 많은 생각들을 만들어내는지 정말 부지런해서 혀를 내두를 정도다.
이만큼 머리를 쓰니까 공부를 하는 학생들에게 탄수화물 같은 에너지원공급이 중요하다는 사실이 절로 떠오른다. 그러나 공부를 할 때 쓰는 뇌와 생각을 만들어 낼 때 쓰는 뇌는 각각 다른 감정을 불러내는 것 같다.
공부를 할 때, 또는 독서를 할 때에는 뇌가 활동을 하더라도 깨달음을 얻게 되어서 마음이 벅차오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것 같지만, 내가 만들어내는 생각들은 이상하리만큼 부정적이어서 불안하게 만든다.
그렇게 생각이라는 뫼비우스의 띠에 갇히게 되는 순간, 내 기분은 싱크대의 물이 빠지는 것처럼 급격한 속도로 회오리를 만들어 나를 아래로 잡아끄는 듯한 기분이 들게 만든다.
그럴 때, 그 순간으로 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은 다른 생각을 하는 것보다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움직이는 것이 효과가 최고였다.
그 자리에 가만 앉아서 상체만 움직이는 것 보다 서서 이리저리 걸어다니는게 더 효과가 좋다.
두 발로 땅을 번갈아 디디며 걸어가다 보면 꾸부정한 어깨와 허리가 곧고 바르게 펴지며, 허벅지에 힘이 들어간다. 그럼, 내 머리속의 생각들은 안개가 걷히는 것 처럼 사라져간다. 내 신경은 움직이는 몸에 집중을 하게 되는데,
바닥을 디디는 발의 감각에 집중되고, 움직이는 온몸의 근육들 하나하나에 신경이 집중되며 내 머리를 가득채웠던 생각들은 분산되듯 사라진다. 심장도 내가 움직이는 만큼만 뛰어준다.
생각으로 인해 불안한 감정을 가지게 되면 심장마저 나대기 때문이다. 꼭 단거리달리기 하기전의 떨림때문에 두근대는 박동처럼 말이다.
세상이 편해져서 걷지 않는 사람들도 많지만, 또 일부러 걸으려고 시간을 내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그만큼 걷기가 몸에 좋기 때문인 이유일거다. 나는 욕심이 많아서 걷기는 운동축에 속하지도 않는다고 생각했고, 기왕 운동을 하고 싶다면 격한 달리기나, 수영, 복싱같은 것만 하려고 달려들었기에 그동안 걷기를 소홀히하고는 아예 하지 않았다.
시댁에 살 때 시어머니께서 걷기를 참 좋아하셨다. 어머님 사시는 동네는 배산임수의 구조였다. 뒤에는 언덕만하게 낮은 산이 있었고, 앞에는 강이 흐르고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운동화끈을 매고 산을 오르고, 강변을 걸을 수 있었다.
어머님은 늘 아침식사를 하시고 나서 여름에는 새벽에, 겨울에는 낮에 운동화를 신고 나가셨다. 그리고 나가실 때 마다
"나갔다 와야 내 할일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매일같이 말씀하셨다.
관절도 안좋으시면서 부지런히 나가시는 어머님을 보고 운동이 아니라 건강에 대한 집착이 아닐까 라는 지나친 생각을 나는 한 적이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습관처럼 나가시는 어머님을 따라 나도 뒷산을 올랐다.
할일을 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
처음 오를 때에는 경사가 가팔라서 숨이 차올랐다. 어머님은 다람쥐처럼 평지를 걷듯 경사를 가볍고 경쾌하게 오르셨다. 내가 얼마나 운동을 안했는지 어머님의 뒷모습을 보며 뼈저리게 반성했다. 그러다 어머님 친구분을 만났는데, 두 분이서 대화를 나누는 것을 듣고 있으니 그 분은 한참을 병상에 누워계셨던 분이셨다.
그리고 마지막에 하시던 말씀이 내 뼈를 때렸다.
"이렇게 걸을 수 있는게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요."
...
난 그 말을 듣고 마음이 몹시 불편했다.
걸을 수 있는걸 당연히 생각해놓고도 걷지 않았던 나 였으니까.
스스로 나 자신이 찔린 것이다.
요즘은 생각이 나면 그때 그때 일어나 움직인다.
반찬을 뭐 만들지 라고 생각하면 오래 생각하지 않고 집에 있는 재료가 무엇인지 확인하러 냉장고 앞으로 걸어간다.
바닥에 먼지를 봐도 청소를 언제했더라.. 라고 생각하지 않고 바로 일어나서 청소기를 돌린다.
햇볕이 쨍한날에는 수건을 삶고, 이불빨래를 돌린다.
그리고 비가 오지 않는 맑은 날 오후 12시부터 2시까지는 늘 수영장 앞에 있는 썬베드에 앉아 책을 읽는다.
해가 지려 하는 오후 6시에도 창밖의 어둠이 내려앉을 때 까지 넋놓고 구경만 하지 않고, 엉덩이를 떼고 일어나 신발을 신는다. 그리고 해가 사라져가는 세상을 온몸으로 맞이한다.
움직이지 않았던 지난 시절엔
비가 오는 날이나 해가 지는 시각에 눈물을 훔쳤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감상에 젖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립고 서글픈 기분만 자꾸 놀러오기 때문이다.
비가 오면, '나무와 꽃들이 한 뼘 더 자라겠구나' 기쁘게 생각하며, 그러려니 보게 된다.
해가 지면 한 곳 한 곳 환해지는 전깃불이 들어오는 공간의 멋스러운 풍경을 감상하며 오늘 하루를 무탈하고 평온하게 보냈음에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