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

2023.10.26 am05:01 호치민에서 부치는 편지

by 햇살나무

쓸모없는 것이란 있을까_



태어나보니
내 등허리
나의 몸만 한
봇짐이 있었네

그 봇짐은
자라고
자라
나의 몸보다 커지고

커진 봇짐은
결국
나의 몸을
집어삼켰네

봇짐은
집이 되고
방패막이되어
단단히 감싸주더니

날아오는 혜성을 맞고
지진이 일어나
산산이 부서져 버렸네

봇짐은
파도에 실려
내게 잘 가라
힘 없이 인사하고

안식을 맞이한 조각
찬란하고 영롱한 빛 뿜으며
오고 가는 파도에 그 몸 맡기더니

어느 거인
성큼성큼 걸어와
봇짐들 한 움큼 집어가네

봇짐 없는 내 몸
헐벗은 듯 부끄럽다가도

가벼워진 내 몸
이제야 진정 자유를 얻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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