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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감사일기

감사하다. 33

by 햇살나무

어제는 온 가족이 교회에서 하는 새 가족환영회에 참석했다.

나는 새 가족이 아닌데 남편을 전도해서 동석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둘째가 어리니 둘째도 참석. 나머지 첫째도 남은 가족이 나 홀로 혼자되니 자동참석. 온 가족이 교회에서 대절한 45인승 버스에 vip손님이 된 듯 몸을 실었다. 함께 다니게 된 둘째의 한 동네 언니네의 가족과도 함께.


두 번째이기도 하고 또 교회행사는 다 참석해 본 거 같지만 가족의 밤 이후로 좋아하는 행사가 어제 열린 새 가족 환영회다. 들어가는 길마다 환영의 장식들이 벽과 길에 즐비하다. 좀 까칠하신 듯하시지만 웃게 만드는 진행자 집사님. 쉬운 퀴즈라고 너무 쉽게 맞추거나 어려운 퀴즈라고 아무도 손을 안 들면 깍쟁이처럼 곧 집에 갈 거라 말씀하시며 삐지신다.

그런데 선물은 제법 푸짐하다. 화장품, 의류. 스타벅스상품권, 쇼핑몰상품권. 가지각색의 종류가 그 내용을 알 수 없도록 안 어울리지만 정성스러운 포장으로 진열대를 채운 선물들을 볼모로 함부로 자기를 대하지 못하게 하신다.


작년에 내가 새 신자로서 참가했을 때 선물을 싹쓸이해 가며 받은 그 얇지만 매서운 눈초리가 생각났다.


점잖은 양반집 자손인 남편은 퀴즈정답을 알아도 그 선물 모두를 양반처럼 모두에게 양보하느라 잠자코 앉아있었다.


' 이보시오. 당신도 새 신자요. 빨리 손을 좀 들고 맞춰보라고! '

있는 선물들이 이쪽 테이블로 저쪽 테이블로 막 날라지는 걸 보면서 팔꿈치로 옆구리를 찌르며 입은 웃지만 눈은 화난 내 얼굴로 독려했다. 그러나 미동도 하지 않으며 되려 나의 채근질을 막는다.

'싫다!'라고 고함을 치며.

에라 그럼 내가 맞출래.


손을 번쩍 드니까


'어, 저기 저기 헌신자님께 마스크 씌워주세요. 저 기억해요. 작년에 선물 다 싹 쓸어가신 거. 옆에 앉으신 남자분은 남편분 맞으시죠? 남편분 정말 마음이 좋으시네요. 참여도 안 하시고 입으로 정답은 얘기하시네요. 알면서 다 양보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너무 하시네요. 저 약간 기분 나빠질라 그래요. '


행사장안이 한바탕 박장대소로 난리다.


나는 귀까지 빨개졌다.


아우.. 복장이야.


저지레 하고 떠드는 둘째를 안고 행사장 밖으로 나갔다.


둘째는 장식된 풍선들을 하나씩 하나씩 죄다 야금야금 뜯으며 쥐어지지도 않는 어마어마한 양의 풍선들을 다 가져가려고 한다.

자기 몸집 보다도 훨씬 큰데도 욕심을 내는 귀여운 딸. 에라 그래 이거라도 챙기자. 그러면서 개, 토끼, 꽃모양 풍선들을 한 아름 들고 다시 들어갔더니 내가 없는 사이 아들과 남편이 각각 하나씩 퀴즈를 맞혀서 테이블 위에 받은 선물을 얹어놓고 웃고 있었다.


내가 없으니까 더 잘하네...


모든 시간이 끝나고 식사를 했다.


뷔페음식은 나를 양육해 주신 집사님 솜씨였다.

모든 메뉴가 다 맛있어서 남편이 후룩후룩 먹고는 빈접시에다 대고 흐뭇해한다.


남편이 혼자인 게 부끄러울까 봐 동행해 주신 나보다 두 살 많은 집사님과 남편분도 오셨더랬다.


'에이. 오늘 선물 많이 못 타서 서운하겠다. '


그랬더니 남편이 하는 말.

어이가 없어서였는지 픽 하고 웃음이 새어 나왔다.


'제가 여기 온 것 자체로도 잘한 거지요. 허허'


그래. 그러네.

당신의 하늘 높은지 모르게 올라가 있는 자존감이 참 멋지다.

축하해.!

근데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지 않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도

밤에 책을 읽을 때에도

잠에 들려고 베개에 머리를 뉘었을 때에도 떠오른다.


'제가 여기 온 것만으로 잘한 거죠.'


맞네. 그래

당신이 잘했네

당신이 나를 따라나서줘서.




그리고

생각해보니

진실로 고맙네.


당신이 내가 가는 길을 함께 걸어가 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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