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기 싫어했다.
그리고 나는 질투가 많았다.
언제나 이겨야만 속이 시원했고 언제나 가져야만 안심이 되었다.
아들이 내 말을 듣지 않으면 속에서 분이 터질 것 같았다.
그런데 아들은
"엄마~ 나는 이제 열다섯이고 엄마는 마흔이 넘었잖아. 엄마는 오래 살아서 단단해졌고, 나는 이제 만들어지는 중이야. 엄마, 인내심을 길러줘. 나를 위해. "
이 말을 듣고 나는 할 말이 없이 눈물만 났다.
나는 자리욕심과 사람욕심이 많았다.
그래서 언제나 가는 곳마다
"잘한다."
"잘한다."
"얘는 못하는 게 없니?"
라는 이야기가 따라왔고, 빈틈이 없는, 믿음직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래서 남들이 바라는 기대치에 미치기 위해 내가 아닌 내가 되기 위해 나를 갉아먹었고 시간과 노력을 갈아 넣었고 나를 그 틀에 욱여넣었다.
그러다 보니 나 자신의 형태는 괴물이 되어있었고,
내 마음의 형태는 정형화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점점 산산이 부서져 가루가 되어갔고,
나라는 사람을 나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나 아들은
"다 잘하면 많은 사람들이 왜 존재하겠어?
서로서로 도와가라고 잘하고 못하는 게 저마다 다른 거지 않겠어?
엄마, 지옥은 눈앞에 진수성찬이 있어도 숟가락이 너무 길어서 자기 입에 넣지 못해 괴로워하는데, 천국은 지옥처럼 눈앞에 진수성찬이 있지만 그 긴 숟가락으로 마주 보는 사람에게 서로서로 떠먹여 줘서 모두가 행복하대.
나는 못하는 게 너무 많아서 친구들한테 지적도 많이 받았지만 그래서 나 혼자서도 잘 지내는 법을 알게 됐어. 그래서 지금부터는 잘할 수 있게 될 거 같아."
라고 말한다.
아들이 내내 핸드폰만 봐서 걱정만 했는데 이런 지혜로운 이야기는 어디서 들었는지 나는 정말 알 수가 없다.
내가 노력하는 양에 비해 노력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좋은 결과를 얻는 것에 분하게 생각했다.
이 세상이 나만을 위해 존재하는 줄 알았다.
나를 위해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당연한 줄 알았다.
그런데 아들은
"엄마, 나는 이것밖에 안되지만 이 정도로도 엄마를 만족시킬 것이라 생각해.
엄마가 어떤 사람이던 내게 중요하지 않아.
나는 내 곁에 엄마가 있어줘서 좋고 나는 세상 끝날 때까지 엄마를 사랑해. "
나는 내 힘으로 모든 걸 이룩해 냈다는 게 틀렸음을 그제야 알았다.
나는 패배했지만 그래서 깨달았다.
져주는 게 아니라,
서로서로 인정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
나는 아들을 이렇게 키운 적이 없는데 아들은 이런 모양으로 자라고 있다.
이건 못난 내가 한 일이 아니다.
내가 하는 일들의 모든 것은 내 뜻대로 만은 되지 않는다.
내 뜻 보다 훨씬 훌륭하고 위대한 결과가 만들어지는 것은 세상에 못난 나 같은 사람만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증명된다.
아들이 택한 것은 세상 곳곳의 지혜와 사랑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아들을 통해 깨닫는다.
나만큼 당신들도 모두 소중하고 귀하구나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