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뭐길래..

by 햇살나무

늘 한집에서 같이 붙어사는 사람들. 가족.


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른으로 자라나는 아이와 이미 어른으로 만나 한 가정의 구성원이 된 부모님.

아직도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아가고 있는데 자식을 키우는 엄마로서도 아직 미완성이다.

난 대체 누구고 어떻게 살아야 하나. 나라는 존재를 알아가는 동시에 가족 안에서 아내와 엄마라는 자리를 감당해 내야 하는 여자.



레프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 “행복한 가정은 다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이유가 다르다”


꼭 그런 말인 것 같다. 하고 싶으면 방법이 보이지만, 하기 싫으면 핑계가 보인다고.

뭔가 하기 싫으면 말이 되는 핑계를 너무도 많이 늘어낸다.

이래서 싫고 저래서 싫고,, 결론은 그냥 하기 싫어서인데 합리화할 수 있는 이유는 너무나 다양하다.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없는 이유는 각자의 자아가 강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서로 자기가 맞다고 싸우기 때문에.

누구 하나가 져줄 때까지 우기기 때문에.

힘의 저울이 한쪽으로 처참히 기울어져야 끝이 나는 싸움.

져줄 수 없고 양보하기 싫은 자아의 힘.


누군가 그랬다.

가족은 한 팀이 되어야 한다고.

만약 학교에서 조별과제가 주어졌을 때 조에서 한 명이 과제를 함께 하지 않는다고 해서 모두가 다 그 과제를 하지 말자고 때려치우지 못하는 것처럼. 잘하는 사람이 전체를 이끌기도 하고, 업어서라도 끌고 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고. 가족은 그런 팀이 되어야 한다고.


누군가 게으르다고 해서 부지런하라고 가르친다고 해서 그 사람이 하루아침에 부지런해질까.

누군가 자기 자신의 발전만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면서 다른 가족구성원에게 관심도 주지 않고 살아간다면.

격려와 존중과 희생이 사라진 가족. 지금 나의 모습 같다.


요즘따라 사춘기 때 이유 없이 화를 냈던 엄마모습이 떠오른다. 엄마가 짜증이 나는 일이 많은가 보다.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자식인 내가 내 인생을 제대로 가꾸지 않고 뒹굴거리던 모습에 열불이 나서 그랬던 것 같다. 그렇다고 엄마는 내게 자존감에 상처가 되는 말을 직언으로 한 적은 없었다. 늘 답답해했을 뿐. 눈치 없는 나는 그게 나 때문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내 눈에는 나의 티 보다 엄마의 아픔만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너무 늦게서야 철이 들었다.

그럼에도 엄마는 묵묵히 밥을 차려주었다. 맛있는 음식을 , 내가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을 만들어 주었다. 공부도 안 하고 노력도 안 하는 자식이 얼마나 미웠을까. 그럼에도 엄마는 자신의 역할을 버리지 않고 충실했다. 살아야 했기에 그 시절의 고비는 지나야 했기에 멍에를 걸고서라도 나를 등에 업고 세월을 지나고 있었다. 이 세상에 자식을 낳은 한 엄마로서. 엄마라는 역할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어떤 상황에서도 나를 사랑하기로 한 것이었다. 나는 부모님의 등을 거저 밟고 살아왔다.

조금만 더 현명해질걸. 조금 더 공부할걸, 조금 더 나 자신을 관찰할걸....


요즘 고등학생이 된 아들을 기다려 주고 있는 중이다.

내가 대신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들이기는 하지만, 사회는 자신의 엄마와 같은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을 아직 모르기 때문에, 그들 속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는 중이다.

너무 괴롭다. 기다려주는 것이.

한숨만 나온다. 저것도 저렇게 밖에 못하느냐고.

그런데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나는 기다려야 한다. 아들에게 냉정한 말은 했지만, 내 진심은 결국 사랑이었다. 아들 입장에서는 아직도 냉정한 엄마의 눈치만 보고 있을 뿐이다. 내가 너를 알지만, 존중하지만 아직은 안돼. 이제 너는 너 스스로 해내야만 돼. 견디고 또 버티는 중이다.

한숨이 너무 많이 나온다. 일주일. 버텨야 한다. 내가 기다려야 한다. 고무줄을 풀어버리면 안 된다.

내 멍에를 함께 짊어지고 살아내시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시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그분들도 능력이 생길 때의 나를 기다려 주고 있는 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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