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내가 시집을 왔을 때 시할아버님과 시할머님이 살아계셨다.
할아버님은 시어머니와 작은어머니들께 나를 "새사람"이라고 칭하라 하셨다.
비록 이름은 아니지만 새사람이라는 단어가 나쁘지는 않았다.
항렬대로 숙부님, 형님, 작은어머님 하듯 내 이름도 이 시집에 새로 들어온 아랫사람이라 그런지 그 관계 속에서의 호칭을 붙이신 듯하다.
시댁 가문에는 유명한 퇴계이황 선생님이 윗대의 큰 할아버지로 계신다. 남편과 아들도 그분의 후손이다.
아버님도 할아버님도 그 윗대의 많은 분들 모두 서당에서 훈장님을 하셨고 교실에서 교편을 잡으셨다.
아들은 아홉 살에 아버님께 천자문을 배웠다.
천자문책은 할아버님이 직접 쓰시고 만드셨다.
할아버님은 진심으로 글자 쓰기에 전심을 다 하셨다.
내가 처음 시집갔을 때부터 불과 몇 년 전까지 아흔이 넘으신 연세에도 허리를 펴시지 못하고 구부정히 앉으셔서 신문을 받아보시며 그 신문에 나온 모든 한자를 따라 쓰셨다.
아무 내세울 것 없는 집안에서 뼈대 있는 집안으로 시집을 온 나는 언제나 할아버님을 뵈러 갈 때면 너무나 조심스럽고 창피해서 발바닥이 시리고 손가락과 발가락이 초조하게 꾸물 됐다.
망아지같이 큰 탓에 웬만한 어른들이 어른답지 않게 보였다가 성인과 같은 큰 어른이신 할아버님 같은 분을 뵌 적도 안 적도 없어서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방방거리고 굉굉거리는 내 성정을 누르고 억눌러가며 할아버님을 뵈려고 했다.
해마다 명절만 되어 찾아뵈었다.
몇 번 뵈지도 못했는데 지금의 나는 해외로 나온 바람에 자주 뵙기 더 힘들게 되었다.
할아버님은 올해 102세가 되셨다.
그런데 며칠 전 할아버님의 숨이 오랜 시간을 못 넘길 것 같다는 소식을 들었다.
곧 설이라 비행기표를 끊어놓고 날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제발 우리가 가는 날까지 는 목에 숨이 붙어있어 주길 바라고 또 기도했다. 그런데 그날 많은 느낌이 휘몰아쳤다.
밤하늘의 달이 유난히 맑았고
바람도
시간도 공기도 멈춘 것 같았다.
죽음 앞에서 모든 생각과 감정이 멈추었다.
오로지 흘러가는 시간을 멈추도록 내가 붙들고 있었다.
허망하고 낙심한 가족들의 표정만이 보였다.
그들의 껍데기는 밥을 먹고 걷기도 했지만 보이지 않는 마음이 납덩이처럼 발끝에 쿵 떨어져 발목에 매달려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할아버님이 이 세상과 이별을 준비하고 계신다는 소식은 나를 더 현재에 머물게 했다.
진공의 시공간이 압축된 곳에 할아버님의 거칠고 가는 숨소리가 들려왔다. 시곗바늘의 시침소리조차 할아버님의 맥박처럼 착각하게 했다.
할아버님이 멈춘 그 시공간에서 할아버님이 내게
'네가 보고 있는 가족들에게 더욱더 소중하라. 함께 있는 지금 그 시간을 행복하라.'라는 마음을 주셨다.
생로병사는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봄이 가고 겨울이 오는 것처럼 때로는 의미 없이 흘러가는 진리인 듯하다가도
마지막 잎새가 차디찬 이슬 맺힘과 더불어 떨어지려 할 때 살아있는 자들은 그 잎새가 안간힘을 쓰며 매달리고 있다고 착각한다.
임종하시기 10시간 전에 만나뵌 할아버님.
봄을 데리고 오며 이는 바람에 잎새는 찬란히 땅으로 떨어져 수많은 열매를 맺을 것을 살아있는 자들은 희망할 줄을 모른다.
죽음은 또 다른 삶이라는 것을.
비단 나는 할아버님과만 이별한 것이 아니라 셀 수 없이 많은 어제와 순간과 이별하며 살아왔다.
그럼에도 나는 살아있다. 수많은 이별과 수많은 만남을 반복하며...
끝은 또 다른 시작이다...
한 치 앞도 못보는 내 한국행 길이 올해 따라 유난히 막막하게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