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2병, 고3병은 들어봤는데 고2병은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안타깝게도 아들은 지금 아주 고약한 고2병과 한판 승부를 치르는 중인 것 같습니다. 나는 그저 공정하게 심판 노릇을 한다고는 하지만 아들은 그게 영 못마땅한가 봅니다. 그는 내게 '본인에게 좀 더 편파적이지 못하냐'라고 따지는 듯 냉랭하기만 합니다.
스트레스와 불안으로 한 동안 방황하던 아들에게 토요일 밤 찾아온 것은 졸음 대신 식욕이었습니다. 다행이다 싶은 마음이 앞섰습니다. 몸이나 마음이 아프면 식욕도 의욕도 사라지는 게 사람 사는 이치이니까요.
긴긴 겨울밤이 지나고 날이 밝자 늦은 잠에서 깬 우리는 아들이 먹고 싶어 했던 케케 한 냄새가 물씬 묻어나는 묵은지 김치찌개를 먹으러 갑니다. 지난가을 이 집 찌개를 처음 먹어본 아들이 그 맛을 기억하고 있었나 봅니다. 어른들이나 좋아할 맛인데 10대 아들도 묵은지의 감칠맛에 푹 빠져있었나 봅니다. 그래서일까 그릇째 들고 국물까지 들이켜는 모습에 '다행이다' ,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끊이질 않습니다. 이럴 때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는 말을 처음 실감합니다.
후식으로는 그 식당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목장에서 직접 운영하는 카페에 들러 신선한 우유로 만든 아이스크림을 먹습니다. 역시 아이스크림은 겨울에 그리고 산지인 목장에서 바로 먹어야 제맛입니다. 그래야 사실 오늘의 주인공은 이 아이스크림입니다. 아들은 도시에서는 맛볼 수 없는 이 신선한 아이스크림이 어젯밤 불현듯 떠올랐다고 합니다. 묵은지 김치찌개와 아이스크림, 그 덕에 고2병과 싸우던 아들은 오늘 하루 휴전을 한듯합니다. 아들의 얼굴이 훨씬 밝아졌습니다. 휴전이 아니라 종전이길 바라는 건 너무 이른 욕심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매일매일이 오늘 같기만 했으면 하는 것은 모든 부모의 마음이 아닐까요.
오늘처럼 아이스크림이 유난히 달달했던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날씨가 추울 때마다 묵은지 김치찌개와 아이스크림 그리고 아들이 생각날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