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호사

보통의 감성

by 바람아래

토막잠으로 겨우 버틴 금요일 밤이 지났다.

새로 맞이한 주말 아침, 나를 반기는 건 밤사이 한 발 더 성큼 다가와 있는 봄이다.


시베리아처럼 세상이 얼어붙은 순간부터 지금까지, 지난 두 달 하루하루가 전쟁터처럼 치열했던 삶의 연속들.

기댈 곳 한 곳 없이 고독한 마라토너처럼 앞만 보고 달려온 날들, 그 피니시 라인을 통과했다.

가슴속 가득했던 긴장과 스트레스가 모조리 산화되자 대신 노곤함이 밀려든다.

바람이 살랑살랑거리며 피부에 닿을 때마다 그 간질거림에 나는 어느새 자연 속으로 이끌려간다.


움트는 생명과 대지의 기운을 따라 숲길을 한참 걸어보지만 걷는 동안 겨울 내내 쓰지 않은 근육은 마치 농한기 녹슨 농기구처럼 삐걱거린다.

낮은 경사도를 따라 겨우 30분 걸었을 뿐인데 벌써 땀이 흥건하다. 언덕이 높아진 건지 체력이 노쇠해진 건지 알 수 없다.


지친 몸을 북돋울 매콤한 낙지볶음을 먹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았다.

볕 좋고 바람 좋은 곳에 주차를 하고, 창문을 살짝 내려 신선한 바람이 차 안으로 들어오게 하고 조용히 음악을 듣는다.

음악에 취하자 나도 모르게 눈이 스스로 감긴다. 낮잠을 자는 동안에도 숲 속의 공기가 코와 폐를 통해 온몸으로 퍼진다.

다시 태어나는 느낌이다. 죽어있던 피부에도 봄이 피어나는 느낌이랄까.

눈을 뜨자 2시간이 훌쩍 흘러버렸다. 몸이 날아갈 듯 가볍다.

토막잠으로 부족했던 지난밤의 잠을 그렇게 꿀잠으로 보충했다.

봄의 기운이 몸으로 스며들자 살짝 허기가 진다.

예약했던 낙지볶음에 기름장, 김가루를 추가해 슥슥 비벼 먹고 나니 땀이 나기 시작할 때야 모든 게 제자리에 돌아온 듯하다.


부른 배를 소화시키려 다시 걷는다.

얼음이 녹아 흐르는 하천길을 따라 걷다 보니 오후의 햇살 덕에 물결 위의 윤슬이 요란하게 인사한다.

햇살 위에 바람이 더해져 봄이 완성된다.


점퍼를 벗기에는 살짝 춥고 점퍼를 입기에는 벌써 더운 날씨.

우리네 삶이 정확하게 답이 없듯이 봄날 날씨도 그러하다. 추웠다가도 더워지고, 덥다가도 추워지는 것이 삶이고 또 봄이다.


봄이 오는 주말 나는 그렇게 호사를 부려본다.

주말이 지나면 다시 전쟁터 같은 일상으로 돌아갈지라도 이 소소한 일상들로 가득한 봄날,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주말 #휴식 #낮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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