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감성
2026년 3월 21일, BTS 컴백 라이브 무대가 대한민국의 상징 광화문에서 열렸다. 그 장면을 넷플릭스로 시청하며 오래된 장면들이 떠올랐다. 26년 전, 내가 몸소 겪었던, 이제는 추억이 된 한류 이야기들이 있다.
Eps 1.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가던 해, 1999년. Y2K로 세상이 멸망할 거라는 불안감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었다.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나와 완전히 정반대 성격의 친구와 함께 필리핀 마닐라로 떠났다. 영어 좀 배워보겠다는 심산으로, 정보도 없이 알음알음 겨우 얻어낸 한국 하숙집 전화번호 하나만 들고서.
학교에 대한 정보도 없이 도착 다음 날 무작정 캐리어를 끌고 택시를 탔다. 목적지를 묻는 드라이버의 질문에 우리는 짧은 영어로 "그냥 여기서 가장 가까운 대학으로 갑시다"라고 했다. 얼마 후 도착한 하얀 건물 입구에서 내렸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온 김에 그냥 캠퍼스나 구경하자며 입구로 향했다. 대학인데도 총으로 중무장한 가드들이 살벌한 눈빛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어설픈 영어로 안으로 들어가도 되는지 묻자 한 방에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마닐라의 습한 더위 속에서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캠퍼스를 돌아다녔다. 어디가 어딘지도 모른 채 무작정 걷다 보니 점점 지쳐갈 무렵, 한눈에 봐도 한국인 같은 학생이 지나갔다. 일단 "안녕하세요?"부터 외쳤다. 동네 교회 형처럼 순한 얼굴의 그 학생은 기꺼이 캠퍼스 투어를 시켜줬고, 우리는 고민도 없이 그 대학 랭귀지 스쿨 초급반에 등록했다. 하숙집 연결까지 도와준 그에게 지금도 감사한 마음이다.
같은 반 급우들의 국적은 다양했다. 주류는 한국과 일본 학생들이었고, 소수의 대만, 유럽 학생들이 섞여 있었다. 선생님들은 따갈로그 억양이 섞인 필리핀인들이었다. 나의 담임선생님은 처음 봤을 때 많이 무서워 보였다. 나이도 많고 성질이 세 보이는 여성 선생님이었는데, 막상 수업을 해보니 외모와 달리 유머러스하고 자상한 분이었다.
어느 날 그녀가 한국과 일본을 비교하며 말했다. "컬러 TV는 역시 소니지. 우리 집에서 실수로 떨어뜨렸는데 전혀 손상이 없었어. 한국산 삼성 TV는 가격은 싸지만 품질은 소니를 따라가려면 아직 멀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한국 학생들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위축됐고, 일본 학생들은 은근슬쩍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그 시절은 워크맨, 전자사전 등 대부분의 가전제품을 일본 제품이 휩쓸던 때였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렇지만 우리가 그런 것에 기죽을 대한국인이 아니었다.
매 학기가 끝날 때마다 종강파티를 했다. 큰맘 먹고 마닐라에서 가장 힙했던 하드록카페에 갔을 때였다. 화려한 조명과 빵빵한 음악 속에서 낯익은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1999년 발매된 이정현의 '와'였다. 전 세계에 테크노 음악이 유행할 때 혜성처럼 나타난 그 노래가 마닐라 하드록카페에서 울려 퍼지다니. 한국 학생 중 가장 활발한 친구가 먼저 일어서자 나를 비롯한 한국 학생 모두가 줄줄이 앞으로 나가 무대에 나란히 섰다. 앞사람의 어깨를 한 손으로 잡고 '와'에 맞춰 고개를 미친 듯이 돌렸다.
처음엔 '저게 뭐 하는 짓이지'라는 표정이던 다른 나라 손님들도 이내 함께 어우러졌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우리들이 동남아에 한류를 전파한 게 아니었을까. 젊었을 때만 누릴 수 있었던 자유였다.
Eps 2.
연수 일정이 거의 마무리될 즈음, 친했던 일본인 남녀 학생 2명과 한국인 학생 4명이 함께 보라카이로 졸업여행을 떠났다. 마닐라항에서 크루즈를 타고 17시간을 가는 일정이었다. 돈을 아끼려 2등 칸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남자들은 바닥에, 여학생들은 침대를 쓰며 밤새 게임을 하며 갔다. 새벽 태평양 한가운데서 천둥번개가 치는 건 흔한 일이었다. 배 가장 아래칸에는 소, 돼지 같은 가축들도 함께 타고 있어서 '이게 그 말로만 듣던 노아의 방주인가' 하며 웃기도 했다.
그런데 목적지가 가까워질 무렵 총무를 맡고 있던 친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회비로 모은 돈 일부가 사라진 것이었다. 다행히 반씩 나눠 보관한 덕에 여행을 마칠 수는 있었다.
보라카이에 도착해서는 숙소를 직접 구해야 했다. 비수기라 방값은 비싸지 않았지만 돈도 잃은 상황이라 한 푼이라도 아끼려 여러 집을 돌며 흥정했다. 몸이 지쳐갈 무렵 마지막으로 들른 한 집, 방도 넓고 인심 좋아 보이는 여자 주인이 반겼다. 나는 배낭에서 한국인의 소울푸드 '신라면'을 꺼내 들었다. 라면 한 봉지를 보여주자 그녀는 단번에 "오! 신라면!"을 외쳤다.(그녀는 이미 많은 한국 여행객을 상대했던 터라 신라면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이 때다 싶어 내가 신라면을 건네며 방값을 깎아달라고 하자 그녀는 흔쾌히 우리가 원하는 가격에 방을 내어주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이미 한류는 시작되고 있었다.
그로부터 26년이 흘렀다. 라면, 김치, 화장품, 영화, 음악, 심지어 방산무기까지. 'K'만 붙이면 세계가 알아보는 시대가 됐다. 스위스 몽블랑 꼭대기에서 한국 컵라면이 인기라는 이야기도 이제는 낯설지 않다.
그날 BTS 컴백 무대를 보며 참 많은 장면들이 머리를 스쳤다. 전쟁의 참사를 딛고 이 짧은 시간에 세계 문화와 경제의 중심에 당당히 선 나라. 이게 하루아침에 이뤄졌을 리 없다. 돌아가신 아버지 세대, 그전의 할아버지 세대, 그 이전 선조들이 밤낮없이 피와 땀을 흘리며 일한 결과가 이제야 꽃 피우는 것이 아닐까.
오늘날의 영광과 풍요로움을 전해 준 그들에게 감사함을 전하며
우리, 어깨 조금 으쓱해도 되지 않을까요?
#BTS #한류 #라면 #대한민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