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어느 멋진 날에

보통의 감성

by 바람아래

세종에 가던 길에 잠시 공주에 들렀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 점심을 같이 먹기로 했다. 사전 연락도 하지않고 그날 아침 급조된 약속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예고 없이 찾아오는 만남이 기쁠 때가 있다. 예의니 배려니 그런 거 없이도 언제든 만날 수 있는 그런 관계, 친구라는 존재다.


시간이 멈춘 듯 도시는 한가롭기만 하다. 한때는 '교육도시'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던 곳의 영광은 세월 따라 금강 물줄기 따라 사라진 지 오래된 듯. 젊은 남녀 학생들로 빼곡했던 도심 거리에는 그들 대신 허리 굽은 노인과 오지 않을 손님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택시기사들의 한숨 섞인 대화가 허공을 가른다.

그럼에도 고등학교 시절의 추억을 하나하나 곱씹으며 콘크리트마저 삭아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골목 담벼락을 따라 거닐다 보면 아쉬움 속에 웃음이 나는 건 왜일까. 여전히 사라진 시간 속에는 아쉬움보다는 타지에서 온 낯선 이방인이었지만 행복했던 추억이 고스란히 쌓여있기 때문이 아닐까.


약속 시간까지 여유가 있어 좀 더 걷는다.

'금방(금빵)'이라고 부르는 금, 은 등 각종 보석과 시계를 파는 가게들의 간판이 보인다. 어느 집을 갈까 고민하다 인상 좋아 보이는 나이 지긋한 주인장이 있는 가게로 들어간다. 금붙이, 은붙이, 각종 보석 그리고 큼지막한 벽시계까지 — 아직 제 할 일 남은 것들은 여전히 재깍거리며 분주히 움직인다.


하루의 첫 손님, 마수걸이를 할 수 있어서인지 나를 반기는 듯하다. 하지만 그의 미소 속에는 디지털 세상에서 갑자기 찾아온 아날로그, 미래에서 과거로 거꾸로 온 시간여행자를 만난 듯한 반가움이 숨어 있는 것 같았다.


차고 있던 손목시계를 풀러 그에게 전하며 배터리 교체를 요청했다. 시계를 한참 살핀 뒤 작업을 시작하며 "시계 관리를 아주 잘하고 찼구먼"하며 칭찬을 한다.


작업을 하는 동안 그가 나에게 먼저 말을 건넨다.

"공주 분이신가?"

"아닙니다. 타지에서 사는데 오늘 지나가다가 친구 좀 만나려고 잠깐 들렀습니다."

"이 시간에 젊은 양반이 오셨길래..."

"사실은 제가 30여 년 전에 여기서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그래서 공주 올 때마다 너무 좋습니다. 곳곳에 옛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서요."

"아이고, 잘 오셨어. 공주는 정말 안 변했어"

"주민분들한테는 죄송하지만, 저는 제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있어서 정말 좋습니다."

"세월만 훌쩍 가버렸어"

"제가 좀 지칠 때마다 옵니다. 왔다 가면 또 힘이 나요"

"그러셨구먼~ 이제 끝났어!"


시계를 건네받고 문을 나서려는데 주인장이 문밖까지 따라 나오며 '오늘 친구 만나서 좋은 시간 보내셔, 그 좋은 추억 잊지 마시고 공주에 자주 오셔' 라며 마지막 인사를 한다.


인자한 미소를 가진 노신사, 금방(금빵) 아저씨의 인사말 한마디가 따스한 봄바람처럼 마음으로 불어 들어온다. 다시 친구를 만나러 가던 길에 그날 새로운 추억을 또 하나 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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