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감성
장항선의 끝자락, 서천에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제련소 굴뚝은 여전히 우두커니 서 있다.
달라진 게 있다면 그 굴뚝은 더 이상 연기를 뿜어내지 않는다.
그 모든 시간은 1989년에 멈춰 서 있다.
굴뚝이 멈추자
이 마을 저 마을도 그대로 얼어버렸다.
'시간이 멈춘 마을'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판교마을.
생기라고는 봄 마중 나온 하얀 목련뿐
사람들로 북적였을 양조장, 사진관, 닭집은 간데없고
열 손가락 다 채우기도 힘든
드문드문 겨우 찾아오는 사람들
환한 봄날이지만 밀려오는 적막감.
미안해하지 않아도 될 미안함으로
텅 빈 거리를 걸으며 한때 이 거리를 걸었을 그들을 생각해 본다.
모퉁이 사진관에서, 증명사진 한 장 찍어 이력서에 붙이던 그 청년들의 떨림
아이 돌 사진 한 장 찍던 날, 긴장한 부모님들의 검게 그을린 얼굴
맞선 자리에 나가려 미장원에서, 꽃단장하던 젊은 아가씨들의 설렘
제일 큰 닭집 앞, 노란 월급봉투 내밀며 닭 한 마리 튀겨가려 줄 서 있던 아버지들의 그 고단함...
모든 순간이 그대로 멈췄다.
기억해야 할 그 순간들은
갤러리, 기념관으로 변해가지만
아직 거리에는 그 시대를 살아 낸 사람들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묻혀있다.
잊고 싶지 않기에
오늘을 사는 사람들은 저장하고 기억하려 한다.
젊은 멋쟁이들이 잠시 들러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좋다.
레트로라는 감성으로 그들에게 새롭게 다가가도 좋다.
아쉽지만
시간은 우리 편이 아니어서
앞으로의 시간은 건물을 더 기울게 하고, 사람은 더 나이 들게 할 것이다.
손가락 클릭 한 번이면 끝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지만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다시 이 길을 걷고 또 걸어 보는 것
그리고 이 순간을 기억하고, 저장하여 추억으로 만드는 것뿐.
화려한 봄날,
한때 화려했을 그 길 위에서
나는 과거를 걸으며 오늘을 본다.
다음 글은 '시간이 쌓인 마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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