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감성
백제의 고도 부여에서 보령으로 가는 길
산과 들, 계곡과 산비탈에도 어김없이 봄은 피어나고 있었다.
그곳에는 여러 방송을 통해 알게 된 한 마을이 있다. 언젠가 꼭 한번 가봐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지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이제야 주말을 맞아 가족과 함께 그곳으로 봄마중을 다녀왔다.
유홍준 선생님의 휴휴당*(休休堂)이 있는 곳으로도 잘 알려진 곳이지만 사실 이곳의 주인공은 따로 있다. 제주도를 제외하고 내륙에서 이곳 돌담길 만큼 잘 보존된 곳이 또 있는지 모르겠다. 마을 입구 표지석이 이 돌담길이 등록문화재임을 알려준다. 제주도처럼 바람이 많아 돌을 쌓아 바람막이용으로 만들었을 리 없는 이 곳에서 돌담길은 집과 집을 연결해주고 있는 듯하다.
이 마을 근처 산에는 돌이 많다. 그 옛날 화전으로 밭을 일궈 밭농사라도 지으려면 저 돌들을 일일이 손으로 거둬냈어야 할 것이고, 어쩌면 그 돌들을 오랜 시간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그 험한 시대를 살아야 했던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거칠었을지 가늠이 되었다.
이어진 돌담길을 따라 사람들의 발자취를 찾아 계속 걷는다. 이 동네 역시 산업화, 고령화의 파고를 넘지 못한 듯
우리를 반기는 건 층층이 쌓은 돌담길과 돌담 너머에서 이방인을 향해 자비 없이 짖어대는 누렁이 한 마리, 그리고 마을회관 터줏대감 고양이들뿐이다. 한참을 걷다 분주히 텃밭을 일구는 동네 어르신들을 볼 수 있다. 그들의 눈빛에서는 외지인에 대한 경계심를 전혀 찾아보기 어려웠다. 무던히 살아가는 주민들의 삶에 누가 되지 않게 목소리를 낮추고 조용히 뚜벅뚜벅 계속 걷는다.
돌담 너머 집집마다 아직 사람의 체온이 머물고 있는 집과 그렇지 못한 집을 구분하는 것은 너무나 쉬웠다. 온기 있는 집은 마당에 꽃이 피고 정갈하게 관리되고 있지만, 사람의 손길과 발길이 끊긴 집들도 곳곳에 보인다. 그런 집들의 기운은 차갑고,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인적 없는 시골집의 지붕은 금세라도 폭삭 내려앉을 듯하지만 그 집을 둘러싼 돌담은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한다. 그렇게 시간이 쌓아 놓은 돌담은 쉬이 무너지지 않는다. 오랜 시간 한 자리를 지켜 온 돌담은 과거에서 현재로, 사람과 사람을 여전히 이어주고 있는 듯하다.
쓸쓸했던 마을 뒤안 길을 벗어나자 앞마당 돌담 아래에는 노란 수선화가 수줍게 피어오른다.
사람들은 떠났어도 돌담은 남아 그 자리를 꿋꿋이 지킨다. 그러하기에, 어쩌면 이 마을의 진짜 주인은 돌담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휴휴당은 개인공간이므로 대문(정낭)이 닫혀 있어서 들어가보지는 않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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