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감성
문을 열자 당장이라도
마당쇠가 달려와 큰 절이라도 할 듯 한
고래등 기와집에도 봄볕은 내리쬔다
높은 돌계단, 넓은 마당,
칸칸이 나열된 방들로 미루어보아
한때는 대단했을 권력가의 집
그토록 과거 화려했을 시간은
뿌연 연기처럼 사라진 지 오래되었지만
널찍한 마당, 낡은 툇마루는
지친 낯선 객들에게 기꺼이 잠깐 동안 품을 내어준다
그렇게
양반집 대문을 열고 들어가
현재에서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해본다
한때 이곳에 머물렀을
사람들의 손때 묻은 삶의 흔적들이
집안 곳곳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녹슨 문고리,
닳고 닳아 반들반들한 나무 마루에서
삶이 고단했을 그 사람들의 체온이 온전히 느껴진다
한지 문살에는
따사로운 볕이 살포시 걸쳐있고,
창 너머 봄 마당에는
사람들의 얼굴들이 환하게 넘실거린다
놓칠세라 작은 창을 통해 보이는
사람이라는 꽃
밝은 웃음소리 양분 삼아
사랑으로 피어났을...
그 봄꽃을 바라보는 설레는 마음임에도
내 시선이 마지막에 멈추는 곳은
마당 옆, 어른 대여섯의 품도 모자랄 만큼
큼지막한 은행나무
이 봄에는 앙상한 가지만 보여주고 있지만
천년 세월을 거뜬히 버텨온 그가
어쩌면 이 집의 진짜 주인이 아닐는지...
이제야 시작된 봄 앞자락에서
아직 멀리 오고 있을
가을을 기대하는 것은
과한 욕심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봄볕을 저버리고
벌써 가을볕을 기대하는
이 알량한 인간의 간사함
도통 종잡을 수 없는 내 마음
그 변덕으로 말미암아
나는 노오란 은행이 열릴 즈음이면
다시 한지 창 너머 그 은행나무를 보며
가을 한 잔 홀짝홀짝 마실 것이 분명한데
그때 또다시
이날의 따사로웠던 봄볕을
어쩌면 그리워할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