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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아래 Mar 17. 2023

01 남보다 빨랐던 영어 조기(?) 교육

지금 알고 있는 그 선생님들을 그때 만나지 못했더라면...

내가 국민(초) 5학년이 되던 해 만난 담임 선생님을 아직도 아니, 평생 잊을 수 없을 듯하다. 그 당시 내 주의의 환경을 보면 충분히 그럴만하다 할 것이다.


우리 동네는 읍내권에서 멀지는 않았지만 버스가 다니지 않아 초등학교까지 매일 50분을 걸어 다녀야 했다. 물론 더 먼 거리에서  걸어 다니는 친구들도 종종 있긴 했다. 동네에 공중목욕탕이 없어서 학부모님들이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4학년 정도가 되었을 때 즈음 내가 다니던 학교 안에 학생들을 위한 목욕탕이 처음 생겼을 정도로 시골 마을이었다.

   

그런 동네에 있는 우리 학교에 5학년이 되던 해(1985년) 기억이 가물가물하긴 한데 '우용직'이라는 선생님이 담임으로 부임하셨다. 키도 크시고 잘 생기신 외모를 갖고 계셨고, 내 기억으로는 테니스, 배구 등 각종 스포츠도 만능이셨던 걸로 기억한다.


평소에 그렇게 말은 많으신 편은 아닌데, 학생들을 위한 마음이 남다르셨다. 5월 어린이날이 되면 선생님께서는 박봉의 월급임에도 불구하고 자비로 빵과 우유를 사서 우리 반 전원(당시 한 50여 명)에게 돌리셨다. (당시, 선생님은 젖먹이 아이가 있었던 걸로 기억하고,  외벌이 가정이 생활이 그리 넉넉지 않았을 것이고  당시 물가 등을 생각하면 만만치 않은 지출이셨을 듯하다.) 그럴 때마다 다른 반 학생들은 우리를 엄청나게 부러워하곤 했다.


그렇게 매사에 우리를 아껴주시던 선생님은  어느 날 이번에는 우리 반 전체 학생들에게 책 한 권씩을 나눠 주셨다. 책 제목은 기억 못 하지만 영어 알파벳이 나와 있는 영어 Beginer 들을 위한 영어 기본서였다.


책을 나눠신 선생님은 "이게 영어책인데, 이걸로 내일부터는 방과 후에 영어 공부를 할 거니까 열심히 해보자, 그 이유는 너희들이 나중에 커서 사회생활을 할 때 즈음이면 영어를 잘해야 먹고사는 세상이 될 거야 그러니 같이 공부해 보자"하고 하셨다. 그때 나는 영어라고는 중학교 2학년이었던 막내 외삼촌의 영어책, 그리고 중학교 1학년이었던 우리 형이 열심히 영어노트에 알파벳을 쓰는 광경을 보면서 알파벳을 본 게 전부였다. 그걸 보면서 '저 꼬부랑글씨를 왜 외우고 쓰고 있나' 싶었다.


다음날부터 당시에 드물었던 '방과 후수업'으로 영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a.b.c~ z까지 읽고 따라 하기를 반복했다. 처음으로 알파벳을 배우면서 다행히 신기하면서도 재미있게 느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I am a boy, You are a girl" 이런 문장으로 옆 짝꿍과 역할극도 해보고, 이렇게 초보적인 문장을 배우면서 영어에  대한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물론 그중에는 한 달도 못 가서 포기하는 친구들이 훨씬 많았다.)


그렇게 1년의 시간은 흐르고 6학년이 지나고, 중학교에 입학을 했다. 1학년 담임선생님은 그 옛날 TV청소년 드라마의 원조 '호랑이 선생님'의 주인공처럼 생기신 외모를 갖고 계신 나이 지긋한 분이 담임 선생님을 만나게 됐다. 그런데 운 좋게도 영어과목을 맡고 계셨다.


중학교 첫 영어시간에 선생님은 내가 5학년때 이미 배운 알바벳을 괘도지에 적어오셨다. 괘도지를 한 장 한 장 넘기시는 선생님의 열정은 뜨거우셨다. 주위를 둘러보니 중1이 돼서야 알파벳을 처음 친구들이 9할은 되는 듯했다. 그와는 반대로 나에게는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 같은 시간이었고 선생님이 시키면 곧 잘 따라 했다. "자 따라 해 봐, 리 쓴 앤드 리 피 트(Listen and Repeat), 오랄 프랙티스(Oral Practice)". 선생님은 그럴 날 기특하게 여겨주셨다.  선생님은 당시 3학년이었던 형도 이미 2학년 때 가르치셨기 때문에 우리 형제에게 더 따뜻하게 대해주셨다.  


초5 때부터 선각자 같은 담임선생님으로 부터 배운 영어에 대한 관심, 그리고 중1 담임선생님의 각별한 사랑으로 영어가 내 최애 과목이 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학교에 가면 다음 영어시간이 기다려 지곤 했다. 당시에 매일 숙제로 내주시던 단어 3장씩 써오기도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어디 가다 우연히 그분들을 만나면 나는 아직도 그 두 분의 얼굴이 생생해서 알아볼 수 있을 듯하다. 그때 그렇게 두 분의 훌륭하신 선생님들이 안 계셨더라면 내 인생도 지금의 나와는 사뭇 다르게 살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연히 시작한 영어, 이렇게 평생의 동반자가 될 줄이야

(그냥 좋아서, 솔직히 부족해서 매일 함께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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