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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아래 May 08. 2023

비밀의 정원

'산(山) 글' 창작소를 기대하며......

비로 가득했던 연휴, 그 마지막 날 오후가 되어서야 태양이 나왔다 들어갔다를 반복했다. 비로 인해 친구와 약속했던 백패킹도 취소되어  아쉬움을 홀로 트래킹으로 대신했다. 구름 낀 하늘이 걷기에는 최적의 날씨. 휴일 오후 산에는 등산객이 없어 트래킹 코스는 한산하기 이를 데 없었다. 목적지는 내가 몸과 마음이 지치고 시간은 없을 때 한두 시간 짧게 계곡을 따라 걸으며 물, 새, 바람 소리 즐기는 곳(자그마한 폭포)이다. 여름이면 가끔 아들과 계곡물에 발 담그고 놀기도 했던 추억이 흐르는 곳이기도 하다.


지난 며칠 동안 비가 많이 내린 덕에 계곡에 물이 가득했다. 계곡의 물줄기는 힘차게 바위를 내려치고 굽이굽이 흘렀다. 그 덕에 덩달아 침체돼 있던 내 감정의 게이지도 급상승했다. 목적지인 폭포까지는 단숨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무도 없는 계곡은 온전히 나만의 공간이 되었다. 준비해 간 간이의자를 펼쳐서 시원한 폭포 물줄기를 바라보고 앉아 일명 ‘물멍’을 시작했다.

힘차게 내려치는 물줄기는 마음속 시름과 근심을 한방에 쓸어내렸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나면서 시원해진 몸과 기분, 그 순간 필요한 건 카페인, 단맛 그리고 수첩. 준비해 간 텀블러 속 커피는 식은땀으로 살짝 떨어진 체온을 따뜻하게 해 주고 한 입 베어 물은 초코파이의 달달함은 아드레날린을 쏟아 내게 했다. 초코파이의 단맛이 채 가시기 전에 수첩에 그 순간의 감정과 기분을 주저리주저리 손 가는 대로 적었다.

     

그렇게 자연과 내가 물아일체의 경지에 이르렀을 때 하산하고 있는 한 등산객과 눈이 마주쳐 가볍게 눈인사를 하고 순간 떠오르는 단어들과 아이디어를 계속 메모했다. 그렇게 메모해 둔 기록들은 훗날 좋은 글쓰기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백패킹을 시작한 지 7년 정도 됐다. 그때부터 산 텐트 안에서 그때그때의 감정들을 메모하는 습관이 생겼다. 이날도 나의 '산(山) 글'은 그렇게 쌓여갔다.



물멍을 끝내고 숲 속을 빠져나오니 다행히 하늘은 맑았다. 시간은 아직 5시. 집으로 돌아가기에는 뭔가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서 예전부터 지나다니며 가보고 싶었던 곳이 있어 복귀하는 길에 잠시만 들러보기로 했다. 잘 정돈된 호숫가 산책로에 모녀관계로 보이는 여성 두 분이 팔짱을 끼고 함께 걷고 있었다. 길어야 10분. 데크 산책로의 끝이 보였다. 그분들은 그곳에서 아쉬움을 남긴 채 발길을 돌렸다.


나는 산책로의 끝을 지나 산으로 이어지는 좁은 등산로를 따라 걸어 올라갔다. 호숫가로 이어지는 산책로를 걷다 보니 물속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 빛에 반사되는 석양 그리고 쭉쭉 곧게 뻗은 나무들이 반겼다. 한참을 더 걷다 보니, 한적한 호숫가에 벤치 하나가 나를 맞이했다, 그냥 보면 텅 빈자리가 외로워 보일 수 있겠지만 나는 반대로 보자마자 “와”라는 감탄사가 나왔다. 이렇게 외진 곳에 이런 신비로운 장소가 있을 줄이야. 드디어 찾았다 싶었다. 내 비밀의 정원을...... 


가보지 않았던 곳에 가는 것에 대한 설렘이 있기 마련이다. 그냥 목적지를 향해 걷다 보면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을 만나기도 하고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멋진 풍광을 마주하기도 하기도 한다. 마치 우리들 인생처럼......

다가오지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 없음을 잘 알면서도 최근 며칠 동안 곧 있을 대형행사 걱정에 짜증과 불안에 절어 있는 나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다.


가끔은 삶이 흘러가는 대로 그냥 따라가보는 것도 정신 건강에 좋을 텐데. 그렇지 못한 현실이 때로는 지친 어깨를 더 무겁게 하기도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날처럼 뜻하지 않은 곳에서 뜻하지 않은 즐거움을 만날 수도 있으니 이 또한 살아가는 소소한 재미가 아닐까.

나는 저것을 분명 '의자'라고 쓰고 분명 '쉼터'라고 읽을 것이다. 잠시 동안의 물멍, 한잔의 커피와 함께할 수 있는 이 쉼터는 분명 새로운 창작소가 될 거라는 확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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