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브랜딩, 브랜드 광고의 흔한 오해

한국에서 브랜드 마케팅 개념이 뒤섞인 이유에 대한 고찰

1. 한국 마케팅 실무에서 자주 듣는 말이 있습니다. "브랜딩 좀 해야 할 것 같아요." "브랜드 광고는 우리 같은 규모에서 하기엔 너무 비싸잖아요." "브랜드를 좀 더 있어보이게 만들어야 해요." 이 세 문장은 전혀 다른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무에서는 같은 맥락으로 쓰입니다. 그냥 단어를 혼용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 혼동이 실제로 예산이 어디에 쓰이는지를 결정합니다.


2. 브랜드(Brand), 브랜딩(Branding), 브랜드 광고(Brand Advertising). 이 세 개념은 다릅니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마케팅 교수 Kevin Lane Keller는 1993년 Journal of Marketing에 발표한 연구에서 "브랜드(Brand)의 정의를 "소비자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연상의 총체"로 정의했습니다. 단순 로고나 슬로건, 그럴듯한 미션과 비쥬얼, 그리고 기업명, 브랜드명이 브랜드가 아닙니다. 소비자가 우리 브랜드를 떠올릴 때 머릿속에 활성화되는 감정, 이미지, 상황의 집합이 브랜드(Brand)입니다.


3. 같은 Keller는 브랜딩(Branding)을 "그 기억 구조를 만들고 살아있게 하는 과정"으로 정의했습니다. 브랜드 광고(Brand Advertising)는 학술적으로 단일하게 정의된 개념은 아닙니다만, 실무에서는 그 기억 구조를 넓은 잠재 고객에게 전달하기 위한 광고 활동을 통칭합니다. 순서가 있습니다. 브랜드가 먼저 있고, 브랜딩이 그것을 설계하고, 브랜드 광고가 그것을 전달합니다.


4. 그런데 한국 실무 현장에서는 종종 이 세 개념이 뒤섞입니다. 왜 그렇게 됐는가. 세 가지 구조적 이유가 있습니다.


5. 첫 번째는 영어 개념이 번역 없이 수입된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Brand, Branding, Brand Advertising이 한국 시장에 들어올 때 개념 정의 없이 용어만 들어온 것으로 보입니다. 서구 마케팅 이론에서 이 개념들은 수십 년의 학문적 논의와 실무 검증을 거쳐 정착했습니다. 한국에서는 그 과정 없이 용어만 빠르게 채택됐습니다. 각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합의 없이 업계에서 혼용되기 시작했고, 오래 쓰다 보니 각자의 맥락에서 각자의 의미로 굳어진 것으로 사료됩니다.


6. 두 번째는 브랜딩 에이전시가 이 개념을 비주얼 아이덴티티 작업으로 정의하며 시장을 만들어온 흐름과 관련이 있습니다. 로고, 컬러 시스템, 브랜드 가이드라인, 패키지 디자인을 만드는 작업이 "브랜딩"이라는 이름으로 상품화됐습니다. 에이전시 입장에서는 이 작업이 매출입니다. 결과물이 눈에 보이고, 납품이 명확하고, 클라이언트에게 설명하기 쉽습니다. 클라이언트 입장에서는 이 작업이 브랜딩의 전부처럼 느껴졌을 것입니다. 수개월간 함께 작업하고 두꺼운 가이드라인 책자를 받아들면, "브랜딩을 했다"는 느낌이 납니다. 브랜딩 = VI/CI 작업이라는 인식이 업계 관행으로 굳어진 데는 이런 배경이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7. 세 번째는 미디어 업계가 "브랜드 광고"를 상품 분류 용어로 사용해온 맥락과 연결됩니다. 디지털 광고 시장이 성장하면서 광고 상품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됐습니다. 전환을 목적으로 하는 퍼포먼스 광고, 그리고 전환 측정이 어려운 나머지 광고. 후자를 브랜드 광고라고 불렀습니다. TV, OOH, 디스플레이 배너처럼 클릭과 전환으로 측정하기 어려운 광고들이 브랜드 광고라는 이름으로 묶이면서, "브랜드 광고 = 측정이 안 되는 비싼 광고"라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으로 보입니다.


8. 이 세 가지가 합쳐지면 어떤 언어 구조가 만들어지는가. 브랜드는 로고와 슬로건이고, 브랜딩은 VI 작업이고, 브랜드 광고는 대기업이 하는 비싼 TV 광고입니다. 이 언어 구조 안에서 마케팅 사이언스가 정의하는 브랜드 마케팅의 본질인 "잠재 고객의 기억 속에 연상을 심는 전략적 투자"가 설 자리가 없습니다. 예산 회의에서 설명이 안 됩니다. C-level에게 납득시킬 수 없습니다.


9. 결과는 반복해서 목격됩니다. 브랜드 마케팅을 시작하겠다고 결심한 팀이 VI 작업에 수개월을 씁니다. 정작 알리는 데 쓸 자원이 없어집니다. 브랜드 광고는 "우리 규모에서 할 수 없는 것"으로 분류됩니다. Mental Availability를 쌓는 투자는 시작도 못합니다. 세계 최대 마케팅 사이언스 연구기관 Ehrenberg-Bass Institute의 Byron Sharp가 수십 년의 데이터로 도달한 결론, "브랜드는 잠재 고객의 기억 속 침투율로 성장한다"는 원리가 실무에서 작동할 공간이 없습니다.


10. 개념 하나가 잘못 정착하면, 그 개념이 만드는 판단과 투자 결정이 누적됩니다. "브랜딩 = VI 작업"이라는 인식을 가진 팀은 브랜딩 예산을 디자인 에이전시 피로 씁니다. "브랜드 광고 = 측정 안 되는 비싼 광고"라는 인식을 가진 팀은 퍼포먼스 광고에만 집중합니다. 그리고 몇 년 후 퍼포먼스 광고 효율이 떨어지기 시작할 때, 원인을 퍼포먼스 광고 안에서만 찾습니다. 진짜 원인은 브랜드 자산 형성 투자 부재였는데도 말입니다.


11. 언어가 판단을 만듭니다. 브랜드는 소비자 기억 속의 연상입니다. 브랜딩은 그 연상을 설계하는 활동입니다. 브랜드 광고는 그 연상을 잠재 고객에게 전달하는 미디어 투자입니다. 이 세 개념이 정렬되는 순간, 브랜드 마케팅 예산이 어디에 쓰여야 하는지 비로소 보입니다. 그리고 그 투자가 왜 지금 필요한지도 설명이 됩니다.


---


Written by Jacob | 애드타입 마케팅 전략 연구원 & 컨설턴트

https://adtype.work/



---


[참고 출처]

Byron Sharp, How Brands Grow (2010), Oxford University Press / Ehrenberg-Bass Institute → https://marketingscience.info/how-brands-grow/


Kevin Lane Keller (1993), "Conceptualizing, Measuring, and Managing Customer-Based Brand Equity", Journal of Marketing, Vol. 57 → https://journals.sagepub.com/doi/abs/10.1177/002224299305700101


매거진의 이전글브랜드 마케팅이란? 글로벌 연구 3개가 내린 정의